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는 문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날, 그런 날들이 하나둘씩 늘어갈 때 나는 나에 대해서 조금씩 잊어가도 되는가
어떤 날엔 3층을 누르다가 어떤 날엔 5층을 누르다가 혼자서 소스라친다 아니잖아, 내가 가야 할 곳은 그 층이 아니잖아,
오늘 누르려던 층은 8년 전 여름 휴가가 끝나고 나서 잊어버린 회사 사무실의 층이었다 알고 보니 잘못 누른 버튼이 하나 없었다 모두 언젠가 살았던 버튼의 삶, 끝내 내가 허락했던 망각이 나를 이상한 허공으로 불러 올릴 때 내 손에 슬그머니 열쇠를 쥐여준 것은 누구인가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가
문을 열어 달라고…… 거기서
불이 켜지지 않는 어느 대문 앞에 서서 그러나 나는 말할 것이다 그게 다 네 지난 삶이었다고 착각하지는 마, 아니잖아, 거기가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면
저 아래층에 서 있는 나에게, 내가 나에게, 나에게……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추락했다 튕겨 오르는 말들은 꼭 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같았다 부드러웠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언젠가 살아냈던 삶의 버튼이 기억에서 하나씩 사라져 갈 때 갈 곳을 잃어버리고 대문 앞을 서성거리는 것들이 다 시라고는 말하지 마, 마침내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불빛도 없고 밥도 없고 누구도 아무에게도 기다리라고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조금씩 잊어버려도 좋다고 내가 나에게 허락했을 뿐
이상한 허공을 연기처럼 오르내리다 매일 돌아가는 집의 비밀번호를 끝끝내 기억하지 못하는 날,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문 앞에 서 있었는가 하물며 누구에게, 간절하게 말하고 있는가
문을 열어 줘…… 거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