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묘비명

진심 하나쯤은 묘비명에 남기기로 했다.

by 오늘따라유난히

#2021-08-21

#2025-08-08


매 순간 문제를 만나면, 직관적으로 변수를 이해하고, 모르는 지식들을 메워가며, 직접 부딪히고 뛰어서 해결한다. 사람들은 자주 나에게 묻는다. "이건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

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여기까지 왔다. 설명한다고 하여 당신이 변하지 않지만, 결국엔 의심의 눈초리와 될까라는 걱정만 불러일으키며, 당신의 물음엔 나는 도움을 주지않겠지만, 내가 걱정하는것을 해명까지 해라고 들리는 순간이였기에 마음을 남긴다.해결하는 시간 안에서 어떻게 해결할것이냐는 당신의 질문은 나에겐 단순한 시간뺏김일 뿐이라 생각하기에.


내가 가장 아끼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묘비명에 이렇게 새기고 싶었다.

그대가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요.”

회사에서 같이 고생해주는 동료들과, 그/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에게 언젠가는 알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에게 당신의 행복을 바란다는건, 나의 모든것을 너에게 주겠다는 의미였기에.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따듯함, 내가 베풀 수 있는 모든 임계점들 따위의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의 삶은 "나는 남들에게 오해받을 권리가 있고, 해명할 필요는 없다" 이기에, 내 삶이 이러쿵 저러쿵, 이런일 저런일로, 나를 굳이 오해에 설명하는 자리에 내색하거나 드러내는 일은 역시나 불가능했다.

나는 앞으로도, 오랜 공을 들여 하찮은 결과물을 만든 동료들에게, 당신은 이것밖에 안되나요? 라고 물을 수 있는 종류의 용기는 없는 사람이기에, (보통의 존재 - 이석원) 당신들의 부족함이나 모자름에 대해 나무라지 않았다.

나의 삶의 고민의 총체는, 말하기 전에는 이해받을 수 없는걸까, 내가 대단히 특별하거나 혹은 너/그들이 대단이 모자른 것인가? 의 끝에 서있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업가 혹은 오너따위의 결정이 아닌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하는 자리에 서 있다.

말하기 전에 이해받을 수 있다고 하면, "언젠가는" 이라는 단어를 빌미로 기다림과 인내가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는 모든 관계에 조금은 쌀쌀한 인간이 될것만 같다. 이게 최근 감정의 총량이다.



인간의 심리는 99개를 잘하다가 1개를 못하면, "그렇게 안봤는데.." 이고, 99개를 잘못하다 1개를 잘하면 "그래도 나쁜사람은 아니네" 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인간의 심리를 역행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많은 대화에 나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도 같은 책임이 있다면, 저도 당신에게 같은 질문을 해도 되나요? 라고 말하고싶을 때가 있다. 결국엔 말이라는건 표면일뿐, 언어와 비언어적인 것들 사이의 당신의 결론을 알고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발언들이 모여 사람마다 표현하는 "오해" ,"이해" , "회의" , "토론"과 같은 이성적인 단어들이 자주 "감정의 쓰레기통" 으로 묶여 검은색의 알 수 없는 형체가 되버린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순간적으로 밉고,서운하지만 일이란건 이성의 기반한 일이기에, 감정을 배제한체 할 수 있는말만 골라서 하다보면, 부정이 잔뜩 쌓여있는 나를 어느 새벽에 마주하곤 한다.

그 무수한 마음과 말과 해결 사이에, 걱정해주는 당신에게 고마움과, 걱정만 하는 당신의 서운함이 공존할때면, 먼 미래에 언젠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땐 그랬어. 정말 너무 힘들었고, 걱정해준 마음은 고맙지만, 힘들 땐, "걱정돼. 설명해줘" 라기보단 "같이 해결해줄게를 더 선호해. 너무 힘들지만 해결해야할 땐, 걱정이 아니라 기다려주는 것이 배려나 응원따위라고 생각하거든. 그게 우리 회사, 우리 직원, 우리 이기 때문이야. 자본주의 위에 약속과 해결은 결국엔 법까지 포함해야하고, 우리는 급여를 만들어야하고, 또 소비해야하기에,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야."



나는 지칠 때, 오해받을 때, 설명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상대의 감정이 너무 부정적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고마움과 서운함이 늘 함께였기에, 그 진심 하나쯤은 묘비명에 남기기로 했다. 그때가 오면, 혹여나 들키기 싶은 진심이 보여지기를, 혹은 나를 설명할 미래가 없을 나의 죽음앞에 당신이 나의 묘비명을 보며 우리의 오해가 풀리기 바랬다. 그래서 당신이 끝내 울음을 참다 미안함을 갖기를. 그래서 조금더 어른으로 길로 나아가기를,복수와 성장의 교묘함과 간사함 속에서 마음을 글로 남긴다.




다시금 고백하건대, 나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하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대안 없는 상황에 답변을 내야했으며, 이내 해결하여 지금의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것이 아닌, 현재도 한치도 알수없는 미래에, 선택과 책임만 있을 뿐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화마안에 온몸을 던져내어 나는 살아내는가, 그가 나를 삼킬지, 내가 그를 소화시킬지 역시 신만이 알 수 있겠지. 그러니까 부디, 나에게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은 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봐야 내가 할 수 있는건 말뿐이고, 해결은 말로하는게 아니였으니까, 꽤 많은 이기로 나의 사랑하는 당신들에겐 조금만 침묵해주기를 기도하며, 나의 이기는 선의이며 나의 몫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상한 사람이란걸 묵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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