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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보수 논쟁과 그 밖의 것들

현대 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 외에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

by 교실밖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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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자칭하기를 '중도보수'라 했다고 시끌시끌하길래 무슨 소리인가 했다. 뉴스를 찾아보고 몇 번에 걸쳐 그렇게 말한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새롭게 들리지는 않았는데, 야당 대표가 왜 지금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로 생각을 좁혀 보면 몇 가지 짚어 볼 지점은 있다. 교원단체 활동을 할 때는 민주당을 '보수 야당'으로 불렀다. 지금도 스스로 진보 정체성을 갖고 있는 분들은 민주당의 위치를 '진보'로 보지 않는다. 


다만, 현실 정치에서 진보적 의제를 담아낼 정당이 지리멸렬하니 그나마 대중의 지지를 받는 보수 야당이 부분적으로 대변했을 뿐이다.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 정치지형의 현주소라고 본다. 이미 현대 정치에서 본래적 의미의 보수, 진보 도식은 깨져 가고 있었다. 미국을 봐도 극우의 득세라 할 만큼 사회 전반의 보수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이야 말할 것도 없겠다. 보수를 참칭 하면서 연일 극우의 메시지를 내고 행동하는 세력이 현존한다. 


본래적 의미의 진보-보수 개념으로 보나, 정치적 전략으로 보나 이재명의 '중도보수' 선언은 파장을 부르고 있다. 우선 집권 여당의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탄핵 상황에 휩쓸려 정신없이 우클릭하는 사이 야당 대표의 합리적 보수 내지는 중도까지 확장하겠다는 선언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는가. 


정치인들에게는 이중적 사고 패턴이 있다. 국힘 쪽 일부 의원들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몇 만 군중이 모이고, 극우 유튜버가 여론을 만들어가는 듯 보이니 일단 내부의 지지를 끌어내고 보자는 심리가 있다. 당내 지지를 획득하면 그다음엔 태도를 유연하게 하여 일반 유권자를 향하는데, 이때 메시지가 훨씬 다듬어진다. 


교육감 선거도 마찬가지다. 진영 내 단일화 경쟁에서 이기려면 최대한 '선명성'을 부각해야 한다. 단일화 과정에서는 진영 내부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일단 단일화에서 살아 돌아오면 그때부턴 선명성이 아니라 확장성이 중요해진다. 그리하여 단일화 과정에선 선명한 진보/보수 후보임을 부각하려 하고, 본선에 나가면 중도까지 아우르는 확장성이 있음을 보이려고 한다. 언론은 알기 쉽게 진보-보수로 나누어 경합을 붙인다. 


이런 방식에서 누가 더 이득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후보가 되면 진보-보수적 가치를 강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당선'에 목표를 둘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했던 몇 번의 선거에선 그런 양상이었다. 이 대목에서 진보 운동 진영은 항상 신경이 곤두선다. 후보 단일화에 동의했다는 것은 진보적 가치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약속의 과정인데 당선 이후에는 유권자 전체를 상대하는 과정이니 상당 부분 유연해질 수밖에 없고, 운동 진영은 이거 '약속 위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진보-보수 담론은 현실에선 이와 같이 '정치적'이다. 


누가 봐도 이재명의 전략은 국힘이 극우 세력에게 포위됐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합리적 보수와 중도 진영을 흔들기 위한 '작전'이다. 진보 운동 진영에선 민주당을 '보수 야당'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사실 관계의 재확인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진보 진영은(그 주체가 누구인지,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막론하고) 진보적 의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계속 숙제가 쌓이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민주당 내에서 일부 쓴소리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민주당이 오랜 세월 지켜온 '진보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말라든지, 지지율만 생각하며 핸들을 꺾었다는 주장은 큰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이 그동안 사회 개혁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한 것을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 판국에 드는 걱정은, 이로써 한국의 정치 지형이 조금 더 오른쪽으로 자리 잡는 것에 대한 우려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그동안 중산층과 서민, 기본소득, 복지국가, 남북관계 등에서 말한 발언들이 있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재명 대표가 꿈꾸고 있는 대로 중도 보수 정당이 집권을 하고 한 편에는 극우 정당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진보 정당이 자리를 잡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나는 이재명이 너무 한국사회의 모든 담론을 '경제' 하나로 편리하게 종속시키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것을 실용주의라고 말하던데, 진짜 실용주의는 지나친 원리주의나  추상성에 대항하여 유용성과 실제성을 추구하자는 것이지 모든 의제를 '먹고사는 것'으로 협소하게 가두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득세하는 무지성, 무교양을 경제적 풍요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과녁을 잘못 본 것이다. 자유로운 창작과 표현, 시민적 소양의 발현, 불평등과 격차 해소, 법치의 복원, 교육의 개혁 등 경제 말고도 신경 써야 할 일은 많다. 지도자는 먹고 사는 것 외에 풀리지 않는 현대 사회의 난제들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고, 해결 방도를 내어 놓아야 한다.



https://telgurus.co.uk/what-is-the-difference-between-the-left-and-right-wing/https://telgurus.co.uk/what-is-the-difference-between-the-left-and-right-wing/




Cover image: This gives you an idea of the political spectrum from left to right, as seen in our KN Explains video. (Image credit: Philip Street/CBC)


https://www.cbc.ca/kidsnews/post/watch-what-are-right-wing-and-left-wing-the-political-spectrum-expl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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