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구지 슈퍼

by 꾸꾸

우리 동네 중앙엔 뒷구지 슈퍼가 있다.

큰 갈림길이 세 갈래로 이어져 있는 이곳은 학교와 마을버스, 일산, 화정으로 이어져있기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그 중심에 뒷구지 슈퍼가 있었고 식당하나, 편의점 하나 없는 우리 동네의 양식을 책임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오락기와 장난감 로봇을 모으는 게 더욱 중요한 곳이었다.


"엄마 과자 사 먹게 500원만!"

"알았어~ 엄마 지갑에서 천 원 꺼내가~"

"네~!"


나는 어렸을 때 따로 용돈을 받지 않아서 필요할 때마다 엄마한테 돈을 타서 썼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가 돈을 달라고 했을 때 주지 않으셨던 적이 없었는데 내가 평소에 돈을 잘 쓰지 않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평소에 돈을 쓸데가 없기도 했고, 매달 할머니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셨는데 나는 그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얼마 전 바자회에서 얻은 케케묵은 검은색 가죽 지갑에 전부 모았다.

그러다가 가끔 엄마가 은행에 나갈 일이 있으면 같이 나가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모두 돈을 넣었다.


나는 안방에 들어가서 옷걸이에 걸려있는 엄마 가방에서 빨간색 지갑을 꺼냈다.

만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가 수북했지만 나는 천 원짜리 하나만 딱 꺼내 들고 슈퍼로 달려갔다.

슈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고 기뻐서 천천히 걸어갈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오늘은 뭐 먹으려고?"

"음... 생각 좀 해볼게요!"

"그래~ 고르면 말해주렴~"


항상 큰 목소리로 밝게 인사하는 나를 좋게 보셨는지 사장님은 나에게 늘 상냥하게 인사해 주셨다.

뒷구지 슈퍼에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나보다 4살 정도 어린 남아아이 하나, 아직 걷지도 못하는 갓난아기가 있었다. 슈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진열되어 있는 물품들을 지나 바로 앞에 여닫이로 된 유리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쪽이 슈퍼 사장님네 가족이 사는 집이어서 대충은 다 알 수 있었다.

남자 사장님은 밖에서 다른 일을 하시는지 슈퍼에는 가끔 저녁에 볼 수 있었고, 보통 여자 사장님이 계셨다.

여자 사장님은 얼핏 165 정도 되는 큰 키에 피부가 하얗고 매끈했다. 무엇보다 이런 시골마을에서 슈퍼일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여자사장님은 항상 머리를 뒤로 묶고 계셨는데 관리를 안 하시는지 듬성듬성 흰머리가 보였고 염색한 지 꽤나 시간이 지나 검은색 머리와 색이 바랜 노란색이 섞여있었다.


"흠...."


슈퍼에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고 설레는 길이었지만 들어가고 나면 인생에서 해결해야 될 가장 큰 고민거리가 생겨버리고 만다.

엄마가 준 천 원을 다 쓸 생각은 없었고, 계획했던 대로 500원만 쓸 생각이었는데 어떤 걸 사 먹어야 가장 만족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치토스 500원 하나를 살까? 빼빼로 300원과 새콤달콤 200원짜리를 살까?


가게에 들어서면 우측에 보이는 곳은 음료수가 있는 곳인데 1.5L 음료수 하나에 1,500원이나 해서 내가 가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기에 바로 지나쳤다. 왼쪽에는 아이스크림 박스가 있었는데 일반 아이스크림 500원, 좀 더 큰 더위사냥은 700원이었지만 나는 오늘 과자를 더 먹고 싶어서 이곳도 지나쳤다.

과자 진열대는 슈퍼 중앙에 위치해 있어서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했는데 나는 항상 슈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내가 슈퍼에 매일 오는 유일한 이유인 장난감들이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장난감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애정하는 로봇 장난감이 한편에 진열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벌써 시즌 1부터 시즌 4까지 모았다.

오늘도 여전히 장난감 진열대 앞에 멈춰서 내가 좋아하는 로봇 장난감이 있는 곳을 보았는데 새로 들어온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흠... 큰일이네"


경우의 수가 한 가지 더 늘었다.

400원짜리 초콜릿과자를 사 먹고 계획했던 500원을 좀 더 오버해서 사용할까도 선택지에 추가되었다.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걸까?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많은데 한 번에 선택할 수 있지?


"천천히 다 고르면 말해주렴~ 안에 있을게"

"네네 알겠습니다!"


같은자리를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나를 보고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는데 이젠 이런 내가 익숙해지신 건지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안방에 들어가 계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사장님!! 계산해 주세요!!"

오랜 고민 끝에 후회하지 않을 최고의 선택지를 골랐다.




평소와 같이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슈퍼 앞을 지나갔다.

나는 물건을 살 돈도, 계획도 없었지만 습관처럼 가게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 왔니? 학교 끝나고 왔구나?"

책가방을 메고 있는 나를 보고 학교가 끝나고 바로 왔음을 인지한 사장님이 학교는 어땠는지 물으셨다.


"어!?"


대답을 하려는 순간 나는 장난감 진열대에 그동안 못 보던 장난감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그동안 기다려왔던 로봇 장난감 새로운 시즌 5가 나온 것이다.


"사장님!! 이거 언제 나왔어요!?"

"오늘 아침에 새로 왔단다~ 오래 기다렸지?"


장난감 진열대에는 내가 좋아하는 로봇 장난감이 있었는데 1개에 3,000 원하는 고가의 상품이었다.

처음 시즌 1이 나왔을 때 슈퍼에서 이것을 보고 너무 멋지고 갖고 싶어서 한참을 바라봤던 게 생각이 난다.

