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어둠이 후드득 떨어질 때 생각한다, 외롭지 않은 혼자가 어디 있겠는가. 터질 듯한 보름달 아래서도 몹시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보는 사람 마음은 어쩌라고 달은 저리 크게도 부풀었다 이지러지는 걸까. 무책임하여라. 나는 달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언젠가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말았다. 다들 잘 사나? 아니다, 나부터 좀 잘 살자.
어두워진 골목길을 돌고 돌았다. 무작위의 골목길 위에서 같은 사람을 자꾸만 또 마주쳤다. 묻고 싶었다. 지금 우리 몇 번이나 마주친 거죠. 라고 혹시 나에게 묻고 싶지는 않은가요. 걷거나 뛰고 나면 좀 나아질까요. 당신도 적막한 독방에서 홀로 술을 마시나요.
할 수만 있다면 그리움에게도 휴식을 고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르겠다, 내가 언제를,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문득 사진첩을 열어 지난날의 여행과 모험들을 돌아보았다. 사진 속의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미소 짓는 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은 괴로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 그때는 알았던가. 알았다면 여기까지 왔겠는가. 그런데 어찌 그리 웃는가. 웃는 나는 언제나 한 줄의 문장도 남겨주지 않지. 저 얼굴의 전언은 이것일까 싶어 가슴이 아스스하고, 쓰지 마,
때로 고독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한 어조로 글을 쓴 점을 반성한다. 나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써야만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고독일 뿐. 고독에 이기든 고독에 지든, 고독과 싸워 무엇하리. 깊은 고독에 빠진 자는 흔들리는 나뭇가지에도 제 모든 것을 걸기 마련이니, 혹시 내 글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 버린 독자가 있더라도 부디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주시길. 술에 취해 쓴 글은 다음날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곤 했지만, 몽상과 망상에 취해 밤낮 구분 없이 사는 실업자로서는 술 취해 쓴 글을 언제 지워야 하는지도 모호해지고 말았다. 지워야 할 그 시간에도 쓰고 마시고 있으니. 이런 내 글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도 욕심인 지라, 나는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무기한 접어버렸다. 어차피 내 글은 끝없는 실패의 기록. 어쩌면 실패해야만 빛나는 글. 이런 답변이야말로 내 글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는지도.
-귀한 제안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원고는 잘 읽고 검토했습니다만, 저희가 잘 만들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보내주신 원고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는 맞지 않아서 출간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뜻이 맞는 출판사를 만나서 좋은 책으로 만들어지기 바랍니다.
-저희 출판사에 관심 가져 주시고 소중한 원고를 투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안다, 잠시라도 그리움을 잊는 방법은 혹독한 노동뿐. 그런데 내 그리움의 근원은 무엇이지? 그리워, 그리워, 그리움의 후보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어떤 단어가 남을까? 미래는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하는 거지? 간절하게, 아니면 무관심하게? 낙관하면서? 아니면 얻어걸렸다는 듯이?
더위에 지친 어느 날, 여름밤엔 술 없이 어떻게 버텨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을 때 고독에 절은 이들이 저마다 답변했다. 불면엔 커피보단 술이죠, 함께 마시는 수밖에 없죠, 그거 알아요? 혼자가 아니어도 외로워요…….
그렇군요, 고독과 고독이 만나면 더 고독해질 뿐이군요.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게 나을까요. 잠시라도 만났다가 헤어지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워질 테니까요. 그렇다고 발걸음을 되돌려 다시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요. 헌데 우리가 각자 보고 있는 건 달인가요, 허공인가요. 그래도 잃어버린 얼굴이라곤 말하지 않기로 해요, 여름밤은 잠들기 힘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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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쓴 다음날, '그리움은 욕망의 절정'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고 말았다. 나는 내려놓기는커녕 더 힘을 주고 있었던 걸까. 마지막으로 남는 단어는 결국…… '그리움'?
후회, 그러나 별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