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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ul 21. 2023

고독의 숲이요, 고독의 바다로다

우울한 백수가 우울한 백수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너랑 놀아?친구는 방에서 하루만 안 나가도 답답해서 못 참겠다고 토로했다. 어둠과 광기, 폐허에 흠뻑 젖어 있는 내가 남들이 보기엔 신선처럼 초연해 보인다니, 이것은 아마도 고독의 미학이자 고독의 매력. '고독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수많은 자아 중에서도 가장 고립된 자아! 나는 미숙한 자아들의 늙은 왕이자 지친 방관자, 낡고 묵직한 고독을 간직한 최고 권위의 자아이므로 이토록 헷갈리는 자기 자신의 소란스러움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다.


고독한 백수의 방구석 인생을 너무 답답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내 고독의 방에는 숲도 있고 바다도 있다. 한 호흡 길게 내쉬는 그곳이 고독의 숲이요, 시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곳이 고독의 바다다.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온 우주를 여행하는 것은 가난한 실업자의 생존형 상상력. 어쩌면 이것은 생계형 기예. 적당한 피로와 스트레스는 삶에 활력을 준다고도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다 쓸모없는 것들이다. 나는 그렇게 중립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휴식, 체와 같은 휴식을 원한다. 내 심연의 지하실에는 청량하고 신비한 천연동굴이 있는데, 내가 연락이 되지 않을 땐 그곳에서 스스로의 고독을 염하며 쉬고 있다고 봐주시면 된다.


직장에 다니며 이맘때쯤 겨우 휴가를 내고 여행지에 다녀올 때는 '쉬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쉰다'.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이방인을 사귀고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기 내면을 해찰하는 고차원의 백수, 진정한 루저 곳으로 떠나지 않는다. 어설프게 여행길에 나섰다가 돈과 체력만 소진하느니 내 독방의 숲과 바다와 동굴에서 알찬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지 않을까? (잘못하면 실업 급여로 여행하는 젊은 여성이라고 매도당할지도 모른다!)


내 일인분의 살림 이력은 어언 17년째, 고독업의 고위 경력자인 나에게도 고독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고독은 종종 위험하고 괴기한 것으로 변모해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 그럴 때는 잠시 사교를 위한 일정을 잡았다가 직전에 취소하면 된다. 내향인에게 외부 일정이 취소되는 것만큼 은밀한 기쁨을 주는 게 있을까? 고독에는 때로 이렇게 잡기가 필요하다. 고독에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더 많다. 에 있든 에 있든 어차피 삶이 고통인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사실 나는 오늘 큰 실수를 하나 했다. 뉴스를 너무 많이 읽은 것이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과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과 죽음을 기만하는 사람들과…… 황당한 발언과 어이없는 사고와…… 졸렬한, 너무도 졸렬한 이기주의! 이 땅의 유서 깊은 '나 몰라라'의 정신! 대단하다! 자알들 논다! 세상은 바깥으로 잠시 한번 눈길을 준 것만으로도 내게 깊은 절망을 안겨준다. 현실의 극악이 버티고 있는 한 나의 고독이 힘을 잃은 일은 없어 보인다. 고독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시대다. 세계의 혼돈에 비하면, 나의 고독은 아직도 한참 부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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