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누나!! 오다가 봤어!?"
나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하며 허둥지둥 집에 들어오자마자 누나를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뭔데? 뭘 봤다는 거야?"
"... 효정이...."
"뭐!? 어디서!?"
"아 저기 교회 앞에서...."
"헐... 왜 뭐라고 했어??"
"아니 그냥 보자마자 도망쳐왔어!!"
뒷구지엔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소문이 금방 난다.
누구 집에 의자가 몇 개인지,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도 알고있다. 그중 가장 큰 관심사는 당연히 아이들의 몫이었고 조그마한 동네에서 할 이야기가 다 떨어지면 옆동네 아이들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언제나 이야기의 대화의 주제로 나오는 단골손님은 상황동에 살고 있는 효정이네였다.
효정이네 가족은 3 자매였는데 가정이 어려워 첫째는 어린 나이에부터 밖에 나가 일을 했고 둘째는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불편해 혼자서는 집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두 명 이상 뒷구지 아줌마들이 모이면 항상 나오는 효정이네 이야기중 둘째는 너무 말라 뼈밖에 없는 걸로 묘사되곤 했다.
사실 첫째와 둘째는 가끔 이야기가 나오는 정도이고, 자주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셋째 효정이었다.
효정이는 나보다 5살 정도 많았는데 학교를 같이 다니지도 않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동네 모든 사람들이 잘 알았다.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어른들 말로는 어릴 때 친구를 잘못 만나 애가 변했다는 둥... 원래는 착하고 인사성이 밝았다는 둥... 애초에 정신머리가 없었다는 둥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끊이질 않았다.
효정이는 학교에 가질 않았고, 시간이 남아돌았는지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거리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시비를 걸고 다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듬성듬성 나있는 여드름이 그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매와 굵은 입술이 그녀의 과격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어이 할아버지 늙었으면 밥값 축내지 말고...."
"야 너 돈 있냐?"
"아줌마 왜 이렇게 살이 쪘어요?? 돼지예요? 걸어 다니는 게 신기하네.."
"아저씨 돈 좀 있어요?"
"야 너는 그 얼굴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냐 에휴..."
세상이 삐뚤어져있는 듯 효정이에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비난과 인격모독의 대상이었다.
가끔 사리분별 못하고 성깔 더러운 사람한테 시비를 걸면 그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싸움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번은 우리 동네 최 씨 아저씨가 고주망태가 돼서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배회하고 있었는데 효정이와 마주쳤다.
"아 뭐야 술냄새 아저씨 대낮부터 뭐 하는 거예요?? 인생 다 살았어요??"
"뭐야???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죽고 싶어??"
"죽고 싶은 건 아저씨겠지 지금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런 싸가지없는년이 너는 애미애비도 없냐!?" 입만 살아가지고 이리 와 일로와!!!"
"그래 없다!! 뭐 보태준거있냐? 가면 어쩔건데!?!?'
태권도 학원을 가려고 뒷지 슈퍼 앞으로 나갔는데 보기 드문 진기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효정이와 최 씨 아저씨의 싸움은 점점 더 커져갔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설과 폭언이 난무했다.
"야이 호로자식아 너 부모가 어른한테 그렇게 개기라고 가리키디!?"
"뭔 개소리야 나 부모 없는데 그러는 너는 니 자식한테 좋~은거 잘 가리키겠다!?"
효정이는 단 한 번도 말싸움에서 져본적이 없었고 되받아치기를 귀신같이 잘했다.
멀찌감치서 들키지 않게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하나 둘 동네 아줌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둘의 목소리가 너무 커 전방 뒷구지 온동네 집안까지 다 들렸던 모양이었다.
최 씨 아저씨가 더 이상은 말로 안 되겠는지 길가에 버려져있는 쇠꼬챙이를 들면서 위협했다.
가늘고 긴 쇠꼬챙이는 녹슬어있고 끝이 뾰족해서 정말 위험해 보였다.
그걸 보고 동네 아줌마들이 하나둘 말리기 시작했다.
"뭐 그걸로 나 찌르려고~? 오호 좋아 해봐 해봐!! 다 같이 죽는 거야!!"
