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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an 10. 2023

옛날이야기와 인터넷 방송

우리를 위로하는 건 이야기다

지난 몇 년 간 우리나라 인터넷 방송의 성장이 매우 가팔랐다.

지금은 누구나 컴퓨터나, 노트북, 심지어 핸드폰 하나만 있어도 개인방송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개인방송에 대한 공급이 많이 늘었지만,

수요 역시나 그에 못지않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많은 개인방송 진행자들이 방송을 하는 것도 놀랍지만

대한민국에서든 지구 어딘가에서든 그 시간에 누군가가 그 방송을 보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그리고 많은 방송들이 그들의 주 시청자층, 즉 학생이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퇴근이나 하교시간 이후인 저녁 시간대에 방송을 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이런 방송을 보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나 역시 인터넷 개인방송을 찾아보았다.


인터넷 개인 방송이 흥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

그것도 '사람이 직접 말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범람하지 않을 때였다.

많은 이들이 어렸을 때, 아마도 어머니나 할머니 무릎베개를 하고

혹은 침대맡에서 토닥임을 받으며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삼십 대인 내 나이 위아래뻘은 다 그랬을 거고,

내 윗 세대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렸을 적 직접 사랑과 관심을 마음 가득히 담아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 음성과 따뜻한 체온을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포근하고 따뜻한 애정으로 무장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우리의 귓잔등을 토도도도 두드리는

그 운율을 들으면서 우리는 멋진 세계로 이어지는 길을

때로는 깡총깡총 때로는 휘리릭 내달리며

머나먼 나라의 왕족이 되었다가

또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다가

재치 있는 동물이 되었다가

또 신선이 되었다가

오만가지 모습으로 다 변하고 여러 존재들을 벗삼았다.

그 나라에서는 외로움이 없고 꿈을 무럭무럭 피어냈다.



지금은

외롭다.


특히 1인 가구에 독신인 나는

더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많은 날들을 회사에 늦게까지 혼자 남아서 야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나를 반기는 것은

어둡고 텅 빈 집

차갑게 식은 마룻바닥


그리고 집 밖 어딘가에서

밤거리나 다른 건물에서

가끔 들리는 사람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이다.


딱히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에는 힘이 들거나 귀찮다.

근황을 물어보고, 또 답변해주는 게 갈수록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힘조차도 없다고 느낀다.

아무리 좋고 유명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이 긴 거를 집중해서 볼까라는 고민부터 들게 된다.


유튜브나 쇼츠를 볼 때도 있지만 그 역시 너무 정신이 없다.


그럴 때, 인터넷 방송을 슬며시 켜보게 된다.


비록 화면 너머에

전파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

카메라 혹은 영상 기기로 송신이 되고 있는 존재가

그 어딘가에 멀리 떨어져 있겠지만


그나마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방식을 통해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저 존재의 생각과 말이

(어느 정도 시간차가 있겠지만)

실시간으로 들리고 이해가 되고 느껴진다는 것은

각박한 이 삶 속에서 하나의 희열이요 희망이다.


내 경우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고

어머니는 꽤 거리가 있는 본가에 계신다.

그리고 이미 덩치가 커버린 나로서는

옛날처럼 무릎베개를 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그렇게 부탁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징그럽다고 안 해줄 것이다.


가까이 부대낄 수 있는 애인도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사회적인 위치나 지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이 인터넷 개인방송 창구를 통해

설령 그것이 어떠한 내용과 형태의 이야기이든

어릴 적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야심한 밤

혼자서 궁상떨며 인터넷 개인방송을 보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왜인지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가 너무나도 그립고 듣고 싶어 진다.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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