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반의 방송을 시청한 끝에 이재명 항소심 선고 결과 무죄라는 말을 듣고 강가로 나왔다. 기온이 높다. 세상의 번잡함 속에서도 계절 변화는 빠르다. 영남 지역의 큰 산불 때문에도 마음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재판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검찰이 인식과 감정의 영역을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야말로 기소권의 남용이라고 보았다. 오늘 판결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발언을 다른 합리적 해석을 배제한 채 공소사실로만 해석하는 것은 법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건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음을 재판부가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이 저지른 계엄, 이에 대한 탄핵소추의 과정이 있었고, 지금은 헌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결정을 지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2심 결과, 윤석열 파면 여부, 조기 대선 등은 서로 간의 역학으로 인해 물고 물리는 정치 일정을 예정하고 있다.
사실 이재명이 중도보수 노선을 선언했을 때, 현상을 재확인한 것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구석에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적 보수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지향해 왔던 진보적 의제들을 담아낼 정치 세력을 갖고 있지 못한 자괴감이다. 거기다가 현실화한 극우들의 행태들을 보면서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도 걱정이다.
지리멸렬한 진보 정치의 현주소에 현실 정치 세력이 노골적인 우클릭을 선언하는 풍경은 우리에게 만만치 않은 과제를 던진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복지 측면에서 우리는 충분한 실험을 해보았나. 필요와 정당성 측면에서 이런 의제들을 폐기해도 될 정도인가.
나는 이재명의 '실용주의적 유능함'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한국 사회의 난맥상을 헤쳐 나가는데 그의 리더십의 쓰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그의 어린 시절, 가족 문제,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판단 유보의 영역도 있다. 그의 민주주의적 소양에 대해서는 현실 정치인 중에서는 그나마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조기대선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는 교육감 선거가 있다. 나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가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그리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학교 현장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크고 작은 교육의 문제들, 이 정부가 망가뜨린 현안 문제에 대한 지속, 폐지, 조정에 대한 입장 정리가 있을 것이다. 교육문제는 정책 대상의 필요와 요구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고민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어느새 해는 서쪽 하늘도 넘어가고 길어진 그림자는 이내 사라졌다. 대기를 숨 쉬며 편안하게 강가를 걸으며 사색하는 삶, 이게 그렇게도 욕심인지 모르겠다. 이제 좀 예측 가능한 일상을 살고 싶다. 헌재가 결정을 미룰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내일 날짜 고지하고 금요일 발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