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구지
정식명칭은 내곡 2동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뒷구지로 불렸다. 특히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 입에 달고 사셨고, 가끔 찾아오시는 우체부 아저씨도 우리 동네를 뒷구지로 불렀다.
뒷구지에는 대충 100가구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가보지 않은 골목이 있을 정도로 굽이굽이 언덕과 없는 길을 만들어 구석에 만들어놓은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이다.
대곡초등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 중 하나인데, 주변에는 내곡교회를 사이에 두고 내곡1동, 2동 그 뒤로 산황동이 있었고, 지하철 역까지 나가는 길목 앞쪽에는 대장동이 있었다.
뒷구지는 일산 쪽과 가까웠고 대장동은 화정과 가까웠는데 이게 어릴 때에는 어느 마을이 더 좋냐의 구분이 되었다.
뒷구지는 일산과는 거리가 좀 있기도 하고 버스도 없어서 사실상 고립된 지역으로 생각했고
화정과는 좀 더 가까워서 한 시간에 한 대씩 마을버스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대장동을 거쳐서 화정으로 장도 보러 가고, 놀러 나가기도 했다.
그 탓에 어릴 땐 대장동이 제일 번화했고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뒷구지는 그래서 외부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우리 동네 사람들만 뭉쳐사는 그런 동네였다.
우리 김 씨 집안이 강원도 쪽에서 넘어와 터를 잡았다고 아버지에게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명절 때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절하느라 하루반나절이 걸린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100여 가구가 사는 동네에 나와 동갑인 친구는 여럿 있었는데 남자인 친구는 나와 창민이 성민이 택수 딱 4명이었다.
이것도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의 친구들이고 몇 년이 지나자 한 명씩 이사를 가며 떠나 결국 내 또래 남자인 사람은 나밖에 남지 않았다.
"뭐 해~? 놀자~~!?"
언제나 우리 집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창민이 밖에 없었다.
전화기나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아버지가 일 때문에 삐삐를 차고 다니던 시절이어서 우리는 당연히 직접 약속을 잡거나 찾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어어어 잠깐만!"
주말이면 항상 찾아오는 창민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상황이 조금은 귀찮기도 했다.
창민이가 나를 부르러 오면 주말의 시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언제나 나와 창민이 둘이 시작이었다.
"뭐 할까?"
"글쎄... 슈퍼나 갈까?"
언제나 똑같은 흐름이다.
창민이와 나는 먼저 둘이서 놀만한 걸 찾아다녔다. 가장 만만한 게 우리 동네의 최고 번화가 뒷구지 슈퍼에 가는 일이었고, 슈퍼 앞은 사람들이 많은 시내가 부럽지 않게 많은 것들이 있었다.
뽑기 기계와 100원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기 게임도 있었고 무엇보다 시즌별로 나오는 조립형 로봇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가 돼서 언제나 슈퍼 가는 길이 즐거웠다.
"오늘은 진사람이 꿀밤 맞기야?"
"죽었다 진짜로~~"
나와 창민이는 스트리트파이터를 즐겨했는데 언제나 내가 졌다. 캐릭터를 바꿔서도 해보고 필살기와 꼼수를 찾아 배우기도 했는데 잘 안되었다. 창민이는 이걸 어떻게 이렇게 잘하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지만 창민이도 형들이랑 할 때면 하수였다.
창민이랑 몇 판 하다 보면 오락기 위에 올려두었던 동전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나는 질걸 뻔히 알고 있어서 나올 때 딱 500원만 가지고 나왔고 창민이는 100원짜리 동전 딱 하나로 게임을 즐겼다.
분했지만 같이 즐기려면 어쩔 수 없었다.
'툭'
내 동전이 다 사라져 갈 때쯤 오락기 위에 누군가 익숙한 손으로 100원 자리 동전을 올려놓았다.
정식이 형이었다.
내가 아는 스트리트파이터의 최강자.
그 형은 스트리트파이터로 우리 동네와 옆동네 그리고 저 너머 동네인 화정까지도 재패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서는 이길자가 없는 건 맞았다.
주말엔 형이 오락기 앞에서 주구장창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스트리트파이터만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른 형들과 동생들도 형 옆에 가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언제나 참패하고 말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은 아무도 그 형과 같이 게임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 형!!"
