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출간 후
희망 절망 사이, 삶의 롤러코스터는 계속된다
첫 책 <태어나는 말들>이 지난 6월 말에 출간됐다. 7월과 8월에는 홍보 작업과 북토크 일정으로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9월에는 열 달 동안 작업한 장막극 희곡을 마감해서 어느 공모전에 보냈다. 10월과 11월에는 브런치 [틈] 시리즈 ‘흑과 백’ 작업을 마감했다. 중간중간 먹고살기 위한 알바도 병행했다. 모든 일정을 치르고 나니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태어나는 말들>은 많이 팔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초판이 다 팔리지 않은 상태다. 출판 편집자의 습성이 남아 있는 건지, 인정 욕구 때문인지, 판매 포인트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나 자신에게 넌덜머리가 나곤 했다.
2023년 작년 한 해, 출판 시장에 소개된 신작은 6만 2865종. 그중에서 첫 책을 낸 신인 작가가 주목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시장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소리 없이 사장되는 책의 운명은 수긍이 가지만, 나만은 예외이고 싶었나 보다. 그런 마음이 하도 한심해 우울하던 와중에 밀리의 서재에 전자책으로 등록된 <태어나는 말들>에 단 ‘2개’의 독자 리뷰가 달렸다. 모두 악평이었다. 구체적인 비판이 아니라, 한두 줄짜리 평가였다. 나름의 논리와 구체성을 가지고 비판해 주었더라면 나도 겸허한 마음으로 생각해 봤을 터이지만, 책을 끝까지 읽었는지 의심스러운 한두 줄의 문장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마음에 무턱대고 들이대는 작은 면도칼 같았다. 그 칼에 베이는 대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당신은 지금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있나 봐요. 나도 그래요.’
어떤 창작자의 인터뷰에서 작품과 창작자는 별개이고, 그 둘을 분리시키지 않으면 작품 활동을 오래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요즘 들어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태어나는 말들>은 자전적 이야기이기에 나 자신과 책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서 태어난 책이 나 대신 세상으로 출가해 독한 냉기를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이 상태가 무척 두려웠다. 나는 책 한 권을 완결 지었고, 그 후 다른 작품을 완성했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나의 유일한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힘을 밑천 삼아 세상의 평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면,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는 내 삶에서 조금 예외적인 시기였다. 즉, 답장 없는 편지를 늘 띄웠지만 응답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던 나의 삶에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의 원고를 발견해 준 편집자와 출판사가 있었고, ‘대상’이란 타이틀을 준 브런치가 있었고, 무엇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소수의 독자들’이 있었다. 내가 세상에 내민 손을 세상이 덥석 잡아주기도 하는, 이런 이상한 날이 오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아주 잠시 희망으로 반짝이던 순간이었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별처럼 반짝이는 것. 그것이 찬란하게 빛나는 이유는 깊은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영롱하지만 칠흑 같은 것. 이 모순적인 희망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희망에 속지 않되, 희망과 함께 가라’고.
나는 이 예외적인 한 해를 뒤로 하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기로 했다. 즉 글보다 ‘사는’ 일이 우선인 나의 자리 말이다. 어떤 위대한 작가는 ‘글’을 위해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우선 ‘살다’ 보니 작가가 된 생계형 케이스다. 글을 쓴 것도 살기 위한 일환이었다. 글을 써서 번 돈으로 내 생활비에 쓰고, 아버지 집에 전기세, 수도세, 건강보험비 등등 내드렸다. 글이 밥이 되고, 생계의 일부가 되었다.
9월에 마감한 장막 희곡은 얼마 전 "대차게" 낙방하고 말았다. 그렇다. 이것이 내 인생이다. 나는 늘 실패하곤 했으니 말이다. 실패 이후의 내 오래된 행동 패턴을 보면, 나를 떨어뜨리거나 거절한 쪽으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 돌려 떠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쓴 원고는 즉시 폐기 처분된다. 아... 그렇게 버려진 원고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내가 버린 사생아들은 대체 몇 편이나 되는지 나는 가늠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이메일 보관함을 정리하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쓴 희곡 원고를 발견했다. 폐기 처분된 무수한 원고 중 이 원고는 운이 좋게 ‘스스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올해 쓴 희곡은 나의 ‘첫’ 희곡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실조차 나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다.
실패 후의 행동 패턴을 알았으니, 이번엔 '반대로 해보자'는 이상한 반항심이 생긴다. 즉 이번에는 실패한 원고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리지 말고 스스로 분석해 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글쓰기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도 받아볼 생각이다.
두 달간 휴지기를 가졌던 ‘자기 해방의 글쓰기 교실’도 다시 시작한다. 이 교실도 벌써 1주년을 맞이했다. 이 교실을 1년이나 이끌어올 줄 몰랐지만, 글쓰기의 수렁에 빠질 때 나를 건져준 사람들은 언제나 동료들이었다. 나는 기꺼이 타인들에게로 걸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