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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08. 2023

말할 수 없는 죽음

어떤 죽음은 가능한 한 빠르게 지상에서 치워버려야 할 부끄러운 죽음으로 은폐된다. 내 어머니의 죽음이 그러했다. 어떻게 해서 한 여성의 67년의 생애가 그토록 한순간에 치워질 수 있는가.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그리고 이후로도 몇 년간 우리는 어머니를 제대로 애도할 수 없음을 조금씩 차차 알아가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장의사의 안내에 따라 장례 준비를 거쳐 영안실에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처음 놓이자 한구석에서 잠잠하게 계시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엄마! 왜 거기 있어! 아니, 당신이 왜 거기 있어!”라며 발작을 일으키듯 통곡하기 시작하셨다. 나와 형제들은 아버지를 부축하고 울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은 대체 어머니가 왜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냐고 물었으나,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어머니가 자살하셨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저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모호한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삼촌들을 비롯한 외가 친척들은 우리 가족의 태도를 보고 석연찮은 기미를 눈치챈 것 같았다. 그들은 차마 우리 가족을 심문하는 듯이 캐물을 수는 없었던지, ‘그렇게 돌아갈 사람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우리를 의심과 원망의 눈초리로 보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우리들은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새우잠을 자가며 조문객들을 맞는 수밖에 없었다. 조문객들과 인사하는 내내 나는 동생과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낯선 조문객들을 상대하려면 동생의 손이라도 잡고 서 있어야 했다. 

어머니의 시신을 살피러 가야 했는데, 아버지와 동생은 그 시신을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빠와 둘이서 장례식장 지하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아직 안치실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로 임시 공간에 마련된 침상 위에 면포로 덮여 있었다. 오빠는 어머니의 시신을 그때 처음 보았기 때문에 “엄마 눈 떠! 눈 떠봐! 나 왔어! 나왔단 말야!”라고 외치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오빠가 진정될 때까지 그 뒤에 서 있었다. 오빠가 조금 잠잠해지자 우리는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오빠가 내 손을 잡으며 “이제부터 내가 지킬 거야. 너, **(동생), 아버지...” 우리는 평소 그렇게 연락을 자주하거나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오빠의 손을 잡아본 것도 어쩐지 처음인 것 같았고, 꽉 움켜쥔 손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졌기에 나 역시 오빠의 손을 그러쥐었다.

저녁 8시가 다 되었을 때 당시 내가 일하는 출판사의 사장님과 동료 편집자들, 디자이너, 마케터 들이 조문을 왔다. 서교동에서 풍납동까지 오려면 서울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가로질러 퇴근길 인파를 뚫고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이동했을 게 분명했기에 나는 그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출판사 사람들은 식사도 하지 않고 말없이 음료수만 마셨고, 사장님은 술을 조금 드시다 가셨다. 회사 동료들에게 검은 상복을 입은 초췌하고 초라한 내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지만, 내가 진행하던 일들을 당분간 떠맡게 된 그들에게 어떻게든 미안함과 고마움의 인사를 전해야 했다. 

이후 얼굴에 분가루를 씌운 듯한 화장이 된 어머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 오빠가 어머니의 입술에 입을 맞춘 것, “고모가 왜 죽어야 해!”라고 잠시 소란을 피우던 외가 친척들, 운구 행렬, 고급 리무진, 화장터에서의 풍경...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점차 흐릿해져만 간다. 

모든 장례식이 끝난 후 나와 동생과 아버지는 하루 동안 오빠네 집에 머물다가 아버지는 하루 더 그곳에 머물기로 하고, 나는 동생의 집으로 가서 머물기로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집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거실... 그 거실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실내 계단... 그 계단으로 어머니가 천천히 걸어 올라 옥상으로 나간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동생의 집에 도착해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 주변이 탁 트이고 야산으로 둘러싸여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어미 잃은 들짐승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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