효정이는 여리고 어린 나이에도 전혀 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매섭고 당당했다.
둘의 싸움이 최고조로 무르익어갈 때쯤 익숙한 노란색 봉고차가 반대편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곧 타고 가야 될 태권도학원 버스였다..
"아....."
오랜만에 보는 진귀한 풍경을 끝까지 보지 못한 게 아쉬어서 육성으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말로만 시비를 걸다가 가끔 크게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고, 약한 상대를 골라 폭행을 하기도, 빈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하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도 몇 군데 효정이가 집에서 몰래 나오는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도 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금방 풀려났다.
이런 효정이의 공격적인 행동들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누구 하나 막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이웃동네인 우리 동네 아이들까지도 피해자가 생겼다.
나와 누나도 그 피해자들 중 하나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나보다 2교시를 더하는 누나가 대성통곡을 하며 집에 들어왔다.
"엉엉엉 엄마~!!!!!"
나도 깜짝 놀라서 대문으로 나가보니 누나가 온몸에 흙먼지투성이를 하고 옷이 여기저기 늘어나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무슨 일이야!??"
엄마는 누더기가 된 누나를 보며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하라고 다그쳤다.
"효정이가!!!"
그랬다.
말로만 듣던 효정이의 폭행이 우리 동네까지 범위가 넓어졌고, 이번 타깃은 우리 누나가 됐던 것이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가 끝나고 보름이 누나와 집에 오고 있었는데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 효정이가 있었고, 둘은 저 사람이 효정이가 맞네 아니네 썰전을 버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효정이가 그런 모습을 보고 다가와
"너네 지금 내 욕했지?"
라고 했고, 당연히 욕을 안 했다고 했지만 이미 효정이의 레이더에 들어온 누나와 보름이 누나는 피해자가 되어있었다. 효정이는 나이에 비해 키가 컸는데 웬만한 중, 고등학교 남자보다도 키가 컸다.
언뜻 보면 170 이상 되어 보였다.
누나의 말을 차근차근 다 들은 엄마는 누나를 먼저 꼭 안아주며 진정시켰다.
"엄마가 다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그 말을 하고 엄마는 바로 집밖으로 나갔다.
나와 누나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는 뒤에 어떤 여자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효정이었다.
"!?"
나와 누나는 깜짝 놀라며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안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엄마는 효정이와 부엌에 마주 보고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안방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내 눈에 보였던 건 효정이는 서럽게 울고 있었고, 엄마는 그런 효정이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한 엄마와 효정이는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너 방에 있는 거 다 알아 나와봐"
효정이가 거실에서 안방을 보며 말했다.
누나는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계속 안에 있었다.
"아까 미안했어 내가 오해했나 봐"
"아,, 아니야 괜찮아"
상상하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 무섭고 악당 같았던 효정이가 사과라니
그 한마디를 한 뒤로 효정이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다.
엄마도 한동안 우리에게 말이 없으셨고, 나중에도 그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다.
효정이를 다시 본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비좁은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내려온 나는 내곡교회 앞에 머물렀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려는 찰나에 눈앞에 커다란 실루엣이 보였다.
처음엔 누군지 몰랐으나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효정이었다.
효정이는 나한테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효정이의 소문과, 그날 누나가 울며불며 집에 들어온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생존본능이 발동한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달리는 경주마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집으로 다렸다.
절대로 효정이와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됐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를 쫓아와 왜 도망치냐며 나를 괴롭힐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수십 수백 번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앞을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길을 확인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내곡교회 내리막을 지나, 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는 순간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효정이가 나를 보며 한마디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순간 모든 건 끝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며 계속 달렸다. 집으로.
정식이 형네를 지나고, 창민이네를 지나고, 뒷구지 슈퍼를 지나 골목길을 올라 우리 집 마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전지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얼마나 뛰어왔는지 알 수 도 없었다. 아마 학교에서 집까지 최단시간으로 온 것 같았다.
다행히 효정이는 나를 쫓아오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모르는 마음에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집에 있는 엄마와 누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