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사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질문은 이러했다. "너, 왜 괜찮은 척 해?". 그 질문을 하면서 내게 그랬다. 왜 힘들면서 괜찮은 척 하냐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라고.
사실 나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애써 괜찮다고 되뇌이며 세뇌를 이렇게나 해놓았으니, 이 정도면 진짜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참 어리석었다. 그건 그냥 '괜찮은 척'을 한 것 뿐이지, 진짜로 괜찮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참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그때로부터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은, 나는 참 많은 시간을 '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괜찮은 척, 행복한 척, 즐거운 척, 바쁜 척-. 괜찮은 척 위에 행복한 척. 척하면 척이었다.
쌓이고 쌓인 '내가 아닌 나'는 진짜 나 자신을 잊게 만들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무엇을 싫어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진짜 취향을 잊은 것이다.
휴학을 하고부터 내가 진짜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은 것 같다. 1년이라는 시간의 반을 돈에 치여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또 남은 반은 취미생활로 채우고 있긴 하니까.
요즘의 나는 틈이 나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가끔은 내 하루를 짧은 글로 기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이어리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잊혀질 기억들이 아쉬워, 하루하루를 정리하기 위해서.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굳이 말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같긴 한데,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온전히 진짜 내가 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 나를 볼 때 내가 좀 더 행복해 보이기를, 즐거워 보이기를, 성공한 삶은 사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곤 한다. 참 당연한 욕구이긴 하지만, 참 독이 되는 욕구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행복한 척 해봐야,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척'하지 않는 시간과, 나 자신을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내 취향에 대해, 내 기분에 대해.
이를테면, 나는 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이긴 한데, 나는 꽃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씩씩한 척', "털털한 척' 하느라 잊고 살았던 내 취향 중 하나다. 사람들은 털털함과 함께 '꽃'을 떠올리지는 않으니까.
아무튼, 우리는 우리를 알아가기 위한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롯한 내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