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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s Feb 20. 2021

봄동의 추억

 매서운 추위가 더해지거나 덜해질 1월의 어느 무렵이 되면 슬슬 봄동에 대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봄동을 처음 마주한 건 봄동이 조리된 상태로 밥상에 올랐을 때였다. 나를 포함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보자면 외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위 봄동무침으로 봄동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자라는 그 배추의 이름이 봄동이었구나를 인지하게 된 건 식물과 식재료에 한참 관심이 많아졌을 20대 초반 즈음이었다. 20대 초반에 담양에서 봄동을 따오고 외할머니와 밥을 먹었던 기억이 선명해서 봄동은 외할머니와 담양에서의 추억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요즘도 종종 봄동을 무쳐 먹을 때면 작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엄마의 고향은 전라남도 담양이다. 내가 어렸을 땐 담양 외할머니댁에 가면 딸기 하우스를 둘러봤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20대에 들어서는 엄마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담양에 갔다. 담양 외할머니 집 동네에는 엄마의 큰아버지 옆집에 '삼밭'이라고 부르는 외할머니의 작은 밭이 있다. 엄마한테 언젠가는 내가 왜 삼밭이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엄마도 딱히 그렇다 할 해답을 주진 못했다. 인삼을 심는 밭이래서 삼밭은 아니고 아무래도 인삼만큼 소중한 먹거리를 심는다고 해서 소중하게 생각해서 '삼밭'이라 이름 짓지 않았을까 한다. 비가 한참 내리거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삼밭에 엄마와 외할머니와 막내 이모가 먹을 채소들을 심고 가꾸곤 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보면 주인공이 밭을 가꾸는 모습이 나오는데 엄마와 외할머니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 작은 밭을 가꾸곤 했다. 그 밭에는 쪽파, 대파, 시금치, 달래, 무, 고구마, 부추, 김장용 배추 등등을 심었고 재작년에는 당근도 심고 브로콜리도 심어서 키워 먹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광주에 못 간 지 한참 되었고 그래서 삼밭에 가본 지 오래되었는데 매년 이맘 때는 봄동과 시금치가 밭에서 자라나고 있다. 김장이 끝나고 파종을 해서 이맘 때면 딱 먹음직스럽게 자란 봄동을 칼로 잘라서 신문지에 싸고 모아둔 마트 비닐봉지에 넣고 집으로 가져온다. 땅바닥에 딱 붙어서 자라는 봄동이니까 흙이나 이물질을 물로 흘려보내면서 깨끗이 씻고 대충 썰어서 액젓 혹은 국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고 손으로 버무려준다. 그리고 참기름을 뿌려서 한 번 더 버무려주고 접시에 담고 깨를 정말 인정사정없이 뿌려줘야 한다. 깨를 그렇게 뿌리지 않으면 전라도의 음식이 아닌 것이다. 나는 정말 서울 올라와서 타인이 만든 요리를 처음 먹고 나서 전라도만 그렇게 깨를 쏟을 정도로 뿌린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깨와 참기름을 아낌없이 써줘야 한다. 국간장이나 고춧가루, 다진 마늘이 얼마큼 들어가는지 엄마한테 물어도 정확한 계량법은 없고 미각과 손 감각 그리고 시각에 의존해서 대충 넣어야 한다. 이것 역시 전라도의 방식인가 살짝 생각해봤다. 이렇게 만든 봄동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밥에 비벼 먹는 것이다. 달달한 봄동과 짭조름한 장맛 그리고 매콤한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의 알싸한 향 거기에 모든 걸 한데 묶어주는 참기름의 고소함.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딱 한 가지 채소만 먹어야 한다면 당당하게 봄동이라고 외칠 수 있을 정도다. 담양의 삼밭에 심은 봄동이 나에게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추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나에게 선물해준 봄동의 추억을 나도 친구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엄마 말에 의하면 맛있고 좋은 건 함께 나눠야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나는 그 말을 열심히 실천하면서 살려고 하는 중이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실천했던 그 말이 오늘 또 이렇게 빛을 발한다. 서울에 올라와서 혼자 살게 된 2014년 나는 시장에 다니면서 장을 보고 집에서 나물도 무치고 이것저것 혼자 잘해 먹고 지냈다. 2014년에는 정말 자주 갔던 카페가 있다. 그 카페에 친구 둘이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때 마침 일을 안 하고 있을 때라 한가해서 그 카페에 더 자주 갔다. 어느 날은 시장에서 사 온 봄동을 무쳤는데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봄동무침과 밥, 참기름, 양푼을 싸들고 친구 둘이 일을 하고 있는 카페로 찾아갔다. 카페에서 참기름 냄새 풍기면서 봄동 비빔밥을 해 먹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민폐가 아닌가 싶은데 그 카페는 규모가 작은 데다가 손님이 없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봄동에 밥을 비벼 먹었던 추억이 있다. 이것이 내가 만들어낸 봄동의 추억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은 봄동을 보면 그때의 생각이 난다고 하고 나 역시 그렇다. 내가 만든 추억이 친구들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말 내가 카페에서 봄동 비빔밥 해 먹어 볼 일이 앞으로도 얼마나 있을까. 카페를 차리고 거기서 봄동 비빔밥을 해 먹는 것이 아니라면 힘들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집에서 남편과 봄동을 무쳐서 밥에 비벼 먹으면서 친구들과 카페에서 봄동 비빔밥을 해먹은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내가 만들어준 봄동 무침과 비빔밥을 올해 처음 먹었다. 남편이 봄동 비빔밥을 정말 맛있게 먹고 "이건 또 해 먹어도 될 거 같아."라는 말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는지 모른다 정말. 남편은 칭찬도 표현도 매우 잘하는 편이고 그만큼 나는 진심이 담긴 칭찬을 감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또 해 먹자고 하는 건 정말로 맛있다는 말이다. 매우 진심이 담긴 표현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해마다 봄동이 나오는 계절이 되면 봄동을 무치면서 앞서 말한 모든 추억들과 함께 남편의 칭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남편이 이 글을 보면 아니라고 부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분석을 피할 수는 없다.


 이제는 음식이나 식재료에 추억을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삶의 경험치가 조금 쌓인듯해서 괜스레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천천히 이 추억들을 풀어내고 곱씹으면서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무언가에 추억이 깃들고 그 추억이 이야기로 전해지면 그 추억의 수명이 좀 더 길어져서 어쩌면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내가 사라지지 않게 되지 않을까. 내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봄동으로 추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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