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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12. 2017

행복하고 싶어요, 진짜요

 

 문득 몇 년 전이 생각났다.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 시절, 고등학생 시절. 멋모르고 뛰어놀던 나이, 그저 교복이 지겹고 지겹던 나이. 지금은 그 누구도 시키지 않지만, 그때에는 매년 장래희망을 적어오라고 했었다. 장래희망. 막연하고 또 막연한 그것.


 그때마다 나는 항상 '작가' 아니면 '화가'를 적어냈다. 뭣도 모르던 나이에나 원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매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런 직업을 갖길 원했다. 예술적인 것을 할 법한 직업만을 원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모님께는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나 화가가 돼서는 돈을 못 번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원했다. 아니 갈망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모험가처럼, 나는 애타게 갈망했었다.


 지금도 변함은 없다. 아니다, 나는 이제 포기했다 생각해도 마음 한구석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작가가 되길 원하고 있었다. 울면서 속마음을 토로했던 2015년의 여름밤, 나는 깨달았다. 아직도 나는 원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왜 굳이 작가가 되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있잖은가. 항상 장래희망을 적으라고만 했지, 그 작은 칸에 적어야 하는 것이 직업이어야만 한다는 말은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부분 그 작은 칸에 조심조심 내가 가지고 싶은 직업을 써넣기 바빴다.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장래희망이 굳이 직업으로 정의되어야만 하는 걸까. 장래희망은 미래에 대해 내가 원하는 무언가일 뿐인데.


 어학사전을 검색해도 '장래희망'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하나의 단어가 아닌 것이다. 영어사전을 보면 장래희망을 'future hope'이라고 말한다. 미래에 원하는 것. 그것이 굳이 직업일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이 아닌 미래의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이 장래희망이 될 수도 있다. 단순히 보면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것도 장래희망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장래희망은 작가도 화가도, 혹은 여행 가이드도 아닌 '항상 행복하게 사는 것'이란 것을. 그 또한 장래희망인 것이다.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것. 항상 평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행복하고 싶어요, 진짜요



 우리는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장래희망을 직업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직업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단 1분 후에 뭔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나는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공통된 희망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걸. 우리의 진짜 희망은 이도 저도 아닌, 행복일 것이다. 공부로, 일로 찌든 삶에 잠시 잠깐의 행복. 작은 행복이라도 좋다. 행복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싶을 것이다.


 진짜, 행복하고 싶어요. 진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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