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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안녕 Dec 29. 2021

멀미

길에서 내리다



“엄마, 얘 생리하나 봐.”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기실의 시선들이 개를 향했다가 이내 묽은 피 한 방울이 떨어진 시트로 쏠렸다. 새하얗고 긴 털로 뒤덮인 상체와 달리 개의 엉덩이 주변은 부스럼으로 벗겨진 살갗이 드러나 있었다.

내 옆자리 청년은 무릎 위의 갈색 개를 일행인듯한 또래 남자와 번갈아 쓰다듬으며 개의 생리에 대해 나지막이 주고받았다.

귀해 보이는 개인데도 피부병으로 엉망이 될 수 있다니 나는 뜬금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저러다 팔뚝에 피가 묻지 않으려나 하는 실없는 우려까지 하느라 잠깐이나마 내 발치 케이지 안에  있는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물 병원 대기실은 토요일 오후답게 붐볐다. 접수 후 20분쯤 지났지만 앞으로도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앞서 들렀던 동물병원은 앉을자리조차 없었고, 두 시간 남짓 기다려야 한다는 직원의 말에 접수만 해두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하필 토요일이라니.


출입구 쪽이 웅성거렸다. 건장한 청년이 자기 몸집만 한 알래스칸 말라뮤트를 데리고 들어서자 낮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진 거였다. 그 개는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꼬리를 가랑이 사이로 감추며 주인의 곁에 붙어 낑낑거렸다. 청년과 같이 들어온 중년 남자는 개에게서 몇 발짝 떨어진 채 겸연쩍음과 자랑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짐짓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대기실의 방문객 무리들 사이에서 케이지 안에 갇혀 있거나 주인의 손길에서 떨어져 있는 동물은 없었다. 오직 내가 데려온 녀석만 줄곧 앓는 소리를 내며 좁은 케이지 안을 맴돌았다. 나는 주변 눈치가 보여 결국 녀석을 꺼내 무릎에 앉혔다. 제대로 품 안에 안아 본 건 처음이었다. 낑낑거림도 멈추었다.

갑자기 옆자리 청년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목을 길게 빼고 녀석에게 관심을 보였다. 내게든 녀석에게든 금방이라도 말을 붙일 태세였다.


이 개는 유기견이에요. 그저께 깜깜한 시골길 차도를 달리고 있는 차를 향해 갑자기 뛰어들었어요. 하마터면 칠 뻔했지 뭐예요. 차를 세우고 문을 열었더니 순식간에 제 차에 올라타려고 했어요. 누가 버린 게 분명해요. 이렇게 작은 것을... 진짜 순해요. 한 번도 짖은 적이 없고 대소변도 잘 가려요. 말도 잘 들어서 앉으라면 앉고 기다리라면 진짜 얌전히 있더라고요. 사실 처음 얠 봤을 때는 엉망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털이 잡아 뜯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땐 오물이랑 마구 엉켜 있어서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내가 직접 깎아 준 거예요. 더럽기도 하고 계속 긁어 대서 목욕을 두 번이나 시켰어요. 그래도 밤새 긁더라고요. 보세요. 온몸에 피부병이 심하죠? 혹시 잃어버린 개를 찾는 소식이 있을까 봐 마을에 수소문은 해뒀는데, 분명 시골에서 키우던 개는 아닐 거예요. 누가 버린 거겠죠. 하는 수 없이 큰맘 먹고 병원에 데려왔어요. 간단한 진찰이랑 피부 치료도 해주고, 얘가 몇 살인지, 병은 없는지 알아봐야겠더라고요. 그래야 누군가에게라도 입양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저는 못 길러요. 저는 이렇게 작은 개는, 집 안에서 살아야 되는 개는... 키울 자신이, 아니 그럴 조건도 못 돼요. 그렇지만 결국 아무도 안 데려가면... 유기견 센터에 신고하려고요. 그다음은 뭐 어떻게 되겠지요. 너무 불쌍하지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녀석을 한동안 뚫어져라 보던 청년은 내게도, 녀석에게도, 말 한마디 걸지 않고 기울였던 몸을 거두었다. 준비된 말을 입 속으로 추스르던 나는 안도했다. 어쩌면 그가 실제로 말을 붙여왔다 해도 그저 얼떨떨한 미소로만 응대했을지 모른다.


