영화 <박열> 감상, 이준익 감독
내 육체는 자네들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은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은 나름 잔잔했던 박열의 재판 과정에서, 그 말미에 영화와 재판을 뒤흔들었던 박열의 대사이다. 나 또한 울림이 상당하였다.
어제는 익숙지 못한 사람을 만났다. 그럼에도 늘 그렇듯 나는 서슴없이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로부터 이런 질문을 듣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이 좋냐고. 대답으로는 어지럽게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제 내가 주절대었던 말은 '정신'이었다. 정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정신을 이해하고 싶다 누군가의. 그리고 이해받고 싶다 누군가에게. 정신이라는 말의 쓰임새가 많은 탓에 이 말이 단지 '정신상태', '사고' 등을 이해한다는 걸로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을까 두렵다. 하지만, 영화 속의 박열과 후미코를 보라! 그들은 어떻게 연인이 되었을까, 왜 연인이 되었을까.
살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난다. 보고 싶어 만나는 사람, 어쩔 수 없어 만나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둘로 간단하게 나뉜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어 만난 사람' 중에는 드물게 '보고 싶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런다. 그런데 그 '보고 싶은 사람'들 중에도 박열과 후미꼬가 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어제 만났던 친구들과는 정신을 이해하고 이해받는 사이인가? 그냥 만나서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고, 직장 상사 욕만 하다가 각자 집으로 가는 사이는 아닌가. 여기서 친구들과 나눈 '정신'은, 적어도 박열과 후미꼬가 나눈 그 정신은 아니다. 물론 친구들과 나누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만족스럽진 못해도.
내 주변엔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항상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