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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미니 Jul 15. 2021

4-20 운수 좋은 날

투 코인 체인지


 여행하면서 정말 기분 안 좋은 날이 있었다. 몰타를 가기 위해서는 마르세유 공항에서 몰타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속 편하게 마르세유에 묵었으면 되었을 일을 많은 사람들이 마르세유가 위험하다고 해서 일정을 틀어 액상프로방스에 머물기로 했다. 어두워지기 전 마르세유를 떠나 액상프로방스로 향했다. 액상프로방스에서 내가 머물게 된 숙소의 주인은 슈퍼 호스트였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여행에서 최고의 변수가 되어 주셨다. 어쩌면 그녀랑 나는 처음부터 안 맞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정도였던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 그녀에게 나의 일정을 수시로 말해 주었고,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자신은 약속이 있어서 바쁘다며 집에 대한 사용 설명을 엄청 대충 말해주었다. 아마 가족끼리 외식 약속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집에 방 하나를 빌려 쓰는 숙소였는데 빌라 같은 구조의 가정집이었다. 그녀는 집 열쇠가 현관문 옆 화분 밑에 있다는 설명만 급히 해주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녀의 바쁜 행동에 정신을 쏙 빼놓고 있어서 다른 중요한 사항들을 물어볼 새가 없었다.


 그녀가 바쁘게 나간 집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그 집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어디선가 내가 싫어하는 향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풀향처럼 은은한 향은 좋아하지만 제삿상이 생각나는 향냄새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집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부터 별로였다. 사진으로 봤던 푸근한 하고 빈티지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붉은색이 한가득인 정신없는 집이었다. 예쁜 곳을 선택할래 아니면 깔끔한 곳을 선택할래라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깔끔한 곳을 선택하는 성격이라 아마도 처음부터 모든 것이 맞지 않은 곳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녀의 화장실 변기 위에는 식료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그녀의 집에는 온 방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상주하고 있었다.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가까이 있으면 뻘쭘하고 무서워하는 나에게 참 안 맞는 곳이었다.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할 때 즈음! 그녀의 공간에서 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액상프로방스는 어떤 곳인가 구경하고 싶어 열쇠 하나만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그녀에게 메시지로 열쇠가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만 있으면 되냐고 물어보았다. 리옹에서 만난 호스트는 정말 섬세한 분이어서 꼼꼼히 설명해 주었기에 이번에도 별일 없을 줄 알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녀가 답을 해주겠지라고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액상프로방스를 2시간 동안 구경하였다. 액상프로방스에서 유유자적 걷는 저녁 산책을 하며 숙소를 마주한 당황스러운 기분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 하지만 그녀는 그 긴 시간 동안 답이 없었다. 점점 불안해졌다. 다시 돌아온 숙소 앞.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받은 키를 대문에 넣어본다. 여행에서 불안한 느낌이 들면 그건 정말로 현실이 되어 돌아오던데 역시나 그 키는 빌라 대문에 맞지 않았다. 다 같이 사용하는 다세대 건물이니 정문 키가 따로 있겠지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이 그제야 머릿속을 때리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왠지 그녀는 내가 스스로 해결해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연락이 없을 것 같았다. 이웃 주민에게 벨을 눌러 나의 상황을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숙소 앞 정류장에 서있는 외국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번역기로 나의 상황을 설명하여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번역한 영어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여기는 프랑스다. 프랑스 사람들 중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설마!' 당황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어느 누구 하나 내가 번역한 글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머릿속을 누가 종으로 치는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발을 동동 구르자. 사람들은 처음에는 시큰둥하더니 정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 주위로 한 사람 두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자기가 영어를 할 줄 안다며 나에게 다가오신다. 정신줄을 붙잡고 다시 나의 상황을 영어로 번역해 보았다. 삼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새 다 같이 나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이해한 외국인 아주머니는 숙소 앞 초인종을 눌러 다른 이웃집 사람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나의 상황을 이해한 이웃 주민은 곧 대문을 열어 주었다. 안 열릴 것만 같았던 문이 열렸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다 큰 서른 살이 목놓아 울어버렸다. 내가 서럽게 우니 아주머니가 꼭 안아주셨다. 그 순간 품속이 참 따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꼬맹이는 엄마 얼굴, 내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보며 웃고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안심이 된 건지 다 큰 동양 여자가 우는게 조금은 안쓰러웠는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내가 집으로 들어간 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해 주는 듯했다.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훌쩍이며 올라가는데 문을 열어준 이웃 주민이 나와서 나에게 뭐라 뭐라 말한다. 나는 할 줄 아는 불어가 없어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메르시.”라고 말했다. 다시 눈물이 나와 엉엉 울면서 숙소로 들어갔다. 엄청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니 순간 당황했었나 보다.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메시지로 그녀에게 예약 취소를 요청했다. 위의 모든 상황을 글로 써서 보냈다. 몇 시간 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술에 취한 그녀는 잠들랑 말랑한 나를 문 앞으로 불러냈다. 그러더니 공동으로 쓰는 열쇠를 어디다 뒀냐며 따져 물어본다. 나는 화분을 들춰서 그 밑에 있다고 보여 주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그녀는 밤새 그녀의 딸이랑 싸웠다. 그들은 한 시간 넘게 서로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가뜩이나 오지 않는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공용으로 쓰는 열쇠를 화분 밑 중간에 놔두었는데, 술 드시고 찾지 못했나 보다. 그녀랑 나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곳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옆방에서는 시끄러운 tv 소리가 아침까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취소 요청하는 나의 메세지를 무시한 채 아침에 티를 마실 거냐 커피를 마실 거냐는 답만 보내왔다. 그녀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아침에 조용히 캐리어를 들고 나가버렸다. 캐리어를 끌면 그 소리에 얼굴을 내밀며 말을 걸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는 역으로 향했다. '원래 가고 싶었던 까시스를 향해 가는 거야!' 역시나 빙구 요정은 표 끊는 방법을 몰라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본다. 그 사이 기차 하나를 놓쳤지만 정신 차리고 끔찍했던 숙소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다. 사람들이 예쁘다던 액상프로방스를 온전히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얼른 까시스로 가서 바다나 보고 싶었다. 가자 까시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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