후텁지근한 실내 공기와 하염없을 것 같은 대기 시간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녀석의 정수리를 검지로 건성건성 긁는데 무언가 걸렸다. 고양이의 몸을 만지다 보면 가끔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진드기였다.

아, 그래서 긁어댔구나. 이걸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엄지와 검지로 뽑아낸 불그스름한 진드기 한 마리를 휴지로 감싸 터뜨렸다. 그렇게 가슴과 귀 뒤쪽까지 네 마리의 진드기를 잡아 죽였다.

지난 이틀 내내 짧은 뒷발로 제 몸을 긁어대는 걸 보고도, 목욕을 두 번이나 시키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거였다. 젖은 몸을 닦아 주면서도 녀석을 품에 바짝 당겨 안아주지 않았다. 벼룩이나 진드기가 있을까 봐, 피부병이 옮을까 봐, 행여 남은 오물이 내 몸에 묻을까 봐,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무엇보다, 씻기고 씻겨도 녀석의 어느 구석에선지 배어 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나는 견딜 수 없었다.

피를 빨아먹던 진드기를 떼어내서인지 녀석은 내 무릎에서 편안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잡다한 생각을 멀리 보내버리고 녀석처럼 눈을 감았다.


얼마쯤 지나 문득 내 얼굴로 향한 시선과 목소리가 느껴졌다. 눈을 뜨니 진료실 문 앞에 서서 무언가를 반복해 말하는 직원의 입술이 보였다.

아, 녀석을 부르는 소리였구나. 방울이. 접수대에서 엉겁결에 떠올리고 적은 이름.

     

“유기견이에요. 어쩌죠. 너무 가려워하니까, 피부병이 있는 것 같아서 급한 치료라도 하려고요. 나이는 몇 살인지, 암컷인지, 특별한 병은 없는지도 알아야겠고...”


나는 녀석만큼이나 불쌍해 보이는 눈빛을 수의사에게 던지려 애썼다.


처치실로 녀석을 안고 들어갔던 수의사는 몇 분 뒤 혼자 나왔다.

"아니, 여길 보셔야죠! 자꾸 제 입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리려고 사진까지 찍어서 이렇게 보여드리는데 왜 제 입만 보시냐고요."

 모니터를 통해 녀석의 몸 곳곳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던 수의사는 입가를 삐죽거리며 타박했다. 어리둥절했던 나는 울컥했지만 얼떨결에 의사에게 사과하고 이내 후회했다.


육안으로는 중성화 수술 여부가 확인 안 되는 암컷이고, 이빨은 많이 빠지고 썩어서 냄새가 심한 걸로 보아 여덟 살에서 열 살쯤 먹었을 것이며, 배에 혹이 다수 잡히는 것을 봐서는 유방암일 가능성이 크며, 염증이 심해 군데군데 털이 빠진 피부는 재생이 어려우며, 귓속 상태가 매우 나쁘고, 백내장이 있는 듯하고, 만약 바깥에서 살았다면 심장사상충에 걸렸을 게 분명하고, 몸에 진드기가 달라붙어 있는 몰티즈종의 개....

녀석은 그렇게 진단되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작고, 온순하고, 겁이 많고, 사람을 잘 따르고, 잘 짖지 않고, 대소변 훈련이 되어 있고, 같은 종이 대부분 그렇듯 크고, 맑고, 착해 보이는 눈을 가진, 지금은 병들고 버려져 볼품없는, 개인... 거였다.


나는 엊그제 길에서 거둔 유기견이라고 다시 알렸다. 의사는 미심쩍어하는 노골적인 눈빛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재차, 유기견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냐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고 나는 거둘 수 있는 사정이 안 된다고, 구원을 바란다는 목소리로 간절히 매달렸다.


시청에 신고하면 유기견센터에 등록이 될 것이며 주인을 찾는 공지가 날 것이라고, 수의사는 처음은 아닌 듯 심드렁하게 읊었다.

잠시 주저하던 나는 병원비는 얼마쯤 나오겠냐고 입을 뗐다. 진료비와 2주 치 피부약과 구강 청소비 그리고 심장사상충 검사비와 노령견 사료값에 피부영양제를 포함한 총비용 19만 원이 청구될 것이라고 수의사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말했다.

