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너의 집이야."
한국을 사랑하는 멕시코 친구
수해이(Suhai)는 유일하게, 멕시코에 가기 전 온라인에서 먼저 만나 교류했던 친구다. 스페인어를 독학할 때 어느 시기부터 원어민의 첨삭을 받고 싶어 졌고, 온라인에서 정보를 뒤져보다가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수해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멕시코 뿌에블라(Puebla)를 여행할 때, 실제로 수해이를 만났다. 우리는 동갑이었고 오래 교류해 온 만큼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한국 팬'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한글과 드라마, 노래는 물론 한국 화장품까지 쓰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최신작이나 뉴스는 나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수해이의 집에서 놀다가 자고 왔던 날, 서랍 속 한국 화장품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정판 디자인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포장지까지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세일 기간에 몇천 원 주고 살 수 있는 화장품들을 인터넷으로 원가보다 비싸게 구해서 아껴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해이에게 선물로 주려고 로드샵에서 핸드크림을 사 왔는데,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챙겨 올걸 싶었다. 수해이는 '한국 화장품은 세계 최고'라며, 멕시코 화장품은 비싼 것만 좋은데 한국 화장품은 싼 것도 질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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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이의 친구, 데닌세
멕시코에 있는 동안 수해이만큼 나를 온 마음으로 환영해 준 친구가 있을까. 버스 타는 법, 물건 사는 법, 말 거는 법 등 사소한 생활 팁부터 단출내기 여행자를 품어준 그녀의 친구와 가족들까지, 그녀는 내게 모든 곁을 내어주었다. 나는 계획을 수정해 그녀의 집에서 며칠 더 묵으며 뿌에블라(Puebla)와 근교 도시들을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Chula! ¡Chido!
수해이의 친구 데닌세(Denninse), 데닌세는 걸걸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늘 "출라!", "치도!"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영어로 치면 'Cool', 'Nice' 같은 감탄사인데, 그녀의 맛깔스러운 발음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되었다.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도 "치도!" 멋진 사진을 찍고 나서도 "치도!" 하며 내게 자연스럽게 현지 언어를 세뇌시켰고,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위화감 없이 "치도!"를 외치며 사진을 찍곤 했다. 그녀는 '치도' 뿐만 아니라 출라, 출로, 칭곤, 칭고나 등 비슷하면서도 다른 변형형을 끝도 없이 가르쳐 주었다. 데닌세의 고향은 와하까(Oaxaca)라고 했다. 수해이와 데닌세는 가족까지 서로 친한 사이였고, 데닌세는 이곳 뿌에블라(Puebla)의 대학교에 다니며 수해이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는 수와 데닌세를 따라다니며 저렴하고 맛있는 타코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데닌세의 꿈은 옷을 직접 디자인해서 자기의 가게를 차리는 거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 데닌세가 디자인한 멕시코 옷을 입고 '치도!'를 외칠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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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이의 언니, 소치틀
수해이는 언니와 오빠가 3명이나 있는, 사 남매 중 막내였다. 수해이의 집에서 묵었던 날, 바로 위의 언니인 소치뜰(Xochitle)은 대뜸 선물이라며 멕시코 스타일 옷과 스카프 등을 잔뜩 품에 안겨 주었다. 아이 같은 순수함과 반가움이 가득 느껴졌다. 소치뜰은 내가 만난 멕시코 사람들 중 가장 차분하고 말수가 적었다. 멕시코에도 이런 내향인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소치뜰은 함께하는 내내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우리는 셋이서 함께 아뜰릭스꼬(Atlixco), 꾸에르나바까(Cuernavaca) 등 뿌에블라(Puebla) 근교의 작은 마을에 놀러 다녔다. 소치뜰은 취미로 심리 치료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나에게 개념을 설명해 주다가 프린트물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氣'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멕시코에서 氣를 보게 되다니!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소치뜰이 설명하려고 하던 개념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야였다.
소치틀은 왠지 동양의 분위기가 풍기는 형형색색의 전시장에서, '지금 이곳'의 느낌을 담아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장터에서 샀던 목걸이에 기도를 하며 기를 불어넣은 뒤 내게 선물해 주었다.
나는 종교든 미신이든 믿지는 않지만, 정성과 염원이 깃든 물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살다 보면 실체 없는 믿음이라도 붙잡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펜던트에 깃든 건 내가 남은 여행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소치틀의 마음이었다. 긴 기간 동안 사람들과 함께 하다가 어느 순간 훌렁 혼자가 된 뒤에는, 괜한 허전함에 이따금씩 펜던트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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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이의 엄마
수해이의 엄마는 수해이를 '우리 집의 아기'라고 했다. 사 남매 중 막내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므로 거기선 나도 아기 친구, 아기였다. 삼 남매 중 첫째로 자란 나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요상한 기분이었는데, 듣기에 나쁘진 않아서 잠시 내 현생을 살포시 접어두었다.
수해이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의 엄마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 번은 수해이와 같이 갔던 바에서 아저씨가 자꾸 말을 걸면서 스킨십을 시도하려 했다. 그녀는 그런 주책 아저씨를 스페인어로 'Rabo verde(라보 베르데)'라고 부른다며(영어로는 Old dirty boy) 이렇게 말했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No me toques(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해." 인사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Me agradas(너를 좋아해)"라고 말한 남자도 있었다. 이 모든 게 문화 차이인지 추파인지 헷갈리던 참이었다. 수의 엄마가 단칼같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말해야지. No me agradas(나는 너 안 좋아해)."
수해이의 엄마는 따뜻한 밥도 차려주시고 빨래도 도와주셨지만, 함께 타코도 먹으러 가고 바에 가서 노래도 부를 만큼 거리낌 없이 함께 어울렸다. 나는 수해이와 수해이의 친구, 언니, 엄마의 보살핌 덕분에 용기를 가지고 남은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여행 중 도무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만큼 몸이 아팠을 때는 수해이의 집으로 돌아가 쉬기도 했다. 수해이의 엄마는 영양식을 차려주셨고 수해이의 언니는 기 마사지를 해 주었다. 그들 앞에서 혼자 길을 잃었던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니 여독이 절로 풀렸다. 수해이의 사람들에게 신세 지면서, 때로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나의 힘과 의지가 아닌 타인의 도움과 사랑이라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이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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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너의 집이야
헤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말했다.
"멕시코는 너의 집이야. (México es tu casa.)
한국에 돌아가도 우리를 잊지 마!
(¡No nos olvides cuando vuelvas a Corea!)"
나의 집은 너의 집이야(Mi casa es tu casa), 멕시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고, 좋아하는 말이고, 언제 들어도 다정한 말이다. 우리 멀리 떨어져도 헤어지지 말자는, 멕시코만의 특별한 작별 인사다. 이제 뿌에블라에 가면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친구들이 있고, 언제든 날 품어줄 아늑한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마음 한 구석이 포슬포슬해진다. 친구들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도 나를 잊지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