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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10. 2022

소설, 그럴듯한 거짓말

소재, 구성, 묘사, 스타일(문체)까지 확보한 작가가 그 다음에 할 일

한국어 사전은 소설을 '사실이나 허구의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을 가미하여 산문체로 쓴 문학의 한 갈래'로 풀이한다. 간단히 말해 소설은 '허구적 서사 문예'이다. 소설의 재료에는 사실도 있고 허구도 있다. 소설가는 사건이나 허구적 상상을 '흥미롭게' 문장으로 구성하는 일을 한다. 소설가에 가까운 우리말로 '이야기꾼'이 있다. 이야기꾼의 첫 번째 조건은 듣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게 사실과 허구, 경험과 상상을 섞어 그럴듯하게 푸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와 소설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말과 글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항상 글도 잘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일치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글을 잘 쓰는 소설가가 대화에는 서툰 경우도 있고, 말이라면 청산유수인 사람이 그것을 문장으로 옮기는 재주는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를 동시에 잘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하다.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말 잘하는 소설가가 말 못 하는 소설가보단 성공 확률이 높은 이치와 같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고 드물게 일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썰을 푼다'는 말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한국어 사전에 쓰여 있기를 썰은 의견이나 생각, 이야기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썰을 푼다'라고 함은 우선 이야기를 잘한다는 것이고, 다른 의미로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썰을 잘 푸는 '탁월한 이야기꾼' 앞에 모인다. 누구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청자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는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듣는 사람이 쏙 빠지게 하는 기술이 바로 탁월한 이야기꾼, 즉 썰 푸는 사람의 능력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은 보통의 사람과 비교하여 무엇이 다를까. 이는 그럴듯한 거짓말로 독자를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가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나라는 말과 같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을 보자. 우선 이 사람들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듣는 사람을 곁에 꼭 묶어 두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심과 흥미의 지속'이다. 문제는 도대체 어떤 기술로 듣는 사람의 관심과 흥미를 지속시킬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관찰하여 보자. 탁월한 이야기꾼은 짧은 이야기조차도 그 안에 듣는 사람이 흥미를 가질만한 전개와 갈등을 넣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즉 이야기를 '구성'한다. 구성은 이야기가 하나의 독립적 텍스트로써 완결되도록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성만 잘한다고 이야기가 감동적일 순 없다. 두 번째로 중요한 능력은 '묘사'이다. 묘사는 장면이나 상황을 그려내는 일,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를 설명하는 일을 두루 포함한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누구는 두어 문장 이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누구는 두어 페이지 이상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묘사력의 차이이다. 묘사력이 있다는 것과 묘사를 길게 한다는 것이 꼭 같지는 않다. 그런 능력이 탁월한 이야기꾼의 조건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묘사를 잘하는 사람도 각각 특징이 있다. 어떤 사람은 수식어 없이 사실 관계만 연결하는 데도 독자가 빠져들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작가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길게 설명한다. 수식어를 남발하여 길고 복잡하게 묘사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구성과 묘사까지 이야기하였다. 이야기의 얼개를 잘 잡고 이를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기술만 있다면 일단 글 쓰는 자의 일차 덕목은 갖춘 셈이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스타일'이다. 그 작가만 독특하게 구사할 수 있는 개성이 바로 스타일이다. 작가로서 성공 여부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스타일은 글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까.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이라는 책을 쓴 루카스는 스타일은 '문체' 안에 담긴다고 말한다.

루카스는 인격은 문체의 기초라는 생각 아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루카스가 말하는 독자에 대한 예의 안에는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원리를 담는다. 그것은 명료성, 간결성과 다양성, 세련성과 소박함 등이다. 그 외에도 분별력과 진실성, 건강과 활력, 직유와 은유, 영어 산문의 음악성이라는 장을 통해 루카스는 좋은 산문을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할 '스타일'을 강조한다.


다시 확인하건대 이 글의 제목은 '소설, 그럴듯한 거짓말'이다. 구성, 묘사, 스타일(문체)까지 확보한 작가는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지만 좋은 글을 넘어 '정말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또 다른 조건들이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의 의미는 일종의 '정직함'이다. 모순된 말 같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럴듯하다는 것은 독자가 보기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지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을 더해 허구적 구성과 묘사로 완결 지을 때 하는 말이다. 허구적 서사라고 해서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소설가는 거짓말을 할 자격이 있고, 사실을 각색할 수 있지만 여기에 따르는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  


작가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상황을 구성하고 묘사하기 위한 취재를 한다. 성공 욕구가 큰 작가일수록 모든 소재에 자신의 상상을 섞어 무리하게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황의 왜곡, 변용, 노출 등이 일어난다. 특히 다양한 소재를 구하고 있는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생활, 타인과의 만남, 가정, 직장 등 모든 장소와 인적 교류 상황을 글쓰기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작가가 늘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소재가 대중에게 공표하는 글이 됐을 때 내용과 관련한 사람들의 인권이나 노출 등에 관한 것이다.

노련한 작가는 소재의 원천을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인 글을 쓴다. 이때 필요한 작가의 소양은 '정직'이다. 상황과 관련한 인물들이 실제 존재하는 경우라면 작가는 종종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방법은 한 가지. 내가 타자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이다. 내가 그(그녀)라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에 대한 천착이다. 마사 누스바움이 말한 '서사적 상상력(narrative imagenation)'을 구성하는 덕목 중 하나이다. 소재, 구성, 묘사, 스타일까지 두루 갖추었다고? 당신은 작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선 나와 타자의 삶을 정직하게 직면할 용기가 필요하다. 꾸준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야기로 상상력을 다지는 훈련만이 내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몸에 내가 나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이 깃들어 있다는 결론으로 이끌 수 있다." - 마사 누스바움, 인간성 수업,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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