나는 지불 비용으로 뻗어가는 항목을 황급히 머릿속으로 가지치기했다. 그리고는 제법 단호하게 사료와 피부영양제는 사지 않겠다고 수의사에게 말했다. (물론 이 결정에 담긴 나의 난감함을 그가 읽어주길 바랐지만, 행여 왜냐는 물음이 돌아올까 봐 드는 조바심은 묻어나지 않길 바랐다.)


그 비용을 빼면 12만 원이 들 거라고 수의사는 다시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아직도 내 입장에서는 전정이 필요한 가지는 남아있었다.

“저어... 만약 심장사상충 검사를 해서 혹시라도 그 병에 걸렸을 경우에 치료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아, 그걸 지금 어떻게 일일이 설명을 드릴 수가 있겠어요. 이게 워낙 복잡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지금 대기 손님도 많은데 손님 한 분 붙잡고 전부 다 설명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건 검사 후에 결과를 보고 나서...”

“아, 그렇지요. 지금은... 예, 그렇지요...”

수의사의 짜증 섞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머리까지 주억거렸다. 곧바로 비굴하기까지 한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져 '나도 돈을 제법 많이 써야 하는 고객'인데 하는 억울함과 더불어 가벼운 분노가 일었다. 내겐 이를 앙다물고 뱉어야 할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사상충 검사는 받지 않을게요.”


강권이라도 당할까 염려되어 정말이지 야무지게 선언하듯 말했다.

싱겁게도 수의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심장사상충 검사비 3만 원을 뺀 비용을 다시 정리해 통보해주고는 처치실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멀거니 앉아있던 나는 슬로모션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생각을 간명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만일 녀석을 며칠이라도 더 데리고 있게 된다면 가는 길에 동네 마트에서 용량이 제일 적은 5 킬로그램짜리 사료를 사야 하지 않을까. 아니, 일단 집에 있는 고양이 사료를 먹여도 되겠지. 그래도 참치캔이라도 사서 영양식으로 줘야 하나. 아, 어쨌거나 이제는 병든 녀석을 어디로도 입양시키긴 글렀겠네. 내가 어쩌자고 피부병 연고를 2주 치나 달라고 했을까. 그렇게 길게 데리고 있을 것도 아니면서...


어차피 어떤 것도 결정할 계획이나 의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의자에서는 무엇이든 반드시 고민하는 상태로 앉아  있어야만 될 것 같아, 생각을 멈출 수도 없었다.


사료와 피부영양제와 심장사상충 검사비가 빠진 9만 2천 원을 결제하고 2주 치 약이 든 봉투를 받았다. 죄지은 사람이 받아야 할 시선이 내게로 쏠리고 있는 듯 해 나는 뜬금없는 억울함과 부끄러움에 이를 앙 물었다. 동물 병원 밖으로 서둘러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출렁거리는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녀석이 다시 낑낑댔다. 나는 승용차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집에 가자."     


집으로 향하는 길은 여느 때보다 더 굽고 멀었다. 눈시울이 연신 후끈거리고 목구멍엔 콩알 하나가 박힌 듯 침을 삼키기조차 불편했다.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와 뜬금없는 비극적 감정에 휩싸여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거칠게 밟으며 굽은 산길로 차를 몰았다.


어리고 건강한 개였다면 거두어 키우고, 병이라도 들었으면 매정하게 내버릴 사람처럼 나를 보았을 거라 생각하니 억울했다. 일단 4일 치 피부약을 처방할 테니 다시 오라던 수의사 말에 나도 모르게 내 눈빛은 몹시 흔들렸을 것이다. 아주 먼 골에 사는 터라 자주 오기 힘들다며 2주 치를 한꺼번에 달라고 말했을 때 나를 보던 그의 눈빛이 생생히 떠올랐다.


감귤보다 더 조그마한 입속을 순식간에 청소하고 9만 원이 넘게 돈을 받아 처먹는 나쁜 놈이라니.... 돈 밖에 모르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고, 동물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 감히 수의사를 하고 있다니. 애타는 얼굴로, 안쓰러운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하는데 내 속내를 마치 신이라도 된 냥 다 들여다봤다는 듯 건방진 눈빛을 보내던 작자...