주먹만 한 크기의 로봇 장난감은 빛처럼 영롱하게 빛이 나는 듯했다.

이 로봇 장난감은 짧으면 2주 길면 1개월 안에 다음 시즌 로봇 장난감이 나오곤 했는데 시즌 4 이후로는 새로운 장난감이 나오지 않았다.

사장님에게 여러 번 물어봤는데도 회사에 요청은 했는데 상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만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기다렸고, 나는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시즌 5를 볼 수 있었다.


"사장님! 이거 살게요! 다른 사람한테 파시면 안 돼요!?"

"알겠어~ 따로 빼놓을게"

"네네 집에 가서 돈 가져올게요!!"


나는 내가 뛸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집으로 달려갔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불안함이 엄습했다.

돈이 없었다.

매달 할머니 할아버지께 받던 돈은 며칠 전에 엄마랑 밖에 나가서 은행통장에 모두 넣어버린 뒤였다.

아빠는 퇴근하고 저녁 늦게나 오실 거고... 누나도 학원 갔다가 돌아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당분간 큰아버지집에 가신다고 하셨고,

늘 집에 계시던 엄마는 하필 오늘 약속이 있다고 저녁에나 오신다고 하신 게 생각이 났다.


'어떡하지...?'

가게 사장님에게 물건을 사겠다며 호탕하게 말하고 집에 와보니 돈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잠시 멈춰 서서 고민했다. 지금 사지 않으면 누군가 사버릴 것 같은 생각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거실 TV옆에 놓여있던 빨간색 돼지저금통이 눈에 띄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누나 모두 동전이 생기면 빨간색 돼지저금통에 모았는데 가득 차는데 5개월~6개월 정도가 걸렸다.

누군가 돈을 넣을 때 이거 '다 차서 더 안 들어가~'라고 말하면 그날이 빨간색 돼지저금통을 깨는 날이었다.

아빠가 커터칼을 가져와서 돼지저금통 아래 배를 가르면 그동안 모았던 동전들이 우수수수 떨어졌다.

가끔 천 원짜리 지폐도 섞여있었는데 분명 할아버지나 엄마가 넣어놓으셨을 거다.

그렇게 온 가족이 모여 금액별로 분류해서 금액을 세면 10만 원 정도 돈이 모였다.

우린 그날이 가족 다 같이 외식을 하는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보통 한 달에 한번 정도 외식을 했는데 동네에 식당이 하나도 없기도 했고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가족 모두 외식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엄마랑 화정에 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나 햄버거를 먹는 게 다였다.

빨간색 돼지저금통은 우리 가족에게 남는 동전, 버리는 동전을 뛰어넘는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물건이었다.


"하... 안되는데..."


그런 돼지저금통에 손을 댄다는 건 아무리 어린 나였어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 로봇 장난감도 내가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고 지금 못 사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될지 모른다.. 아마 평생 못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나를 덮쳤다.


"아무도 모르게 하면 문제없지 않을까?"


나는 돼지저금통에 돈을 흔적 없이 빼내어 아무도 모르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로봇 장난감을 사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돼지저금통을 집어 들었다.

꽤나 모았는지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오?"


운이 좋았다. 돼지저금통을 거꾸로 해서 입구 쪽으로 손가락을 넣었는데 종이 같은 게 잡혔다.

천 원짜리 지폐였다.

그렇게 티나지 않게 3,000원을 꺼내 가게로 달려가 그토록 기다리던 로봇 장난감을 샀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거래해 본 최고가의 상품이었다. 그동안은 엄마가 대신 사주셨기 때문이다.

이 영광과 멋진 로봇 장난감을 매일 매 순간 보고 싶었기에 시즌1 ~ 시즌4가 진열되어 있는 거실 한가운데 TV장 앞에 똑같이 진열해 놓았다.


저녁에 누나가 먼저 왔고, 그다음엔 엄마가 들어오셨다.

엄마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빠르게 씻고 나와 누나와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하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누나와 거실에서 TV를 보며 진열되어 있는 로봇 장난감을 보며 행복해했다.

그때였다.


"아들 잠깐 부엌으로 와볼래?"

"네? 왜요?"

저녁을 먹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시던 어머니가 나만 따로 부르셨다.


"아들. TV앞에 장난감 어디서 났어?"

어머니는 언제 보셨는지 TV앞에 새로 놓여있는 로봇장난감을 보고 나에게 물으셨다.


"아 그거 시즌 5요!! 드디어 새로 나왔어요!! 오늘 새로 나와서, 그래서 바로 사 왔어요!!"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동안 기다리느라 고생했던 마음을 엄마가 단번에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더욱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들 돈은 어디서 났니?"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나는 로봇 장난감을 사는 데에만 온 신경이 몰두해 있었고, 돈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저금통에.... 서요."

"저금통에서 돈을 꺼냈다고?"

"네...."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잘못됨을 인지했고, 내가 한 행동이 옳지 못한 행동임을 직감했다.


"아들아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하면 엄마가 돈을 안 줬던 적이 있니? 돈이 없으면 기다렸다가 엄마한테 달라고 했으면 줬을 텐데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이 모으는 돼지 저금통의 돈을 몰래 빼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야"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오늘은 정말 큰 실수를 저질렀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크게 혼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히려 엄마는 아주 부드럽게 한마디 하시면서 나를 또렷이 쳐다보셨다.


"아들아 오래 기다린 건 알겠는데 그래도 다시는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돼 알겠지?"

"네...."

나는 크게 혼날 것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타일러 주시는 엄마를 보며 더욱더 충격을 받았다.


'아.... 내가 정말 정말 잘못했구나....'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다른 사람의 돈에, 가족의 돼지 저금통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전 03화뒷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