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나는 누군가가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이 잦았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따지지 않고 그랬다. 길을 갈 때도 그랬다. 분명 사람이 많은데, 그 많은 사람을 다 보내고는 굳이 내게 무언가를 묻거나 부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거절을 못했다.
가끔 귀찮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때로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 번은 퇴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부탁을 하나 받은 적이 있다. 꽤나 나이가 있으신 할머니께서 스마트폰 때문에 내게 부탁을 하셨었다. 다들 사용하는 K사의 어플을 이용해 사진을 보내고 싶은데 모르겠어서 부탁한다 하셨었다. 어떻게 하는지 말할 때마다 모르셔서 지하철을 타고 나서도 계속 설명을 해야 했지만, 고맙다며 웃으시는 얼굴을 보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것 말고도 많은 경우가 있었다. 길을 가다가도 붙잡고는 길을 묻는 경우는 허다했고, 설문조사를 해달라는 부탁도 빈번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도 없이 다 해주기 마련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런데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는 오죽할까.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부탁을 하는 입장이 아닌 부탁을 받는 입장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덜했지만, 그전에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그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바라는 것. 그때의 나는 그것을 느끼면서도 거절할 줄을 몰랐다.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는 '어쭙잖은 예스맨'이었으니. 싫으면서도 늘 알았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대학생이 되고는 그런 일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원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더 심했다. 새벽까지 힘들게 시험 범위를 정리해놨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보면 안 되냐는 물음을 던지는 경우가 있었다. 싫다 해도 결국엔 억지로 가져갈 때도 있었고. 그때 잠깐 느꼈다. 내가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고 살지를 않았다는 걸.
그때부터 싫다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졌다. 항상 거절을 하려고 하면 목에 걸려 나오지 않던 것이, 정말 쉽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미안함에 힘들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느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착함의 다른 말은 바보가 아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착한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부탁하든 다 들어줄 거라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웃으면서 거절을 하질 않으니, '쟤는 좋아서 저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처럼, 한두 번의 호의를 당연시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호의'일뿐, 전혀 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권리는 한 사람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호의는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러니 착함의 다른 말은 바보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쟤는 착해서 바보처럼 해달라는 건 다 해줘'라는 생각은 부당하다. 착한 것은 착한 것일 뿐이다. 착하니 다 해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착하면 바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큰 문제다.
착한 것은 한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지표일 뿐, 그 사람에게 늘 무언가를 바라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