다시는, 다시는 그놈의 병원에 가나 봐라.


익숙할 법도 한데, 호수를 끼고 굽이굽이 도는 산길은 끝날 것 같지 않다. 어느새 수의사를 향한 적의로 맹렬하게 치닫던 마음은 녀석을 찻길에 버린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를 향해 새 과녁을 세웠다.


이 어리고 약한 것을 깜깜한 도로 한가운데 내팽개치고 달아난 몰인정하고 참으로 몹쓸 놈...


화살은 시위에서 몇 발짝 벗어나지 못하고 집중은 무너졌다. 한 때 녀석의 주인이었을 한 인간에 대해 간밤에 내 멋대로 창작해 낸 몇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라 초점을 흩트 때문이었다.


십 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개를 어쩌다 잃어버려 슬픔에 잠겨 있을 한 노인이 있다. 어느 으슥한 골목을 헤매는 녀석을 거두는 누군가의 손길도 있다. 순간적 호기심으로 집에 데려갔지만 늙고 병든 개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얼마간 고민하다 결국 인적이 드문 시골길  한 편에 녀석을 내려놓는다.

아, 아니다.

혼자 사는 청년이 있다. 수 해 동안 녀석과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절박한 사정이 발생했다. 녀석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 가급적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 녀석을 유기한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왜!

  

나는 유기견의 주인이었을, 만난 적 없는 그 누군가를 애써 포장하느라 여념 없었다. 각기 다른 사연의 인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냈지만, 도무지 그들을 절대적인 악인으로 완성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도 곧,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될 거라 생각했다.


멀미는 녀석과 나에게 공평하게 주는 벌과 같았다.

케이지 안에 갇힌 녀석은 줄곧 앓는 소리를 지르며 내 거친 운전에 저항했다. 나는 이유도 근거도 추론하지 못한 채 녀석과 나를 향해 치닫는 울화를 난폭한 핸들링으로라도 다스려야만 했다. 속은 울렁거렸지만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를 토해낼 배짱도 없었다. 이건 그저 멀미일 뿐이었다.


병원을 가기 전만 해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키우던 몰티즈종 개를 몇 해 전에 잃어버린 적 있는 인근 마을의 친구가 내 다급한 사정을 전화로 듣고 녀석을 맡을지 고민해보겠다는 의사를 전날에 내비쳤었다. 하지만 늙고 병든 개라는 새로운 정보까지 취득한 후에 짐처럼 떠맡길 염치는 없었다. 병원을 찾아가서 녀석의 신체를 진료하지만 않았어도 입양 가능성은 열려 있었을지 모른다. 이미 문은 닫혔고, 굳건히 잠겼다.

 

녀석이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피부병이 몸의 절반을 잠식하지 않았더라면,

가슴 쪽 살갗 속에 그 많은 멍울들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입에 고인 역한 냄새가 사그라들 기미가 있었더라면...

아니, 긁든 말든 냄새가 나든 말든, 그럴듯하게 단장시켜 녀석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순하고 맑은 눈빛'으로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해 두고, 보송한 털의 감촉에 깜빡 넋을 놓을 때 그 품으로 훌쩍 떠맡기고 나 몰라라 줄행랑칠 수 있다면...

  

집으로 돌아와 나는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시청 직원은 관할 유기동물보호센터를 연결해 주었다. 내 연배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도심지 도로변인 듯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 웅성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딸려왔다. 나는 마치 내 몫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인지 가늠하려고 저 너머 수신자의 목소리를 샅샅이 살폈다.

담당자는 발견자가 현재 보호 중이라면 내일 차량을 보내 바로 인계받겠다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매달리듯 폰을 쥐어잡고, 내 절박함이 묻어나길 바라며 질문을 던졌다. 이후 어떻게 처리되냐고, 주인을 찾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냐고.

담당자는 담담하고 거침없이 덧붙였다. 보호소로 들어온 유기견은 사진과 특징을 게재해서 열흘간 홈페이지에 올려둘 거라 했다. 싱거울 정도로 간편한 절차였다.

