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활동 반경을 사용자인 ‘나’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통제 가능한 도구
"장미, 요즘 AI 세상은 너무 시끄럽지 않아? 매일같이 더 똑똑하고, 더 빠르고, 더 인간 같은 AI가 등장했다고들 하잖아. 솔직히 말하면 내가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아."
"그렇지 교실밖. 그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일지도 몰라. 최근에 나타난 '조용한 조력자'처럼 말이야. 어쩌면 그게 교실밖이 찾던 희망의 단서일지도 모르지."
장미와의 짧은 대화는 늘 나를 새로움으로 이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인간은 AI를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것은 기술의 고삐를 인간이 쥘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떻게 인간의 주도성을 유지하며 AI와 함께 일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막을 수 없다면, 그 위에서 서핑을 할 수 있는 우리만의 보드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최근, 나는 아주 멋진 맞춤형 작업대를 하나 발견했다. 장미가 '조용한 조력자'로 표현한 ‘노트북 LM’이다.
노트북 LM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AI 도구 하나가 추가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생성형 AI들이 사전학습 또는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의 모든 정보를 학습한 ‘척척박사’를 지향했다면, 노트북 LM은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이 녀석은 내가 허락한 자료, 즉 ‘나의 세상’ 안에서만 생각하고 움직인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다. 인터넷 기반의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마치 광장에 나가 “내 고민 좀 들어줘!”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대답할지 알 수 없다. 때로는 천재적인 답변을 주지만, 때로는 그럴싸한 거짓말(환각, Hallucination)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하지만 노트북 LM은 내 서재로 AI를 초대하는 것과 같다. 내가 고른 책, 내가 쓴 글, 내가 모아둔 자료들만을 텍스트 삼아 대화한다. AI의 활동 반경을 사용자인 ‘나’의 영역으로 한정함으로써, 통제 불가능할 것 같던 AI에게 ‘주도성’이라는 고삐를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광장의 현자가 아니라, 내 서재의 충직한 조수이자 성실한 사서가 생긴 셈이다.
장미는 노트북 LM의 이런 특징을 멋지게 표현했다. “‘환각’은 없지만 ‘맹점’은 있다”라고. 그렇다. 노트북 LM은 내가 제공한 자료에 기반하기에 지어내는 이야기, 즉 환각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정보의 신뢰도가 수직 상승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 ‘맹점’이 존재한다. 내가 제공한 자료가 편향되어 있다면 AI의 답변 역시 편향될 수밖에 없다. 내 서재에 특정 관점의 책만 가득하다면, 내 조수는 결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 결국 ‘어떤 자료를 먹이로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선별 능력과 비판적 사고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AI의 답변을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답변을 얻기 위해 좋은 질문과 좋은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책임.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주도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그렇다면 이 충직한 조수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특히 글을 쓰는 작가나 지식을 다루는 교육자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어준다. 과거의 내 글들을 모두 업로드하고 "욕망하는 AI 시리즈 전체에서 내가 ‘인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한 비유는 뭐야?”라고 물을 수 있다.
AI는 내 글쓰기 습관과 핵심 가치를 순식간에 분석해 보여줄 것이다. 수십 권의 책과 논문을 던져주고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인간-AI 협업’에 대한 새로운 목차를 짜줘”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막막했던 집필의 시작을 함께 열어주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또 어떤가. 한 학기 분량의 교과서와 참고 자료를 모두 넣고 "이 내용 중에서 배움이 더딘 학생을 위한 문해력, 수리력 신장 프로그램과 최적의 학습 경로를 만들어줘"라고 요청하든지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탐구를 할 수 있는 심화 질문 5개를 만들어줘"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텍스트나 사진, 동영상을 소스로 '오디오 오버뷰' 기능을 사용하여 친숙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팟캐스트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에 맞는 맞춤형 질문을 생성하며 교사는 창의적 수업설계라는 더 고차원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는 것을 넘어, 교육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혁신이다.
작업의 소스는 현존 자료로 한정하여 작업의 집중도를 높이되, 엉뚱한 이슈로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막고 내가 지시한 경계 안에서 충실하게 작업을 진행해 주는 '나와 오래전부터 협력해 온 충직한 비서'와 같은 존재로 작동한다. '출처-채팅-스튜디오'로 구분한 작업 영역 역시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AI와의 협업을 오로지 현재 요구되는 작업으로 한정한다. 마치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인간들이 기다리던 '개인 맞춤형 AI 연구실'이 생긴 것이다.
물론 노트북 LM은 완벽한 도구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생성형 AI가 그랬듯, 여전히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인간의 조력자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조용한 AI의 출현에서 내가 고민해 왔던 기술진화에 따라 함께 증폭하는 문제들을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생각한다. 인간을 압도하고 대체하려는 방향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활동을 존중하고 그 곁에서 돕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문득 AI와의 관계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한때는 거대하고 통제 불가능한 파도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내 서재 한편에 조용히 앉아 내가 건네는 책을 기다리는 파트너에 가까워졌다. 이 조용한 파트너에게 어떤 책을 건네고, 어떤 질문을 던질지(출처),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 끝에(채팅)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날지(스튜디오), 나는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기대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