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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의 길 / 김행숙 시인

믿음의 시 169 / 김행숙 시집,『타인의 의미』2010

by 우란

가로수의 길 / 김행숙



플랫폼에서 서서히 떠나는 기차처럼 지나갔지

그래서 너는 참 길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

기차처럼

너는 다음 칸을 가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갔어

그 외에는 가진 게 없다는 듯이

기차에 대해 생각하고

너에 대해 생각하고

길거리에는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모자를 내려놓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들이 가장 크게 입을 벌렸을 때

땅이 조금 흔들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똑바로 걸을 수가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가로수와 가로수의 간격은 법으로 정해져 있을까, 발과 발을 모으고 서서

뾰족한 자세로 그런 생각을 해

가로수와 가로수의 사이는 다정한 곳일까

무서운 곳일까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의 사이에 대해 생각하고

치여 죽은 것들과

죽어 가는 것들로부터 너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경적 소리가 되고 싶어

모두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

이 도시를 텅 비웁시다

미래에

유령이 되어 돌아오자, 다신 돌아오지 말자, 사이에서 유령의 감정을 생각해 내려 애쓰며

거울을 보다가 유리를 보듯이

너를 높이 높이 떠올리며 걸어갔어

유리창은 어떻게 박살이 났을까

유리에서 맑은 하늘까지

너는 참 길구나, 그렇게 생각이 길어져

맑은 하늘에서 물속에 잠긴 도시까지

화염이 애타게 포옹한 우리들의 도시까지.



(주)믿음사

믿음의 시 169

©김행숙 시집,『타인의 의미』2010

36-37쪽




나는 그래


기차가 지나갈 땐 희한하게도 마음이 울렁거린다.
쿵- 쿵- 울림이 아니라
아주 깊은 호수에서 물방울 하나로 시작되는 파문이
내 마음에 스미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이 떠나갈 때마다 기차를 생각한다.
내 옆을, 내 앞을, 간혹 내 뒤까지 지나가는 마음.
마음의 결단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찾고 싶은 마음.

마음들이 기차에 올라탄다.
모두 다른 마음이지만
아주 깊은 호수에서 온 물방울 하나가
모두 어딘가 자리 잡고 있으니
외롭지 않아 모여든다.

그는 노래를 하고
그녀는 낭송을 하고
아, 저 아이는 춤을 춘다.

출발해 마지막 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어지는 마음들의 마음.

마음이 울렁거린다
마음들이 또 모이고 또 흩어진다.
보살핌이 필요한 사랑이 '가로수의 길'에 선다.

떠나는 이의 슬픔, 돌아온 이의 기쁨,
모여드는 이들의 바람, 달려드는 그들의 후회가
섞여 '땅이 조금 흔들'리고
'다정한' 이들의 '경적 소리가 되고 싶어'
안달 난, 길.

다행스럽게도, 지금도 길인 가로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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