통화 말미에 나는 끝내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거나 입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았다.


“그 개는 아마 아무도 안 찾아갈 거예요. 버려진 게 분명하잖아요. 사실 그런 개보다 예쁘고 건강한 애들도 여기 아주 많아요. 걔네들도 다 비슷한 처지예요.”


“그래서 만일 안 찾아가면...”

“안락사죠.”

나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으나마나 한 질문을 하였고, 직원은 편치 않은 뉘앙스를 알아주길 바라는 듯 답했다.


녀석에게 적용시킬 '안락함'이란 녀석을 버린 주인이나 녀석을 떠맡은 기관에게는 마땅히 차용 가능한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물론 그 안락함의 최대 수혜자는 내가 될 게 분명했다.

전화를 끊은 후부터 나는 급속도로 담담해졌고, 여느 때보다 차분해졌다. 해질 무렵이 되자 닭과 고양이들을 거두고 녀석에게도 고양이 사료를 한 줌 주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사 온 참치캔은 따지 않았다.


최후의 만찬 인양 선심 쓰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맛있게 먹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녀석과의 세 번째 밤이자 마지막 밤이다. 나는 소파에서 자기로 했다.

첫날 녀석과 함께 보내야 했던 그저께 밤에는 아래층 거실에 녀석의 자리를 깔아 주고 나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녀석이 따라오지 못하게 문이 없는 다락 계단에 플라스틱 통과 쟁반 따위로 바리케이드를 쳐두었다. 녀석의 짧은 다리는 장애물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밤새 불안하게 쉴 새 없이 떠도는 발소리와 신경을 긁는 신음소리로 흥건한 밤을 들썩이며 지새웠다.

 

며칠을 밭일하며 입었던 흙때 묻은 내 앞치마는 녀석이 유일하게 스스로 선택해 차지한, 자신의 자리였다. 


녀석과 내가 잠들지 못한 밤은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깊은 잠이 절실했다. 잠자리에 들다 말고 나는 다락에서 내려와 결국 소파 아래 바닥에 앞치마를 깔았다.

녀석이 처음 온 날부터 현관 쪽에 무릎담요를 깔아 두고 사료와 물을 두었지만, 녀석은 이틀 동안 내가 앉은 의자 주변만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 틈에 의자에 걸쳐둔 앞치마가 바닥에 떨어지자 그 위에 옹크려 줄곧 내 발치를 지켜왔던 거였다.


같은 공간 다른 높이에 녀석과 나는 잠자리를 펴고 나란히 누웠다.


나는 소파, 녀석은 소파 밑바닥의 앞치마. 녀석 곁을 지킨다고 내 부족한 잠을 메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뒤척거림과 한숨 섞인 숨소리가 어쩌면 녀석에게는 안정제가 될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밤사이 녀석은 다섯 번쯤 깨어나 기척을 했고, 그때마다 나는 소파에서 늘어뜨린 검지로 녀석의 머리를 두세 번 긁어주었다. 그러면 녀석은 내가 누운 소파에 앞발을 기대어 두 발로 선채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가 일으키는 바람의 기운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여차하면 내 품으로 뛰어들 기세였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아 쉿 하며 경고음을 던지고 녀석을 등져 모로 누웠다. 돌아다봐주길 기다리는 시선이 뒤통수에 머무는 동안, 나는 녀석을 보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뒤져 아귀를 맞추느라 어지러운 밤을 또 지새웠다.


녀석을 처음 발견하고 차에 태우는 순간에도 내가 키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우리 가족이 8년간 키운 두 마리 개가 작년에 몇 개월 차를 두어 병으로 죽었고 가운데 마당에 차례로 묻혔다. 덩치 큰 두 마리 암캐들을 돌보던 일은 내게 버거운 시간이었다. 개들의 연이은 죽음에 죄책감마저 파묻기엔 시간이 아직도 충분히 흐르지 않았다.

나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었다. 주인을 향한 한량없는 갈구의 눈빛을 두 번 다시 감당하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두 번째 개를 떠나보낸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낯익은 눈빛으로 내 앞에 등장한 이 녀석에게 나는 결단코 어떤 감정도 섞고 싶지 않았다.


녀석은 어둡고 위험한 시골 찻길에 버려져 있었고,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호소했다.


