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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18. 2023

잿더미와 부서진 뼈들 (1)

우리는 글쓰기라는 극단의 침묵에서 현실에 울려 퍼지는 날카롭고 짧은 비명을 해석한다. 문학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울부짖기 위해, 음악이 될 때까지 비명을 내지르기 위해 존재한다. 문학에의 권리 혹은 현실과 공동체 안에서는 금지된 비명을 지를 권리. 가정에서 우리는 들끓는 비명을 억누른다.    

- 엘렌 식수 지음, 이혜인 옮김, 『아야이! 문학의 비명』, 워크룸 프레스, 2022, 59쪽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욕실에는 모텔 용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모텔에 가면 비치돼 있는 일회용 바디 워시, 여성 청결제, 바디 스티로폼, 머리끈 같은 것을 어머니는 배낭 가방 속에 챙겨 놨다가 욕실 거울 밑에 쌓아 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아버지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인지 어머니와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거나 한 적이 없었다. 그즈음에 아버지는 식료품 도매상을 정리하고 택시 일을 한창 하고 있을 시기였다. 아버지는 새벽 3시면 일어나 점심으로 먹을 삶은 고구마와 달걀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새벽 4시에 출근하여 오후 4~5시가 돼서 퇴근했다. 

나는 어머니가 제발 그 행동만은 멈추었으면 했다. 그러나 내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어머니는 오히려 나를 추궁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녀는 “그게 모텔 물건인지 네가 어떻게 알아?”라고 하면서 나를 더럽고 발라당 까진 년이라 몰아붙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정은 침묵의 공간이 되었다. 서로의 비밀을 모르는 척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곳이었다. 어머니 역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잠실에 있는 대형 영어학원에서 건물 청소를 시작했다. 그녀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오전 6시부터 정오 무렵까지 먼지를 뒤집어 쓰며 화장실과 교실에 쌓인 온갖 오물과 쓰레기를 치웠다. 그리고 산으로 갔다. 산에서 그 남성을 만나고 모텔에서 몸을 섞고 저녁때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녀가 청소 일을 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고, 우리 역시 그녀에게 생활비를 드릴테니 일을 나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그녀는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쓸 돈이 필요했다. 막내 동생은 특히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커서 그녀가 어디가 아프지 않은지 수시로 살피고 그녀가 인삼을 사 먹을 수 있는 돈과 인삼을 달여 먹을 수 있는 기계를 사서 집으로 부치곤 했다. 어머니는 동생이 부친 돈으로 경동시장에 가 인삼을 사오곤 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고된 생활임에도 건강하고 충분히 단련된 육체를 지니게 되었다. 반면에 아버지는 하루 12시간의 운전으로 하루가 갈수록 육체가 밑바닥으로 꺼지게 되었다. 특히 고속도로를 타거나 장거리 손님을 받게 되면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오줌을 참는 상황이 일상이 되다 보니, 방광과 장에 이상이 생겨 매일 1시간 간격으로 강박적으로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 몸이 되었다. 

육십 대 중반을 넘어선 내 부모님이 가혹한 육체 노동의 길을 지속해야만 했던 것은 단연 우리 삼 형제의 교육 때문이었다. 우리가 모두 대학을 졸업했을 때 그들이 운영하던 식료품 도매상은 권리금, 보증금을 모두 거덜 내고 정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 이름 앞으로 들어놓은 노후 보험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경제적으로 거덜 난 노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나와 동생이 안정적으로 그들을 도와줄 형편은 못 되었다. 이제 막 결혼 생활을 시작한 오빠는 결혼을 기점으로 어머니와 더욱 사이가 멀어졌다. 

이 불안한 시기에 아버지는 허물어져 가는 육체의 고통 속에, 어머니는 허물어져 가는 정신의 고통 속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특히 어머니는 불안한 현실의 토대 위에 자신의 정신 속에서 뛰어다니는 한 마리 암말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암말이 미쳐 질주하는 그날까지 내 어머니는 그 암말과 함께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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