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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Oct 13. 2022

로맨스도 로맨스지만, 대화 자체의 아름다움

애 둘 엄마가 Before Sunrise & Sunset을 읽으면  

Before Sunrise & Before Sunset은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영화들이다. 물론 나에겐 영화보다 대본집이 더 의미가 있다. 영화는 Before Midnight까지 각각 한두 번 봤지만 대본집은 닳도록 읽었다.


2015년, 둘째 아이를 낳고 아이를 봐주실 이모님이 생기게 된 이후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서 원서를 뒤적거리던 차에 집어 들었던 책이 이 책이었다. 서서 대본집을 쓱 훑는데 이 책이라면 영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영화를 보면서 큰 사람들이니까. 뭐에 홀린 사람처럼 이 책으로 오프라인 북클럽 모집을 했고 진짜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시작을 위해 전단지를 붙였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전에도 했으니​ 넘어가도록 한다.




많은 분들은 비포 선라이즈 영화를 떠올리면 '로맨스'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도 '대화'가 떠오른다.

남녀를 떠나 성인 두 명이 나누는 깊은 대화들. 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작년에 북클럽 할 때도 멤버님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다. 이게 20대 때 할 수 있는 대화냐고.


20대를 훌쩍 넘긴 우리들에겐 그런 부분이 참 놀라웠다. 우리의 20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 생각을 솔직히 표현했는가?


제시와 셀린은 정치와 환경, 교육, 부모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했고 서로 전혀 다른 의견을 보일 땐 '응 그렇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또 자신의 이야기로 대화를 켜켜이 쌓아갔다. 동서양의 차이인 건가 아니면 그냥 개인의 차이인 건가.  


과거 20대의 내가 되어 남자와 저렇게 하루 종일 대화를 해야 한다면 상대, 특히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이성이라면, 내 생각과 의견은 뒤로하고 '맞아 맞아' 하면서 물개 박수를 치는 공감의 아이콘이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인식했을지가 의문이다. 내가 무언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제시가 'why does everyeone think conflict is so bad?' (왜 우리 모두는 갈등이 굉장히 나쁜 거라고 생각해?)라고 했다면 아마 나는 '응?' '뭐라고?' 했을 것 같다. '도대체 얘 무슨 얘기하는 거야...' 우리는 당시 이런 개념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을 4차원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나이든 성인이라도 깊은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일상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순 있다. 그러나 상대가 생각을 해야지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물으면 아주 표면적인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고 학원 이야기로, 최악의 경우엔 연예인 이야기로...  누가 그러더라 연예인 이야기 나온 순간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 거라고. 깊은 생각의 공유를 통해 점점 가지 치는 폭넓은 대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셀린과 제시의 끝도 없이 진행되는 대화가 너무 아름답고 부러웠다. 그 대화를 오스트리아 빈과 파리에서 걸으면서 나누다니...  


내가 다시 20살로 돌아간다면 문학을 더 많이 읽고 싶다. 일을 해야 한다는 죄책감, 아이를 보고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죄책감 없이 마음 편히 읽고 싶다. 그렇게 읽고 나서 글을 쓰고 그 책들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생각 없이 많이 걷고 싶다. 배낭여행도 하고 싶다. 딴짓을 많이 해보고 싶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건 내가 꼭 20살로 돌아가야 가능한 일은 아니구나 해서 안심이 되기도 하다.


근데 20살로 돌아가야   있는  아닌데 분명 지금 내가 하는 것과 20대의 내가 하는 것엔  차이가 있다. 북클럽에서  멤버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는 버석해져 버렸다. 버석하다는 단어는 진짜 존재하는 단어이다. '부스러지기 쉬울 정도로 물기가 없어 부숭부숭하다.' 그래서 지금 비포 선라이즈에서 20대의 셀린과 제시의 하룻밤의 대화를 영화로나 대본집으로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크나큰 선물과 같다. 왜냐면 그들도 비포 선셋에서는 나와 같이 버석해지고 비포 미드나잇은  하다. 그게 나쁘다는  아니다. 그냥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고  모른   이쁜척하고 똑똑한 척하던 20대의 젊음이  자체로 대체 불가이기 때문이다.

 


난 이장면이 그렇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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