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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Sep 29. 2021

나만의 메리트 찾기  

나의 삶의 영어북클럽으로 이르기까지 


메리토크라시는 출신이나 가문 등이 아닌 
능력이나 실적,  메리트(merit) 따라서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계.
실력주의. 능력주의를 뜻한다.


사회가 원하는게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메리트를 아가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아이둘 엄마의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근 6년만에 다시 회사원이 된 것이다.


처음엔 끝내주게 좋았다. 울타리에 갖혀있던 강아지가 울타리 밖을 넘어 온갖 동네를 처음 구경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다. 비행기를 타고 아랍에미레이트라는 나라로 출장도 가봤다.


많은 것들이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아침에 일어나서 내 단장을 하고 이모님이 오시면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서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걷던 그 상쾌함이 떠오른다. 그게 참 좋았다. 그 당당한 걸음걸이만 보면 중역감이다. 현실은 그냥 말단 직원이었지만.


회사에 간 이유는 앞 글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뭔가 내가 더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회는 물론 내가 나에게도 증명하기 위한 한 걸음이었다. 물론 돈도 필요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아닌, 나이들어 받는 부모님의 용돈이 아닌, 내가 버는 돈이 필요했다.


멋진 커리어 우먼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TV에 나오는 그런 멋진 커리어우먼. 남자들이 가득한 회의실에서 큰소리 땅땅치고 또 때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타의 모범이 되는 그런 장면의 커리어우먼을 꿈꿨다.


그러나 그 꿈은 약 4개월 정도부터 슬슬 깨지기 시작했고 6개월엔 완전히 깨졌다.

나는 회사에서 오래 남아 인정받기에는 자질이 매우 부족했고 그 뿐만이 아니라, 이건 더 중요한 사실인데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세상엔 해보고 싶은 것 투성이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진짜 해보면 간혹 정말로 내가 원한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되는 때가 온다.


진짜 내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좋은 대학 나와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뭐든 하면 열심히 하고, 1등을 목표로 해라.


이것이 전형적인 '능력주의 (Meritocracy)' 사회에서 내게 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Meritocracy라는 영어 단어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meritocracy라는 단어는 merit + -acy 로 구성되어있다. '-acy'는 'rule' 또는 'power' 를 뜻하는 접미사이다.


merit은 우리가 한국어로도 많이 쓰는 '메리트'이다. '가치', '장점'이라는 단어 이상의 조금 구체적인 해석으로 'The quality of being particularly good or worthy, especially so as to deserve praise or reward.' (특별히 좋거나 가치있는 것의 자질 - 특히 칭송 또는 보상을 받을만큼의 것들)


영국에서는 이 단어를 우수한 평점(성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사고과나 근무 평점을 merit rating이라고 부르고 임용 또는 승진등의 실적제를 merit system이라 쓴다.


위의 해석처럼 메리토크라시는 출신이나 가문, 집안보다는 오직 자신만의 역량만으로 사회에서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듣기에는 꽤 정당한 사회 시스템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사회의 상당부분이 대를 이어 세습이 되고, 확고한 계층 시스템 안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메리토크라시는 이를 실력과 능력의 인재채용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인정받을 수 있게하는 혁신적인 사회체계였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이 있으니, meritocracy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그 큰 이유에는 'merit'라는 뜻이 불분명한 것에 첫번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메리트의 정의는 사람들에 따라 주관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객과적으로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이것을 측정하는 것에 대한 모호함에 있다. 예를 들어, 회사라는 곳에서 만든 merit system (실적제)는 회사에서 만든 'merit'으로 평가하고 그것으로 한 직원의 가치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평가하는 고위층의 사람에 의해 'arbitrary (임의적으로, 제멋대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회사 뿐만이 아닌 학교, 정부, 공공기관 등 어디든 적용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호한 'merit'에 우리를 맡기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메리토크라시에 너무 젖어들면 이런식으로 사고하게된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수 있어. 내가 성공한다면, 내가 살을 더 뺀다면, 자기 개선 방법을 따른다면, 성취감이 따라올꺼야.'


모든 것이 개인적이 된다. 자기중심적이 되고 자기 성취적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미션을 가진채 첫번째 산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산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일자리를 갖고 그곳에서의 'merit'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 평가받고 살아남는다.


그런데 이렇게 한 후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작 자신이 생각하는 'merit'는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채 달려왔으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1년이라는 짧은 재취업시간에 나는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었고 글도 많이 썼다. 사실 글을 쓴 이유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 - 내가 여기서 뭘하는 거지? 부터 시작해서 업무에 대한 불만족, 부당한 메리트 시스템, 다양한 자잘자잘한 불만, 진정한 리더의 부재, 워킹맘으로써의 피곤함 등... 안쓰고는 못배길 정도로 괴로웠기 때문에 썼다.


과거엔 모든 문제가 다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이번엔 정말로 내가 불만족스러운 그 본질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독서와 글쓰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 내 의견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시작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을 건의하기도했다. 그러나 그다지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뇌의 시간을 책과 함께 했다. 당시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던 곳에 있던 서점은 나에게 정서순화의 장소였고 고민과 때를 벗고 리셋하여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갈수 있게 하는 나름의 '목욕탕' 같은 장소가 되었다. 점심시간이고 퇴근 후고 잠시라도 들렀다.


어느순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확고해졌다.

과거에 아이들만 육아했을 때는 '회사' '직업'이라는 것 없이 단지 애 엄마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웠는데 분명 달라졌다.


나에게 'merit' 없는 직업을 가진 것보다
그냥(just) 엄마가 낫다  



그렇게 1년의 육아휴직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merit'를 다시 하나하나씩 확립하기 시작했다.

정말 다시 태어난 때라고 본다.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나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냥 나여도 괜찮아'

'회사부적응자여도 괜찮아'

'아무것도 안해도돼'

'백수여도 돼'

'아니다 나는 적어도 엄마다'

'엄마를 기다려준 아이들아 고맙다'

'그냥 1년 신나게 놀아보자'

'뭘 하려고하지 말자'


이것을 바탕으로 나는 최고의 1년을 보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상당히 많이 이뤘다. 그 중 몇가지는 '발리에서 요가하기, 요리수업 듣기, 아이들과 온전한 하루를 보내는 Fun Tuesday 보내기, 책 미친듯이 읽기'가 있었다. 모두 진짜로 해봤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건지 인생 처음 알게되었다. 가야할 학교도, 가야할 회사도, 집에 있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나를 괴롭히는 자괴감, 자격지심도 없었다.


이것은 그냥 happy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더없는 행복 - bliss였다.


얼마나 bliss 기간이었는지 친정엄마가 친구에게 '얘 미국에서 컬럼비아 나왔는데 애들보고 집에서 놀아요' 라고 농담으로 말씀하셔도 웃고 넘어갔다. '그래 엄마 나 놀아. 그리고 괜찮아' :)



그런데 나는 육아휴직동안 나의 abandoned dream이 다시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영어북클럽.

이제 몇년전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북클럽의 merit를 알아볼수 있는 내가 되었다.
나는 온라인으로 1000명 이상의 이웃을 가진 블로거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게 나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는지 알았다.
그 기쁨은 엄청난 merit이다.


그렇게 회사에는 사표를 쓰고 내 인생 2막을 시작하게된다. 영어책이라는 친구와.



p.s. 능력주의에 대해서는 알랭드보통의 <불안> 에서 아주 잘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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