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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Feb 03. 2023

캠핑 가고 싶다.

작년 이맘때 매주 주말이면 캠핑장에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스쳐 지나가는 무시무시한 냉기를 뿜는 한파가 찾아와도, 유라시아 대륙에는 큰 규모의 고기압이 형성되고 알류샨 부근에는 큰 저기압의 발달하는 기압 배치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산 주식만 떨어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아들과 둘이 열심히 캠핑을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올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캠핑을 가고 싶다는 아들의 간절한 부탁으로 크리스마스 때 딱 한 번 다녀왔습니다. 캠핑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저와 아들의 캠핑에 대한 열정이 냉정하게 식은 것도 아니고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마치 제가 가진 주식같이 떨어지기만 하는 날씨에 대한 두려움도 아닌 저희 가족의 생활 패턴 변화 때문입니다. (사실 소득도 예전보다 줄어서 경제적 부담도 아주 조금 있습니다.)


바깥양반은 주말이면 몸과 마음이 더 바쁜 새로운 사업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저도 새로운 대감집의 노비 아니 회사로 이직을 했는데 아직은 회사에 잘 보이고 싶은 충성심에 주말에도 집으로 일을 가져와 하고 있습니다. (사장님 제발 이 글을 봐주십시오!) 치솟은 물가도 이제 조금은 부담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올해 10살이 된 아들은 매주 금요일이 되면 "아빠, 이번 주도 캠핑 안 가는 거야?"라고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일 핑계, 바깥양반 핑계를 대며 아이에게 캠핑을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지난주도 같은 질문을 하는 아들에게 "이번 주는 아빠가 급하게 끝내야 할 일이 있어서..."라는 핑계를 댔더니 아이가 한숨을 크게 쉬며 "아빠 그러다 나 중학생 되면 가려고? 이제 나랑 캠핑 다니기 싫은 거지?"라고 합니다. 


절대 너와 캠핑 다니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가 요즘 바빠서 그렇다는 이야기 했더니 화를 내며 "아빠는 내가 좋아? 일이 좋아?"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아이를 바라보며 "넌 그럼 아빠가 좋아? 포켓몬이 좋아? 당연히 아빠가 좋겠지. 아빠도 일보다 네가 더 좋고 소중해. 어떻게 너랑 일을 비교하겠니?"라고 했습니다. 


인자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바라보는데 이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뭔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길래 "너 설마 아빠보다 포켓몬이 더 좋은 거야?"라고 물었더니 갑자기 TV 리모컨을 찾고 물을 마신다면서 정수기 쪽으로 달려갑니다. 이 자식.. 아빠보다 삐까 삐까란 말만 하는 노란색 전기뱀장어 같은 쥐새끼를 아빠보다 더 좋아하다니..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저도 10살 때는 아빠, 엄마보다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같은 책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바깥양반은 일을 하러 나간 주말 오후, 저는 제안서의 문장을 다듬고(사장님! 제발 이 글을 봐주십시오!), 아이는 뭔가를 그리며 각자 자기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심술이 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니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말인데 일은 아이가 잠든 밤에 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 옆으로 다가가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삼삼아, 이건 목도리도마뱀이니?" 


제 질문에 아들은 경악하게 대답했습니다.


"이게 어딜 봐서 목도리도마뱀이야! 이거 이브이야 이브이!" 


아들은 제게 이브이라는 포켓몬 그림을 보여주는데, 아들이 그린 그림은 아무리 봐도 이브이가 아닌 목도리도마뱀이었습니다.


이브이와 목도리도마뱀도 구분하지 못하는 아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캠핑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삼삼아, 올해는 아빠랑 백패킹 다녀보면 어떨까? 지금처럼 날씨 추울 때는 힘들고 날씨 좀 풀리면 등산도 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잠도 자고."


"백패킹도 캠핑이야?"


"그럼 캠핑이지. 아빠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너하고 둘이 백패킹을 해보고 싶어서."


아들은 캠핑이라는 말을 듣더니 무조건 좋다고 합니다. 신나 하는 아들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아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백패킹을 떠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바깥양반이 집에 오자마자 아들은 엄마를 향해 달려가며 외칩니다.


"엄마! 아빠가 날씨 따뜻해지면 아웃백 가재!


그래.. 가자 아웃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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