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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Mar 31. 2024

미안합니다. 저녁은 드셨는지요.

#10

 나 잠시만 여기에 있겠다고 그랬었지요. 같이 저녁먹자던 당신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랬었지요. 헌데 1년이 지나버렸다니요. 기다려 달라고 말했던 그 계절에 나 아직 있어요. 여전히 아름다워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너무 늦은 편지입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혼잣말들, 그것들 다 당신에게 붙이려던 이었는데요. 미안합니다. 저녁은 드셨는지요.


 수십 년 잊어버린 듯 걸었습니다. 당신 잊고 좋았습니다. 당신 없어서 힘 났습니다. 혹 과거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서웠지만요, 무서움 없이 걸었습니다. 반짝이는 꽃길이었습니다. 거기 나와 평행하게 살아가는 나들, 아무것도 잊지 않은 나들, 나들 나들 푹신했구요. 편지는 늦었지만요. 답신들 저기 쌓여 있지만요. 영원히 열어볼 일 없을 테지요.


 미안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녁은 드셨는지요. 나는 오래된 시장 구석에서 국밥을 먹었습니다. 배가 불러 막걸리 병을 비우지 못했습니다. 남은 막걸병을 째로 들고 계산대 앞으로 갔습니다. 주인아저씨가 퉁을 주더랩니다. 이쿠, 그 술병 절대 가방에 넣지 마시유, 손에 딱 들고 가시라구. 나도 질 수 없었습니다. 아재요, 내 여기 바지 옆에 딱 보이게 들고 갈 거라예. 주렁주렁 흔들면서 갈 거라예. 내 이 동네 미친 막걸리쟁이다 아주 광고하고 다닐라고예.


 서로 농담에 농담을 이겨먹겠다고 까불다 보니, 계산에 실수가 있었던가 봅니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계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천 원 더 내냐 천 원 덜 내냐 무에 그리 대수인가요. 그 아재 천 원 더 가져가면 그러려니 하는 거구, 내 천 원 거저먹으면 아싸리 장땡! 모르겠습니다. 결국 내가 이겼던 지요. 아저씨가 검은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반도 남은 막걸리를 싸 주었습니다. 아가씨, 그래도 남들 보기 좀 그렇자네. 아이 얼마 남지도 않은 거 무에 그리 감싸주시겠다고요. 나 면목 없었습니다. 키오스크도 없이 비닐봉지값도 없이 막 사는 인생들,  그리 미안할까요. 무에 그리 미안할까요.


당신 없이도 혼자 먹어서 미안합니다. 꽃샘추위에 국밥 한 사발 뜨수웠습니다. 하루 그게 다였습니다. 당신도 저녁 드셨는지요. 아직도 기다리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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