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 2010,『타일의 모든 것』
어두운 정원에 아내를 묻고 사내는 푸른 병에 담은 물을 뿌린다. 살구색 넥타이를 고르고 노동자처럼 아침에 구두를 닦는다. 천천히 이빨을 닦고 차를 끓인 다음 찻잔 속에 담긴 달과 生活을 물끄러미 본다. 정원에 무성한 풀들, 낡은 구두 속에 떨어진 잿빛 수염처럼 그것들이 마구 자란다. 거품비누로 손을 씻고 검은 우산을 펼치고 기침을 두 번하고 달을 옮겨오기로 결심을 하는 동안, 풀들이 발등을 덮고 거침없이 담장을 넘는다. 이런 밤에 녹색 고무나무 아래 아내의 젖가슴이 하얀 돌처럼 굴러다니고, 달은 움푹한 빈손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맨발로 달려와 창백한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 어린 약혼자처럼. 이젠 그의 것이 아닌, 아름다운 아내의 입술에서 검은 뱀이 천천히 흘러온다. 기필코 눈물을 터뜨리며 사내는 봄볕 속에서 마른 두 팔을 휘젓는다.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385
©이기성, 2010,『타일의 모든 것』
34쪽
나는 그래
애도는 남은 자를 위한 행위다.
이른 이별과 늦은 이별을 비교하지 않듯,
애도는 남겨진 이를 재촉하거나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다만, 간혹 잔혹하다.
일상에 스며든 슬픔을 한 방울의 슬픔으로만 느껴지게 하지 않는다.
눈과 두 팔, 심지어 광활한 마음으로도 다 품을 수 없는
울음으로, 삶이란 날개를 눅눅하게 적셔버린다.
그리움이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이 공허함이 되는 순간,
이것을 애도의 물결이라 해야 할까.
그렇다면, 애도의 끝맺음은 공허함 뒤에 있는 걸까.
'나비'의 날갯짓도 그때 비로소 보이는 걸까.
남은 자만 알 수 있겠지
계속, 살아가는 이들만이 확인할 수 있겠지.
그래야만 하는 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