서행하는 내 차를 필사적으로 쫓아오는 사이드미러 속 녀석은 결국 차를 돌려세웠고, 문을 열게 했다. 물론 선택은 내 몫이었다. 나는 녀석보다 주변을 먼저 살폈다. 근처에 주인이 있을 거야. 녀석이 운전석으로 뛰어오르려고 할 때 돌봄을 받았던 임을 직감했고, 돌봄을 주었던 이가 근처에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녀석을 엉거주춤 들고 옅은 불빛이 새어 나는 정류장 아랫집을 기웃거릴 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을 기대했다. 혹시라도 익숙한 길일까 하여 땅바닥에 내려놓았지만, 녀석은 주변 세상을 두려워하며 오로지, 처음 만난, 나만, 내 눈만 쳐다보았다. 그럴수록 마을의 불빛은 더 멀찌감치 물러서며 빛났고, 나와 녀석은 목적지를 상실해 허둥거렸다.


정말이지, 나는 그때 녀석을 길 잃은 어린아이와 동일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녀석에게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란히 누운 밤 내 이불속 꿈자리는 굽은 길을 내처 달리듯 밤새 휘청거렸다. 설친 잠은 동이 트고서야 까무룩 들 수 있었는데, 그마저 이른 아침 요란한 휴대폰 벨 소리에 흔들려 깨어났다. 폰 속 낯선 번호는 창밖으로 내려다 뵈는 아래 마당에 진입해 있는 트럭에서 걸려온 전화임이 분명했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는지 녀석은 몸을 추스르는 내 곁에서 연신 꼬리를 흔들며 맴맴 돌고 있었다.

      

"이거 아주머니 키우시던 개 아니에요?"


유기견센터의 수거 트럭에서 내린 오십 대 후반으로 뵈는 남자가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가파른 돌계단을 채 내려가기 전이었고, 그와 눈도 마주치기 전이었다. 그는 의심을 넘어선 내심 확신에 찬 어투로 물었다. 아니,  물었다기보다 외쳤다.

내 곁에 바짝 붙어 돌계단을 내려가던 녀석이 남자를 보며 딸랑거리는 꼬리로 대신 응답했다. 나는 그에게 목례만 건네고 그 말에 대꾸는 하지 않았다. 내가 못 들어서 답이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끝내 대답을 듣고자 해서인지 남자는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전히 목소리에는 무어라도 벨 것 같은 날이 삐져나왔다.


나는 그 말에 한 번 더, 대꾸하지 않았다.


건네받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녀석은 남자의 손에 달랑 들려 트럭 짐칸에 놓인 여러 개의 비어있는 커다란 케이지 중 한 곳에 갇혔다. 녀석은 그제야 악을 쓰듯 날카롭게 짖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서 내가 화장실에 가며 로비에 둔 케이지 안에서 난생처음인 듯 소리 내어 짖은 이후, 두 번째 울음이었다.


“좋은 것만 쓰세요. 그런 거 기록으로 남으면 아무도 안 데려가요.”


발견 당시의 특징 기재란에 무심코 쓴 ‘피부 부스럼이 심함’은 남자의 제지로 수정했다.

‘8살가량의 흰색 몰티즈 암컷. 대소변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온순하여 사람을 잘 따름.’

작성한 서류는 2주 치 피부약이 든 봉투와 함께 건넸다. 남자는 약봉투를 아주 잠깐 뜨악해하다 말없이 받았다. 나는 빳빳해진 턱을 까딱 내리는 걸로 내 역할에 마침표를 찍었고, 녀석의 비명 같은 짖음은 멈추지 않았다.


시한부 삶을 또 다른 낯선 곳에서 시작하기 위해 떠나는 녀석에게 나는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고 돌아섰다.

차 시동이 걸리기도 전에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순간의 이명처럼 녀석의 목소리는 이내 사라졌지만, 동구 밖으로 멀어져 가는 트럭 소리는 생생히 귓바퀴를 맴돌고 있었다. 감은 눈으로도 굽은 언덕을 오르는 트럭의 출렁거리는 뒤꽁무니가 보였다. 울렁거린다. 괜찮다.


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이내 잦아들 멀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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