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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에서 국밥 한 그릇

떠남과 머묾의 경계선에서

by 조소연 Mar 20. 2025

3월 17일 월요일, 오후 12시 10분. 제주 북동쪽 마을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제주시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 안을 잠시 둘러보았다. 3월이지만 여전히 한기가 도는, 냉랭한 공기 속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난롯가에 모여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둘기도 한 마리 날아와 사람들의 발길을 피해 오종종 걸어 다녔다. 터미널 안에 자리 잡은 분식집에서는 오뎅 국물이 자글자글 끓고, 사람들이 모여 오뎅을 먹고 있었다. 그 옆집에 자리 잡은 한 뼘 남짓의 작은 국밥집 하나.


나는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어딘가로 떠나고 도착하는 이들의 허기를 잠시 달래주는 간이식당. 이 식당에는 대부분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돼지국밥의 진한 향이 식당 안을 가득 채운 가운데, 나도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식당 주인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내 바로 뒷자리에 앉은 아저씨 손님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식사를 하고 값을 치르려는 모양이었는데, 계좌 이체가 되지 않자 30분째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농협을 찾아야 한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점심시간인데, 식사를 끝낸 손님이 값도 치르지 않고 자리를 뜨지 않으니, 식당 주인은 매우 심기가 안 좋아 보였다. 모두들 서둘러 배를 채우고 떠나는 이 공간에서 이 아저씨만은 매우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값을 치르지 못해 떠나지 못하는 한 사람.      


“아저씨! 그러지 말고 조 앞 건너편에 농협 있단 말이우다! 가서 돈 찾아옵서게!”     


식당 주인의 윽박에 아저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핸드폰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식당 보조 아주머니가 부추가 자잘하게 들어간 국밥 한 그릇을 재빠르게 나의 식탁 위에 가져다주었다. 반찬은 깍두기 접시 하나, 김치 접시 하나. 한 그릇에 7천 원 하는 매우 조촐하고 소박하지만, 속은 뜨뜻해지는 국밥 한 그릇. 그 밥값을 치르지 못해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라면, 호기롭게 대신 밥값을 치러주는 선의를 베푸는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려 본다. 나는 돼지 내장과 밥을 같이 떠서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어찌할까 그저 생각만 한다. 그때 장년층 남녀 손님 두 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 손님이 고기국수 두 그릇을 주문한다. 보조 아주머니가 “내장도 넣어드려?” 하는 질문에 “내장이 뭐야, 고기를 줘야지” 한다. 식당 주인이 다시 한번 밥값 치르지 못하는 손님을 재촉하자, 고기국수를 주문한 남자 손님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국밥 한 숟갈에, 깍두기 하나, 또 국밥 한 숟갈에 김치 하나, 천천히 먹으면서 산방산으로 가기 위한 최단시간 루트를 검색하기에 여념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귀는 내 뒷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목소리에 가닿아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어 그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각자의 목적지가 분명하고, 가급적 단시간 머물길 바라는 이 터미널에서 저 남자만이 아직 떠날 채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떠나라고 재촉한다. 


내가 오늘 가야 할 목적지는 산방산 자락 아래에 자리 잡은 온천 호텔이다. 놀러 가는 게 아니다. 면접 보러 가는 길이다. 서울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사람이 웬 온천 호텔이냐, 한다면 제주에서 그만큼 다양한 일자리가 한정돼 있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시베리아 유형지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터미널에 당도한 마당에, 밥값 치르지 못하는 저 아저씨에게 나눠줄 한 줌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계절은 봄이지만, 아직 그 따스함은 이 섬에도, 내 마음에도 당도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아저씨를 등지고 서서 밥값 7천 원을 계좌 이체했다. 마치 아저씨 보란 듯이 말이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했지만, 심기가 불편한 식당 주인은 대꾸조차 안 했다. 돼지 내장으로 나의 내장을 채웠건만, 왜 허기는 자꾸만 도지는 걸까? 나는 터미널의 한기를 견디며 곧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면서 나는 역시 ‘떠날 수 있는 사람이야’ 하는 안도감과 ‘정말 떠나고 싶어?’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아무래도 면접 시간에 지각할 듯하여, 랫츠런파크 교차로에서 내렸다. 정류장 이름만 봐서는 알록달록 테마파크라도 있을 듯하지만, 주변에 도로밖에 없는 황량한 교차로일 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를 기다리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아저씨를 떠올렸다. 


온천 호텔은 정말로 산방산 아래 있었다. 산 하나에 호텔 하나. 이토록 고즈넉하고 비현실적인 곳이 있을까. 날이 맑고 투명한데 바람은 어찌나 가혹한지 윙윙 울어대면서 산방산 자락을 휘감고 나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프런트에 모여 있는 손님들은 대부분 머리가 하얀 노인 손님들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호텔이라, 호텔이라기보다 규모가 큰 찜질방 혹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온천 유곽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면접관은 나의 출근을 최대한 앞당기고 싶어 했고, 심지어 이사할 집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는 한편 일하다 핸드폰이나 보고 있으면 퇴사시킬 수 있다는 압박도 받았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이곳은 내가 머무를 곳인가, 아니면 또다시 스쳐 지나갈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 서울로는 돌아갈 수가 없고, 나의 안식처였던 제주 동쪽 마을은 자꾸 나더러 떠나라 재촉한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면 너는 굶어 죽을 것이다 하는 압박을 가해온다. 일을 찾아 3시간 가까이 달려 제주 서남쪽 마을에 왔다. 그러나 이곳에도 어김없이 부는 가혹한 바람. 


아직 봄이 당도하지 않은 이 외딴 산방산 자락. 폐차된 지프차 옆에 몸을 숨기고 연거푸 담배 두 대를 피웠다. 어찌나 추운지 손이 덜덜 떨렸다. 면접 본다고 블라우스 입지 말 걸, 하면서 말이다. 같은 제주인데, 이 물설고 낯선 느낌이 몸의 한기를 더하는 것 같았다. 나는 빨리 동쪽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2년간 정 붙이고 산 나의 마을. 나의 고양이와 강아지가 사는 마을. 계절마다 귤, 한라봉, 고구마, 당근을 한 무더기씩 퍼주는 이웃집이 있는 마을. 시답잖은 농담을 할 수 있는 편의점 주인이 있는 마을. 이따금 술 한잔 기울이는 카페 주인이 있는 마을. 아무래도 나는 이 온천 호텔에 놀러조차 오지 못할 것 같았다. 


오후 3시 30분. 나는 다시 제주시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불과 3시간여 만에 이곳에 다시 왔을 뿐인데, 나는 이미 먼 나라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마주쳤던 노인 손님들처럼 나의 머리도 하얗게 세어 돌아온 치히로가 된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그 국밥집에 아저씨는 온데간데없었다.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또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 떠남과 머묾의 경계선에서 나는 생각한다. 온전히 머물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는 자, 그대 영혼에 영원한 안식은 없을 지어니. 그것이 살아가는 자의 피로이며, 살아가는 것의 대가라고. 그 흔들림 속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직, 살아서 숨 쉬는 나의 속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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