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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Oct 12. 2022

또 다른 내가 와도 머물고 싶은 삶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노라가 된다면,

내가 원했던 내 삶은 항상 좀 화려했다. 번쩍번쩍, 블링블링.


초등학교때부터 서울에서 살때도 외삼촌댁에 갈때마다 지나갔던 강남역의 전광판에 매료되곤했다. '나도 이런곳에 살고싶어.'고등학교때 동아TV의 화려한 패션쇼를 서너시간씩 넋놓고 볼 때는'내가 저런 옷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피날레에 화려하게 등장하는거야!' (아마 내가 피지컬이 받춰졌다면 저 무대에서 화려한 워킹을 하는 패션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더 진귀하고 화려한 것을 열망하던 나는 고등학교때 그 꿈을 크게 이뤘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중 하나인 뉴욕에 살게된 것이었다. 그러나 화려함의 전형인 맨하탄이 아니고 주거지역인 롱아일랜드라서 만족을 못했을까. 그곳에 살면서도 번쩍번쩍한 맨하탄을 마음에 품었다. 대학교에 가게될 때도 당연히 뉴욕 도시 안의 대학교를 생각했고, 6년동안 적당히 성적을 유지하기만 하면 미국약사가 될 수 있는 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부터였을까. 부모님의 반대로 이 학교에 못가게됬다. 워너비 번쩍번쩍, 블링블링 라이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뉴욕 도심에서 차로 6시간 넘게 북쪽으로 쭉 가다보면 나오는 버팔로라는 곳에 있는 대학교에 가게되었다. 또 어찌나 추운지,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눈이 오는날이 안오는 날보다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씨티걸이 시골에 오니 답답하기가 그지 없었다. 틈만나면 국경을 건너 토론토라도 갔고 방학땐 무조건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화려한 곳으로! I don't belong here (여긴 내가 속할 곳이 아니야)!


또 그러한 간절한 염원이 풀린걸까. 4년 후, 나는 맨하탄의 Upper West side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서 살며 뉴욕 서브웨이를 타고 116가에 있는 학교를 통학하고 밤낮으로 이 화려한 도시를 직접 느끼며 살게되었다. 만약 그때 그 이후에 더 화려한 꿈을 꿨다면 2022년 10월 12일 오전 10시 40분, 서울의 한적한 동네, 아이들을 학교보내고 나의 서재/아이방/피아노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는 않겠지.




You can have everything and feel nothing.

@NoraLabyrinth, 74.8K Retweets, 485.3K Likes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성공한 Labyrinth의 리드싱어로 사는 삶에서 노라가 쓴 트윗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유명인이 이렇게 말하면 멋있지.


당시 맨하탄의 삶은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가진 그 순간.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금요일, 여느때와 다름없이 한껏 꾸미고 치장한 후 파티에 갔고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적당히 지적인척, 예쁜척 춤을 추고 돌아온 밤이었다. 킬힐에 발도 아팠고 술도 취했다. 원룸 안의 침대에 털썩 앉아 왼쪽을 돌아 화장대 거울을 보는데 내 모습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난 번쩍번쩍 삶을 원했는데, 이 삶을 위해 친구들 다 놀때 GRE를 세번을 보고, 뭘하고 싶은지도 생각하지 않은채 전공을 정하고, 나의 참 별로였던 본 모습을 알았지만 그 모습마저도 사랑해준 사람을 떠나보냈는데, 정작 그 번쩍번쩍, 블링블링의 바로 뒷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침대 위에 있던 인형을 안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클리쉐 같지만, 이때 내 삶은 사랑이 없었다. 나 자신도 진짜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나마 진짜 나를 사랑해준 사람은 멀리 떠나보냈다. 화려하고 진귀한 것도 내 삶에 사랑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아니,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수 있다.


    



이쯤이면 노라가 다시 The Midnight Library로 가게되고 싶을 이야기이다. '이건 아니야.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야' 하고. 그렇다면 노라에게 지금 내 삶을 보여주고 싶다.


매번 싸우고 이르고를 10분에 한 번씩 반복하는 남자아이 두 명과 나를 다시금 받아준 남자와의 삶. 번쩍번쩍, 블링블링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삶. 사랑이 있고 노력이라는게 있는 삶. 내 안의 사랑을 계속 따스하게 보존하기 위해 기분이 좋지 않을때 심호흡을 하며 10을 세는 노력을 하는 삶. 저쪽에서 먼저 나에게 화해해 주길 바라지만 그래도 따뜻한 아침식사로 '미안해. 사랑해'를 전하려고 노력하는 삶. 화가나서 방에 먼저 들어간 아이의 2층 침대로 기어 올라가 '미안해. 화가났니?' 라고 묻고 따뜻한 목욕과 샴푸를 해주며 오늘 속상했던 것을 물어보는 삶. 함께 산책을 다녀오고 냉파로 볶음밥을 만들어 하트 그릇에 꾹꾹 담은 다음 다시 뒤집어서 그릇에 내어주는 그런 삶.


 



이 책의 원서 The Midnight Library 북클럽을 할 때

소피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또 다른 내가 지금 내 삶에 와도 더 머물고 싶을 수 있도록..."


이 글은 그녀의 이 한줄이 내 머릿속 한켠에 계속 남아 쓰게된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노라가 나중에 Ash와 낳은 딸과 사는 삶을 떠나기 싫어하는 부분이 있다. 깊게 사랑하고 또 깊게 사랑받는 것의 힘을 느꼈던 그녀. 넘어진다고 해도 사랑의 그물망 'a net of love' 이 너무나 촘촘하여 꽉 잡아줄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느낀 그 순간 그녀는 이 삶이 끝나는 것을 직감했다. 이 삶은 그녀가 획득한 것이 아니기에. 진짜 그녀의 삶이 아니기에 그렇게 놓아주게 된다.


만약 지금 또 다른 내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여러버전의 내 삶을 살아보고 있다면, 그러다가 지금의 내 삶을 경험하게 된다면 더 머무르고 싶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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