"재미있냐? 내가 발라주지"
나는 이미 돈도 다 썼고 창민이가 혼자 보스를 깨는 걸 지켜보는 중이라 새로운 강자의 출현은 반가웠지만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던 창민이는 챔피언의 등장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승부는 오래가지 않았다.
창민이가 분하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늘어진 뱃살을 움켜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동네 아이들 서너 명이 더 모여 있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였다.
"좋아 이제 깡통차기나 할까?"
정식이 형은 게임도 잘했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의 대장이었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해서 뒷구지 아이들 사이에서는 리더로서 아주 제격이었다.
어린 나이에 여드름이 한가득이었고 언제나 여드름을 터트린 곳에 상처가 나서 피딱지가 져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내 또래 아이들은 정식이 형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우리 누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식이 형은 나를 부를 때의 목소리가 다른 애들보다는 달랐고 좀 더 나긋나긋하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형이 무섭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가끔 형네 집에 놀러 가서 같이 게임도 하고 놀았다.
정식이 형네는 우리 동네에서 손에 꼽히는 부유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집도 돌담 위에 2층짜리 집을 지어 안에는 푸르른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이 있고, 형네 집에 놀러 가면 최신식 컴퓨터와 우리 집 방만한 tv가 있어서 처음 놀러 갔을 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정식이 형을 잘 따랐다.
"좋아요!!"
"오예!"
"여기 깡통!!"
형의 한마디에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슈퍼 분리수거함 안에서 깡통을 몇 개 꺼내 발로 밟아 대령했다.
"좋아 너랑 너랑 가위바위보 해서 팀을 짜"
형의 리더십은 실제로 좋았고, 공평했다. 빠르게 팀을 구성한 우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진기형과 또 한 명 우리 누나 친구였던 성민이 형 팀으로 나뉘었다.
"자 내가 먼저 찬다!"
이렇게 우리 동네 주말은 아이들이 모여 게임을 하느라 조용할 날이 없었다.
깡통차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비석치기, 물총놀이, bb탄 총 놀이 게임이 끝도 없이 많았고 누가 그 많은 게임들을 만들어 우리에게 전해주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항상 주말의 뒷구지는 아이들의 차지였지만 1년 중 두세 번 정도는 어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었다.
바로 동네잔치였다.
우리 동네에 경사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뒷구지 슈퍼 앞에 모여 축제를 벌였다.
내 친구 솔지의 삼촌이 화정에서 행사 관련 일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걸로 돈벌이를 하는 것 같았다. 수완도 좋아서 정말 축제를 하는 것처럼 잘 꾸며놨는데 무대며, 음향장비며, 테이블에 의자까지 부족한 게 없을 정도였다. 음식은 당연히 동네 아줌마들의 몫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구석에서 음식을 했고, 마을 부녀회에서 미리 준비한 재료와 식기구를 마을회관에서 꺼내오기만 하면 됐다.
"아 아 여러분 오늘은 우리 동네 기념일로 저녁 6시에 뒷구지 슈퍼 앞에서 잔치를 벌일 예정입니다. 특별한 일 없으신 분들을 빼고는 모두 참석해서 같이 잔치를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용하던 산속 마을에 이질적인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마을 이장님이 방송하는 소리였다. 항상 똑같은 말을 두 번씩 했는데,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들을 위해 한번 더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마을 축제 준비를 같이 해야 됐기 때문에 아침부터 바쁘셨다.
축제 시간 전에 나와 누나는 미리 슈퍼 앞으로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전을 부치는 냄새가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나와 누나는 엄마를 가장 먼저 찾았다.
무언가 얻어먹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담당하시는 엄마는 나와 누나가 오면 항상 따로 음식을 챙겨주셨다.
우리는 한그릇 가득 담긴 콩비지찌개와 그 위에 몇조각 올린 전을 받아들고 동네 구석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그때 먹었던 콩비지찌개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구수하고 담백한 비지가 잔뜩 들어간 김치 비지찌개였는데 그 어린 나이에 몇십 년이 지나도록 그 맛이 기억나는 건 그날의 추억 때문일까? 엄마의 사랑 때문일까? 동네 사람들의 정 때문일까?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솔지 삼촌의 한마디로 잔치가 시작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진행되는 축제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