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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Oct 22. 2022

호그와트에 슬리데린도 있는데 나도 나 그대로 존재해도

해리포터를 읽으며 다양성의 필요를 생각해본다

한마디만 먼저 이야기하겠다.

J.K. Rowling의 해리포터는 인간이 얼마나 대단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나는 그녀가 해리포터를 쓸 때 신내림을 받았거나 인간사회를 전지전능하게 관찰할 수 있는 외계인이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 매번 읽을 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세계관이 탄탄하고 치밀하며 7권의 책 내용들이 어디 하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심지어 네이밍 하나하나에도 그 의미가 있어 마법사 운동인 퀴디치에서 해리의 포지션인 수색꾼의 역할이 해리의 운명과도 연결되어 해석된다. 수색꾼이 골든 스니치를 찾아야 (seek, 수색꾼의 영문명은 Seeker이다) 퀴디치 게임이 끝나는 것처럼 악과의 싸움도 해리만이 끝낼 수 있다는 연관성까지...


방금 전 네 번째 진행하는 해리포터 2권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북클럽을 마치고 영감과 인사이트 가득한 그 상태 그 자체로 이 글을 쓴다. 오늘의 토론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양성 (diversity)'이다. 



다양성은 많을 다, 모양 양, 성질 성이다. 즉 모양이나 성질이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을 뜻한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해리포터는 이 다양성이 왜 우리 세상에 필요한지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다양성에 대한 그녀의 의견과 생각을 스토리로 표현한다.


우리 모두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점은 안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는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모인다. '끼리끼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끼리끼리 오래 지내다 보면 끼리끼리 와는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지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 수 있게 된다. 해리포터에서도 이 끼리끼리 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기숙사 (House)이다. 기숙사 분류 모자(Sorting Hat)가 학생 한 명, 한 명씩 자질과 능력 등을 스캔하여 4개의 기숙사에 골고루 배정한다.


용맹하고 불의를 못 참는 그리핀도르는 재간이 많고 얍삽 빠른 슬리데린과 지속적으로 대결구조를 벌인다. 절대 악 볼드모트의 친정인 슬리데린은 순수혈통에 집착하고 혼혈 마법사들과 머글 출신 마법사를 탄압하고 범죄를 서슴지 않아 '악'으로 치부된다.

오늘 토론 질문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 '만약 슬리데린이 그렇게 사악하다면 왜 아직도 호그와트에 살라자 슬리데린(Salazar Slytherin)의 이름을 딴 기숙사가 존재하며 왜 아직도 일부 학생들은 그 기숙사에 배정되길 바라는가?'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악을 없애고 선만 남기면 안 되냐는 질문이다. 존재하는 하나의 고유한 성질 중 하나인 악이 의도적으로 뿌리 뽑겠다고 한다고 해도 없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왜 호그와트라는 학교 안에서 이런 불손한(?) 부류들을 계속 받아주고 교육시키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답을 얻었다.

일사불란하게 투표하고 통제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 미국 보고 엉망이라고 하는데, 괜한 걱정이야. 그 '엉망진창'이 어마어마한 힘 이라네. [....] 사회적 병폐, 악, 우리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그것까지도 '끌어안는 것', 그게 추위를 느끼는 거야. 추위를 함께 느껴야 한다네. 추위 속에서 타자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거라고. (p.197)


만약 슬리데린이 없다면 호그와트는 어떨까? 선하게 용맹한 그리핀도르, 똑똑한 레번클로, 성실한 허플퍼프만 있는 호그와트. 나는 용맹한 그리핀도르가 선두가 되어 그 안에서도 또 피 튀기게 싸우다가 또 어느 부류가 슬리데린과 같이 '악'으로 치부되어 쫓아내는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어 누구나 '나도 퇴출될 수 있다. 나도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심리가 만들어질 것 같다. 누구나 퇴출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갖고 사는 것. 이어령 선생님께서 추방하고 격리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라고 말씀 하신 게 이런 게 아닐까.


더 깊이 들어가면 철학적인 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 정도로 깊이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이 다양성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에게 왜 좋은지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북클럽이 결국 사람들에게 다양성을 맛보게 하는 세팅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읽고 이해한 것을 나누는 곳이다. 나는 A라고 생각한 질문에 저 사람은 B를 답하고 또 다른 사람은 X를 답한다. 여기서 '아 당신은 그렇구나' 정도로만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 '와 B, C, D, X도 있구나. 신기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북클럽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이다. 이러한 다양성에 흥미를 갖고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받는 것을 즐긴다. 나도 그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북클럽을 4년 차 진행해보니 북클럽에서 매번 만나는 다양성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관계에 있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많이 너그러워졌다.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인데 책의 다양한 삶을 감정 이입해 보면서 다양한 시각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것에 북클럽까지 가미하면  X 20은 될 것이다.' 그런 경험을 자주 하다 보니 '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근본적으로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이렇게 이해하는 수준의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이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정도면 나에게 장족의 발전이다. 과거에 나는 내 기준에서 맞지 않는 사람들을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비난한 적이 많았다. 다양성을 받아들인 이후로 내 일상에서 상대의 다른 의견과 견해를 인정하고 내려놓는 연습들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경우 더 평온해졌다.


두 번째는 내가 최근에 깨닫게 된 영향이다. 함께 읽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경험들의 공유가 나에게 '나대로 살아도 괜찮다'라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만들어진 어떠한 공식에 맞춰 산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공식에서 벗어나는 지점들이 내 삶에서 생겼고 이는 나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기나긴 수행기간(?) 끝에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주도적으로 하면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공식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미도 좋지만 결국 매출이 잘 나야 성장이지  

40살이 되기 전에 어느정도 결판를 봐야 해

효율성이 떨어지면 시간 낭비라는데

창업 3년 차이면 이 정도 매출은 나와야 ...


이런 공식에 맞추기 많은 노력과 시도를 했다. 잘 안되면 현타가 왔다. 자꾸 지치고 힘들었다.  


그러다가 이 다양성을 떠올랐다. 이 공식대로라면 모든 것이 효율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은 빠른 성공을 만들어내야 한다. 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많은 것들은 꼭 이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동네  동네를 구경 가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가 흥미로운  보이면 저기도 가보고 독특한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 보기도 한다. 내가 사는 서울은 어느 동네를 가도 동네 곳곳에 주인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로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 음식점, 카페들이  눈에 보인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주고 영감을 준다.  같이 효율성, 빠른 성공,   따졌다면 절대 나올  없는 사업 형태이고 운영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형태들이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끌어내며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살아있는 도시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사람도 이러한 다양성 안에서 그 아름다움에 일조하는 삶을 사는 것도 멋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의 주류 사상인 빠른 성공, 돈, 효율성을 기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을 선택하면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불필요한 fitting in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학교에 '악동' 담당을 하는 슬리데린도 존재 이유가 있는 것처럼, 하물며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거라면 나 그대로 존재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질문에 '그래도 된다'는 답을 얻고 힘을 받는 곳. 북클럽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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