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에게 고마운 날들.
얼마 전 핸드폰의 액정 필름을 갈았다. 집에서 내가 어설프게 하다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고, 기포들이 아주 보기 싫게 많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싫었는데, 그뒤로 며칠이 지났는데도 새걸 사지도 않고 살 생각도 없이 그대로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지독한 완벽주의 기질을 타고나서 나를 많이 괴롭히며 살아왔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기 이전에 옹알이도 하지 않았고, 어린이집 선생님은 내가 율동을 가르쳐주면 따라하지 않는다고 의아해하다가 다음날 갑자기 완벽히 해내는 모습을 보고 놀라셨다고 한다.
내 아주 오래된 기억 중에는 여섯 살 쯤이었을까, 색연필로 색칠공부책을 칠하고 있는데 칠한 부분이 전부 고르게 칠해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며 같은 부분만 수도 없이 색연필이 닳아 없어질 지경까지 칠했던 기억이 있고, 학창시절에는 노트에 공부 내용을 정리하다가 글자가 한두 자 틀리면 노트를 다 찢어 처음 부터 새로 쓰곤 했다.
요즘의 나는 종종 유해지고 둥그러워진 내 모습을 마주하곤 한다. 분명 어제는 노트에 “2020.09.05. 토” 라고 썼고, 오늘은 “2020년 9월 6일 일요일”이라고 썼음에도 지우고 다시 쓰지 않고, 노트를 찢고 다시 쓰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약간의 희열이 일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십 대의 첫 자락을 지나며 나의 존재 자체가 모조리 거부되는 듯한 뼈아픈 날들을 겪어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고, 그때 그당시 미친듯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무너졌던 그 시간들에 지금 이토록 감사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나는 남은 평생을 그날들에 빚질 것이다.
“이러해야해”만 가득했던 나의 삶에 “이래도 괜찮아. 저래도 괜찮아.”가 늘어나고 있었다. 내 인생 지금 아무 것도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더 이상 불안과 공황에 시달리지 않는다.
우글우글 구름 같이 울고 있는 나의 액정 필름을 보며 지난 날 충분히 깨어질 수 있었음에 사무치게 감사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