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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y 16. 2017

기대에도 적절한 수준이 필요하다

 나에게 있어 학창시절은 악몽 아닌 악몽이었다. 학교에 앉아 공부하는 것부터 성격과 맞지 않았다. 조용한 걸 좋아하면서도 마냥 그렇지는 않았던 복잡미묘한 사람이었다.


 공부도 싫었다. 다들 하니까 해야 하는 건가 생각했을 뿐,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공부를 했었다. 당연히 성적이 뛰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애매한 중간. 성적을 받아볼수록 자존감이 낮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동기(同氣)들은 성적이 좋았었다. 전교 몇 등이라는 사실로 자랑이 가능할 정도였으니까.


 때문에 그 시절의 나는 그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내가 원하던 직업이 부모라면 누구든 반대할 직업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아이였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달라졌다. 대학생이 되고,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높은 성적을 받은 후부터 더욱 그랬다. 장난처럼 '난 대학교 가면 과탑할거야!'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게 진짜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그때까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미국 어학연수 대상자에 뽑히면서 부모님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나를 '집안의 미래'로 불렀다. 그러면서 모든 일이 힘들었다. 잠시 잠깐의 농담인 줄 알았던 말을 계속 들으면서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특히 학점에 벌벌 떨었다. 장학금도 충분히 받고 남을 성적이었음에도 0.1 차이에 떨었다. 노이로제가 생긴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공부를 하겠다고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독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멈출 줄  몰랐다.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만족할 줄 몰랐다. 만점을 받고, 최고라는 칭찬을 받아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완벽주의'가 아닌 미치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쏠린 기대에 나는 쉼 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기대에도 적절한 수준이 필요하다


 큰 기대는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다. 늘 기대 밖이던 사람이 기대를 받으면 더 그렇다. 그런 적이 없으니 어떻게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러니 지나친 기대는 좋지 않다. 특히 부담이 될 말을 하는 것은 기쁨이 아닌 스트레스다.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날마다 커질 수밖에 없다.


 기대에도 적절한 수준이 필요하다. 내 말 한 마디에 누군가 스트레스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도 있다.


 기대하는 것은 좋지만, 모든 것은 과유불급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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