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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Jan 26. 2022

건강하게 살자, 재밌으면 더 좋고

안녕, 소연아!

연말연시 분위기 좀 느끼며 여유를 부렸더니 어느새 1월도 다 지났네.

확진자가 무려 만 명 단위로 치솟아버린 요즘이야.

나 역시 최근에 밀접접촉자(수동감시자)로 분류되면서 다시 한번 질병이 턱밑으로 확 다가왔다는 느낌을 받았어. 우리 모두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건강을 잘 지켜내 보도록 하자.


외부 활동을 사리다 보니 나 역시 준 격리 수준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고, 남편도 지난주가 재택 주간이라 꼬박 주 7일 밤낮을 함께 보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투지 않았다는 것에 기립박수!를 셀프로 보내면서;

답십리 하우스의 가사분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우린 어찌 보면 둘 다 '어때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어. 정확히 말하면 대체로 '어때주의자'이면서 - 간헐적으로 '이건 좀 심한데?' 증상을 겪는달까.

그래서 우리 집엔 주기적으로 손님이 와줘야 해. 안 그러면 '이건 좀 심한데?'의 빈도수가 줄어서 집안 꼴이 통제 불능이 될 때가 있거든.

우린 암묵적으로 정말 너무 귀찮지 않다면 "내가 해줄까?"라고 던지는 편이야. 어쩌면 남편이 먼저 시작해준 우리집의 룰일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좀 퍼져있을 때나 피곤해할 때 "내가 밥 좀 해줄까?" "오늘 분리수거는 얼마 없으니까 나 혼자 다녀올까?"라고 해주면 오히려 엉덩이가 확 가벼워지고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

받은 만큼 주려고 노력하고 또 베푼 만큼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어떤 이슈든지 무적이다. 전공 시간에 배웠던 이상적인 협상법이 이와 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팃포탯 전략 맞나?ㅋ

전공 공부가 나에게 선사해준  모르는  아는 척하는 뻔뻔함 뿐이네...


아무튼, 난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통해 비슷한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 우리 삶의 진로는 앞으로 천차만별로 찢어져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비슷한 가치를 발견하면서 지금처럼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


너한테 지나가듯 소식을 전하기는 했지만, 나는 근 몇 주간 원인 모를 우울함에 시달렸다.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볕을 쬐지 못한 탓인지 호르몬의 농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어버리더라.

작년이 나한테는 생각보다 굉장한 한 해였더라고. 결혼이라는 큰 경사도 있었고, 약 5년 만에 근무 부서도 급 변경됐지.

다 잘해나가고 있고,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 중이었는데 왜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나갔는지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 하나 둘 나의 책임이 늘어갈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걱정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심리상담과 외부활동 등등으로 인해 아주 많이 좋아졌어.


회복하는 데는 남편의 역할도 아주 컸어.

남편은 '우울'이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   정도로 맥락 없는 걱정 혹은 부정적인 생각 자체를 공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나도 선뜻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기 쉽지 않았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 봐, 혹은 나에 대해 실망하거나 덜 사랑하게 될까 봐 그랬지.

그래도 살아야겠어서 결국은 나의 힘듦을 토로했고, 그는 '나도 그렇다'는 공감 대신 '그럴 수 있겠다'는 공감을 해주었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응원해줬고, 전화 상담을 하는 한 시간 동안 나를 온전히 혼자 둬주고 본인은 밖에서 사부작사부작 집안일을 해주더라고.

땅굴에 빠져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간신히 기어 나오고 나서 돌아보니 눈물 나게 고맙더라. 이해가 안 가는 상대방을 덮어놓고 기다려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야.


서로의 허점들을 파악하며 신뢰를 쌓고 있다는 너의 말을 깊게 공감해. 나의 허점을 묵묵히 메워주는 상대를 보며 믿음을 갖고, 나도 같은 일을 해주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나도 남편에 대한 신뢰를 다져가고 있다.


너의 즐거운 레터에 대한 답장이 급 무거워져 버려서 민망하네ㅎㅎ

지금 나는 아주 말짱해. 수동 감시 기간이 끝난 오늘과 내일 연이어 필라테스 예약을 잡아놨고, 주말엔 친구들을 만나고  남편과 남한산성으로 트레킹을 가기로 했어.

저번 주말에 아주 귀여운 커플 트레킹화를 장만했거든. 미니멀라이징을 실천하는 너한테 전할 얘기가 아닌가 싶지만........ 장비부터 구매하고 계획을 짰지.

그리고 이번  안으로 제주도행 비행기표도 끊을 예정이야. 트레킹화 길을  들이고 한라산 등반을 가볼까 하고. 한라산 등반은  너희가 선배 아니니! 살아 돌아올  있는   부탁해.


우리의 첫 커플 트레킹화!

너희도 드디어 생활 운동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니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살이 쪘다니 그것 또한 반가운 소식이야.

반려인과 함께 운동하는 삶에 대해, 고작  개월 선배인 나에게 감상을 물어주니 황송하고 부끄럽네.


장점이라고 꼽자면 수도 없는데 역시 가장 좋은  재미가 아닐까?

함께 몸을 움직이는 재미, 더 많은 시간을 동적으로 소비하는 재미, 내 몸과 상대의 몸의 성장을 바라보는 재미, 그 밖에도 운동을 하러 오고 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붕어빵이 보이면 '운동도 했는데 하나 먹지!'하고 나눠 먹는 재미,

등산을 가고 사이클링을 가서는 경치를 보고 맛집을 찾아가는 재미, 격한 운동을 하고 난 다음날에는 같이 곡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게으른 하루를 보내보는 재미, 그 밖에도 무수한 재미들이 있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재미를 보는 와중에 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니까 이보다 좋은 취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나는 이번 기회에 생존을 위해 하는 게 운동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삼십대로 접어드니 예전 같지 않은 몸뚱이는 차치하고라도, 볕을 쬐고 땀을 흘리지 않으니 마음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더라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넷이서 등산이라도 같이 가자!


그런데 함께 해야만 하는 가사노동, 함께 하는 운동도 좋은데 우리는 개인 시간도 꼭 필요한 사람들이잖아.

네가 저번 편지에서 말했던 케렌시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생각 중이야? 그리고 너희의 개인 시간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궁금해. 친구들은 자유로이 만나는지, 그 과정에서 혹시 다툼은 없는지,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는지.

그리고 또, 함께 집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에도 개인 시간을 곧잘 갖는지, 집 안에 너만의 공간을 두고 있는지도 궁금타. 아주 초반에 한 번 놀러 가고, 인테리어 이후로는 놀러 가질 못해서 더더 궁금하네.


그럼 답장 기다릴게.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길 바라!

또 답장도 좋은데 그전에 너와의 밥 한 끼, 커피 한 잔 할 시간이 먼저 오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해 본다... 또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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