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 치유의 시작
근 3년째 영어북클럽을 업으로 살고 있다.
따로 영어선생님도 아니고 그저 영어원서로 성인대상으로만 하고 있다.
항상 해오던 것처럼 해왔는데 3년차가 되니 북클럽 외에 다른 기회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이 영어북클럽도 재정비해야하는 시간이 왔다. 그래서 잠시 멈춰섰다. 내가 이 영어북클럽을 하는 이유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마치 여지껏 우물의 윗쪽의 물만 떠서 썼다면, 이제는 건드리지 않은 깊은 쪽의 물을 떠 볼 시간이 된 것이다. 그 깊은 물을 떠서 그 물에 비친 내 모습에 대고 다음은 어떻게 하는게 좋냐고 묻고 싶은 것 마냥.
사람은 결국 자신을 위해 일을 한다.
나에게 의미있고 나에게 필요한 보상을 주는 일을 하게된다.
나의 영어북클럽 시작도 그랬다.
철저히 나의 필요에 의해 시작하였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원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믿어왔던, 어쩌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가 컸던 한 여성의 자신감이 한꺼풀 한꺼풀씩 벗겨져서 결국은 발가벗은 상태가 된 때가 있었다.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나의 결혼, 임신, 첫아이 출산, 둘째아이 임신의 시기와 겹쳤지만 이 시기때문에 내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고 터질 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시기가 겹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에 나에겐 '임신, 출산, 육아'를 핑계로 세상에서 숨어있을 명분을 주었다. 그렇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자신에 대한 이해없이 남들의 시선에 맞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언제고 겪어야 할 시기였다.
그 발가벗겨진 상태에서 상당히 오래 고통하고 신음하였으나 어느순간부터는 내 몸을 추스리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2014년의 그 날이 기억난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뒤뚱거리는 몸으로 첫째를 어린이집으로 내려주고 집 옆의 도서관을 가는 그 길을 걸어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책은 필요에 의해 읽는 전공서적, 교과서, 잡지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도서관에 발을 들인 뒤,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중 상당수는 고전이었다. 책을 다 읽고나면 그 전부터 나의 감정을 토해냈던 비공개 블로그에 나만의 리뷰를 썼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그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 시기에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치유되었다. 그렇다. '치유'라는 단어는 이럴때 쓰는게 맞는 것 같다.
숨고싶을 정도로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내 자신을 책을 통해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 치유의 시간은 고통하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었다. 회복력이 탄력을 받은 것이다. 어느정도가 되는 시점에서는 책을 리뷰하는데서 끝내지 않고 이 책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 당시 나를 살리게 되는 또 하나의 큰 발견을 하게된다. 멋드려져 보이는 아이비리그 학위 빼곤 아무것도 없다고 믿어왔던 나에게서 뜻밖의 가능성을 알게된 것이었다. 내가 영어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번역서로 고전을 읽다가 어느날 우연히 원서로, 저자의 원문으로 읽게된 그 날이 떠오른다. 저자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던 그 날. 저자가 알맹이 그 자체를 내 손에 쥐워주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된 그 날. 내 마음은 콩닥콩닥 거렸다. 내가 무언가를 할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하나만으로 활력을 얻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기분이 잠시 좋아진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내 속 안에서 끌어져나온 삶에 대한 긍정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파트 게시판에 붙일 전단지를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