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로 살아온 탓일까, 매일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끈적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돌아갈 곳이란 없다고 여기면서도, 돌아간다는 말을 불립문자라 여기면서도, 결국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퇴근길 버스는 지친 도시인들이 긴 하루만큼 고독해진 채 서로를 스쳐 지나는 귀향 버스 같았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마침내 자취방에 도착하면 짐도 풀지 않고 그대로 풍덩- 침묵 속에 쓰러져 안기는 것이다. 돌아왔구나, 라고 말하면서. 마치 돌아왔다는 듯이.
그렇게 밤마다 어제의 슬픔에게 오늘의 슬픔을 고백하고, 어제의 고독에게 오늘의 고독을 고백했다. 슬픔은 슬픔끼리, 고독은 고독끼리, 어제의 탕아는 오늘의 탕아를 토닥여 주었다. 한 세월 건너가버린 이민자 가족처럼, 우리는 매일 밤 서로를 껴안았다지.
[노스탤지어는 '두려움과 불안, 방향 상실이 지배하는 시대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욕구불만의 누적이 낳은 달콤하고 쓰라린 이 마음의 병은 상실의 징후이자 과거 기억을 아름답게 윤색해서 삶의 고달픔을 견디게 하는 정신의 한 치유책이다.] *장석주,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대도시에서의 가뜩한 하루는 그날 아침 덮고 있던 이부자리조차 오래전 잃어버린 무엇처럼 아득해지게 만들었다. 아침과 밤 사이의 긴 사막, 그곳에서 나는 낙타처럼 고달픈 시간을 견뎠던가. 니체에 따르면 낙타는 '하루 중 3분의 2를 제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노예'다. 24시간 중 14시간을 일한 날도 허다했으니, 나는 검은 정장을 입고 타는 사막을 걷는 피곤한 낙타였으리. 집으로 돌아와 몸을 누이면 인생이 다 흘러가버린 기분에 사로잡혔다. 인생, 지겨운 인생. 겨우 이곳에 돌아오기 위해 발버둥 쳤던 건가. 일기라도 쓰겠답시고 기어코 앉아 있노라면 어제까지 빛나던 별들은 덧없이 사라져 있고, 술 한 잔에 내도록 말 못 한 '아니오'들만 사무친다.
이곳은 몇 번째 자취방일까. 정확히 기억 나지 않아…… 아마도 열 네 번 내지 열 다섯 번…… 더 큰 상실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끝없는 떠돎이란 실은 하나의 병적인 증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노스탤지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어리석게도 나는 매 순간 '돌아갈 곳 있음'이라는 난간을 붙잡고 서 있었으며, 결국 '고독'이라는 단칸방에 살림살이를 차려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이 고독이고 무엇이 고독 아닌지 알 수 없게 되었음에도. 마치 나는 고독하다는 듯이. 고독이 뭔지 안다는 듯이.
내 고독의 방은 때로 지하였고, 때로 3층이었고, 때로 옥탑이었다. 때로 창고였고, 때로 5층이었고, 때로 이 땅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딜 가도 노스탤지어의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거쳐온 모든 방들을 몽땅 낙타의 등에 동여매었고. 그것은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혹 너머 혹. 혹은 고향 너머 고향. 가자. 퇴근 후 혼자 울고 싶을 땐 창고방으로. 가자. 누군가가 그리울 땐 베란다가 있는 옥탑방으로. 가자. 도시의 야경을 보고 싶을 땐 가장 높은 8층방으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준, 밤마다 서로가 서로를 껴안았던 무수한 고독의 방들에게로. 그 모든 곳에서조차 곧 떠나게 될 거라는 느낌에 시달리면서.
아침과 밤, 삶과 휴식 사이의 거리는 왜 그렇게도 멀었던가. 나는 매 순간 무엇이 그리도 그리워서 이토록 고독해졌단 말인가. 그래, 이제야 알겠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결국 고독, 온통 고독, 오직 고독이구나…….
돌아갈 일도, 돌아올 일도 없는 실업자의 시간이 왔다.
나의 낙타, 이제 쉬어요.
달콤할 일 없이. 쓰라릴 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