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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Mar 20. 2024

낙화에 대해서 나는 일절 모릅니다

#09

 안녕 안녕, 봄이 왔어요. 가수면 상태에서 쓴 첫 문장입니다. 깨어나 보면 메모장에 적혀 있는 수많은 ㄱㅏㄱㅑㄱㅓㄱㅕ, 나는 언제나 그 글자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는 애인에게 말합니다. 이 글자들을 알아봐 줘요, 알아보기만 하면 위대한 시인이 탄생할지도 몰라요! 몽상에 잠긴 글자들을 해석하는데 진력이 난 애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곁을 떠나갑다. 이별의 사유는 필체입니다. 이별의 사유가 고작 필체라는 게, 심오하지 않습니까. 아닙니까, 심란, 이라고 써야 합니까. 심각, 이라고 써야 합니까. 이런 역시 인이 되기엔 글러 먹었네. 웃긴가요 당신, 꽤 진지한 이야기입니다만, 킥킥, 진지하면서 웃긴 것이 좋기는 좋지요.


 안녕 안녕, 나는 두 번씩 말하길 좋아합니다. 운율을 좋아하나 봐요, 당신은 말하겠지요. 어어, 어, 사실은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입니다. 두 번씩 말해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자의 어거림, 꿈틀거림, 들어봐요 모든 기도는 반복되지 않습니까. 개나리가 나리나리 맺힙니다. 달래가 달래달래 흔들립니다. 나리 씨와 달래 씨가 시를 터뜨립니다. 위대한 시인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여기 꽃이 피고 나서야 빈 노트를 펼치는 자, 허나 무엇을 쓰겠습니까. 시는 겨우내 다 쓰여진 것을, 봄은 오직 터뜨리는 일이라는 걸. 꽃 안의 꽃들보고도 모르겠습니까. 꽃들도 쓴 다음에 펼친다는데, 누가 펼친 다음에 쓰겠답니까. 저 머나먼 모서리까지 대체 어느 세월에 닿으려구요. 다음 장도 다음 장도 비었습니다. 가도 가도 까마득하구요.


 침묵에 잠겨 있는 살구나무 아래로 걸어갔습니다. 이 나무가 내가 좋아하는 나의 그 나무라고,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오종종 맺혀 있는 연록의 꽃망울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매화의 것이며 매실의 것이라고 아는 체하지 않기로 합니다. 연둣잎 움트는 조팝나무 화단을 지났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어지럽힐 향기를 만들고 있다고, 준비 없이 지났다가는 물큰한 꽃멀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알량한 인간의 말 보태지 않기로 합니다. 삼월의 꽃들이 얼마나 용감한데요. 아무려나 내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으니까요. 나는 두 번씩 말해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졌으니까요. 하여도 말하고 싶은 마음 잠시였구요, 말하지 않기로 하니 더욱 즐겁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거 진짜 쉽지 않은 거거든요. 나는 꿈속에서 자기 전 쓰던 글을 이어 씁니다. 보통은 퇴고까지 그곳에서 마친답니다. 들어봐요 나는 꿈속에서 위대한 시인인지도 몰라요! 비록 깨어나면 남는 것은 안녕 안녕 어눌한 인사, 해석 불가의 가갸거겨, 킥킥거리며 떠나간 무정한 애인들 뿐이지만…… 심오면 어떻고 심란이면 어떻습니까. 심각이면 또 어떻습니까. 안녕 안녕 봄이 왔어요. 당신 없는 미래로 나는 갑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나 계속 당신을 미워할 테니까요. 아는 미래로부터 떠나갑니다. 꽃들의 과거에 대해 묻지 마세요. 낙화에 대해서 나는 일절 모릅니다.


 날 떠난 애인들이여, 나는 이제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봅니다. 나는 한 마리의 새가 여러 다른 노래를 부른다는 걸 알아요. 산수유 꽃그늘 아래 나무 기둥 껍질 벗겨지며 조용히 신음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멀어졌던 두 나무 사이가 다시금 살금살금 가까워지는 기척을 느껴요. 연한 아기 잎들 가까이 다가가면 햇살의 입자들이 펄펄 쏟아지고요. 길섶의 낙엽들이 갑자기 소르르 맴돌이칠 때, 그건 나를 부르는 거예요. 안녕 안녕, 나도 그렇게 화답해 주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프리지아 꽃향기를 맡았습니다. 간지러운 느낌에 뒤돌아보니, 유리창 너머에 프리지아가 화병에 꽂혀 있었습니다. 가게의 문은 닫혀 있었는데요. 닫혀 있는 정도가 아니라 클로즈 팻말을 떡하니 걸어다 놨는데요. 그건 정말 내가 아는 프리지아 꽃향기였거든요. 지아 씨가 날 부른 게 분명하거든요. 나는 아주 잠깐 너머의 존재가 됐던 걸까요.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나 아직 자고 있는 건가요. 웃긴가요 신, 킥킥, 당신이 웃었다면 그걸로 좋아요. 나도 좋아요. 하지만 이건 시가 아니랍니다. 산책길에 읽고 들은 이야기여요. 꾸미지 않은 이야기지요. 그저 누구에게나 종알종알 말하고 싶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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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처럼 벗겨지는 산수유 나무 기둥
안녕 안녕 나리 씨
향기의 태동
나의 살구나무
지아 씨,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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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으로부터 5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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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에서의 지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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