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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07. 2023

수치심과 자살

2018년 5월 7일, 어머니가 자살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약 한 달간 심각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어머니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와 헤어진 후 어머니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로 가족들에게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아버지에게는 온갖 독설과 폭언을, 오빠에게는 애인과 있었던 일을 암시하는 성적 표현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의 증세는 점점 심각해져 한밤중에 집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가족들이 음식에 독을 넣어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며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샤워를 하고 거실에 나와 보면 경찰이나 119 구조대원이 현관문에 서 있었다. 한밤중에 우리 집에 여러 차례 출동했던 한 경찰은 자신의 어머니가 조현병을 앓고 계시는데, 당신 어머니의 증세가 그와 상당히 유사하니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안 하고 어머니를 밖으로 못 나가게 막을 뿐이었다.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해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하고 어머니를 빨리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어머니의 급속한 변화와 더불어 나 또한 피폐한 몰골로 변해 가고 있었다. 새벽 2~3시에 경찰과 구조대원이 들락거리고, 어머니가 언제 뛰어나갈지 모르는 데에다, 어쩌면 모든 게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뜬눈으로 지새우다 회사에 일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동탄에서 살던 오빠가 어머니를 살피러 집에 왔는데, 행색이 황폐해진 어머니와 두 눈이 노랗게 달뜬 내 얼굴을 보고 오빠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빠의 회유와 설득에도 우리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데 실패했다. 어머니는 매우 완강했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매우 공격적이었다. 나는 제발 오빠가 어머니를 강제로 등에 업고서라도 병원에 가기를 기도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갑자기 내 방에 뛰어 들어와서 나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외친 적도 있고 통장을 주며 이 돈을 모두 가지라고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집 앞 어두운 창고 앞에 세워둔 낡은 자전거 속에 무언가를 감춰두고 물건을 뒤지는 어머니를 발견했는데, 그 어둠 속에서 눈을 번뜩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짐승과 같았다. 그 모습은 나에게 어떤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니에게 악령이 깃들거나 어떤 원귀에게 씌운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가 종교나 미신에 몰입하는 타입이 아니어도 어머니는 신에게 저주 혹은 처벌을 받고 있는 자의 모습으로 악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날은 같은 동네에 살던 조카 집을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찾아가 조카 며느리를 붙잡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고 그 집에서 한참을 주무시다 갔다고 했다. 어머니의 조카는 우리 집에 들러 증세가 심상치 않으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5월 7일, 어머니가 방 안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때 나는 거실에서 아버지에게 강하게 항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어떤 남자를 만난 것 같고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것 같다, 그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것을 방 안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의 목에서 신음처럼 ‘그만해, 그만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그날 밤 10시경에 어머니는 옥상에서 뛰어내리셨다. 어머니가 옥상에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방안에서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창밖으로 119 사이렌 소리와 동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우리 집 현관문을 다급히 두드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5월 8일 자정 무렵,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벌거벗겨져 있었고, 척추가 부서진 채 사망했다. 의사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았을 때 나는 허리를 꺾고 주저앉았다. 내 마음은 완전히 부서졌다. 몸속의 뼈가 으깨지고, 들숨과 날숨마다 공기 속에 날카로운 바늘이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내 목구멍을 찌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응급실에 들어오지 못했고 나는 홀로 어머니의 시신 곁에 있었다. 응급실의 풍경이 그토록 삭막하고 무감한 곳인지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응급실 내부의 차가운 형광등, 사망 소식을 전하는 의사의 사무적인 말투, 간호사들의 피로에 섞인 목소리, 원무과 사람들의 동요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들. 

나는 어머니의 몸에 시트를 덮어주고 그녀의 손을 주무르면서 굽은 손가락에서 칠이 벗겨진 오래된 반지를 빼냈다. 경찰과 과학수사대가 왔고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어머니의 사망을 변사로 처리할지, 치사 또는 살해 등의 다른 사건으로 분류해야 할지 행정상의 이유로 사고 현장에 있던 가족은 그들의 심문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시 외곽에 살고 있던 형제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가 듣지 못하게 아버지와 조용히 대화했어야 했다. 그 남자가 유발하는 고통은 어머니에게 치명적인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채 마구 떠들어댔다. 정신질환이라는 태풍이 어머니를 쓰러뜨리기 전에 나는 나대로 여기저기에 구조 신호를 보낸 셈이었지만, 적확한 방법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죽음은 이미 어머니를 휩쓸고 지나간 터였다. 경찰에 가서 나는 담당 경찰에게 어머니가 만나던 남자를 찾아야 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핸드폰에 모든 흔적을 이미 모두 지운 상태였다. 통신사 서비스센터에 찾아가 잠금장치를 풀었으나 사진도, 통화기록도 모두 지워져 있었다. 경찰은 그 사람을 찾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정신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데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 그녀가 그토록 지우려 애썼던 것. 그 핵심에 ‘수치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그 남자를 찾으려 했던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기 위한 명목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가 가진 고통의 핵심을 이해하기보다 그 고통을 떠넘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그 고통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서웠다. 그 장막을 걷으면 나는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다. 어머니의 모든 욕망, 좌절, 혐오, 비천함, 성스러움, 용기, 두려움, 혼돈, 불안, 분노, 증오 들을 나는 감히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어째서 그녀의 말들은 정당하고 온전한 말이 아닌, 단절되고 분절되고 비속한 언어들의 진창으로 미끄러졌을까. 나는 왜 그 말들을 귀담아듣지 못했을까. 그녀가 119에, 경찰에 지속적으로 신고했던 것은 살고 싶다는 절박한 신호였음을 나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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