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었다
미풍이 부는 따스한 봄날이었다. 지난주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라서 어제 개강했다. 교육학과 세미나실이 강의실로 주어졌고 3, 4학년 학생들 12명이 수강신청을 하였다. 그중 두 명은 졸업을 미룬 이른바 '5학년'이었는데,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내 정보를 찾아보고 수강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고마운 일이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해줬다.
간단히 내 소개, 수강 학생들 돌아가며 소개, 그리고 미니 특강과 1학기 수업 안내 순으로 진행했다. 기억에 남을 소개를 부탁한다는 말에 성악과 학생은 그 자리에서 멋지게 한 곡... 워낙 예전부터 꼭 강의를 해 보고 싶었던 대학이라서 그런지 학생들 모두 자유로우면서도 참신해 보인다. 한 학기 동안 '학습공동체' 방식으로 열심히 공부하자고 당부했다.
젊었을 때 이 대학 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다, 갑자기 최루탄을 쏘면서 들이닥치면 그 긴 백양로를 냅다 뛰어 노천극장 근처까지 올라갔던 것을 기억한다. 그 전경들도 지금은 50대 후반쯤 되었을 거다. 뛰어 올라가면 얼굴은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 범벅이고... 먹은 것이 다 올라올 정도로 웩웩 거리며 벽을 붙들고 씨름했던 기억 역시 선명하다. 지금은 이 대학도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교육과학관까지는 차량 진입이 불가하여 언덕길을 길게 걸어 올랐다. 고풍스러운 언더우드관은 그대로다. 연희전문을 나왔던 윤동주 선배의 시비도.
교과서에 나와 있는 교육과정 이야기만 하는 것이면 재미가 없다. 당연히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미국 교육과정사를 다룰 것이고, 그중에서도 70년대 초반에 있었던 교육과정 재개념화 운동에 대해서는 비중 있게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 교육과정의 변천과 엮어서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도 살필 것이다. 교수요목기에서 2022 개정교육과정까지도 그 특징과 정치사회적 요구, 작용과 반작용까지도...
교육과정이라는 과목은 개발과 실행을 넘어 대단히 흥미로운 분야이다. 다행히 논서술형으로 바뀐 임용고사 덕분에, 그리고 교직과목 절대평가 방침으로 인해 다채롭게 전개할 수 있다. 글쓰기도 병행할 것이고, 종강 때까지 진하게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와... 이렇게도 공부하네..." 이렇게 말들을 하겠지.
공부를 빡세게 시키는 것과 주제에 빨려 들어오게 하는 것은 다르다. 처음 몇 번 방향을 잡으면 나머지는 학생들이 알아서 종강 때까지 자기 교육을 하는 것이다. 옛날에 대학/대학원 강의할 때는 거의 이 방식으로 했는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이 대학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리 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교재 중 한 권은 내가 쓴 책이고, 참고자료 중 하나도 내가 번역한 것으로 넣었다.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비판적으로 읽고, 느끼고, 연결하면서, 그다음까지 나아갈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니 12명이라는 수강인원은 폐강을 겨우 면한 소인수 인원이지만 알찬 공부를 위해 매우 적절한 규모가 됐다.
다음 주에는 교육과정 100년 역사를 개괄하는 것을 포함하여 개념과, 유형 등을 공부할 것이다. 그다음 주부터는 학생들 스스로 연구하고 발표하면서 토론과 글쓰기를 해야 한다. 이럴 땐 교육청과 교육부,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교육과정 개발에 관여했다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개강 소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