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살바도르 성당에서 장례식을 보며
세비야 대성당을 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이 필요한데 세비야 대성장 입장권을 사전에 못 구했을 경우에는 살바도르 성당의 통합권을 구하면 입장할 수 있는 꼼수(?)가 있다고 하여 아침 일찍 살바도르 대성당으로 향했다.
30여 년을 출근과 퇴근을 반복한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여행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나가서 여행지를 둘러보다가 거의 퇴근 시간이 되면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그날도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해서 10시에 성당이 열리므로 9시 30분경쯤 살바도르 성당 앞으로 향했다.
살바도르 성당이 있는 이곳은 과거 로마와 서고트족의 교회가 있던 곳이었고 이슬람 점령 후에는 모스크가 세워지고 다시 세비야가 카톨릭 왕국에 속하면서 성당이 된 곳으로 이 지역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모스크, 성당 등으로 바뀜을 반복한 곳이었고 그래서 성당 지하에는 이슬람 유적을 볼 수도 있는 곳이다.
살바도르 성당 앞에는 초록빛 오렌지 나무에 오렌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상큼하고 싱그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고 핑크빛 살바도르 성당은 안갯속에서 아담하고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직 성당 문이 열릴 시간이 아닌데 성당 문은 열려있었고 성당 안에서는 무언가 행사 같은 것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밖에는 검은색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전화기의 발명가이자 ‘청각 장애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말하기를 여행이란 다른 목소리를 듣고, 다른 냄새를 맡고, 다른 맛을 맛보고, 새로운 것을 만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즉 자신에게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들의 음식을 맛보는 기회를 열어 주는 일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여행에서 이런 색다른 경험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무슨 일일까?’ 호기심에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로 가며 들여다보다가 옆에 있는 노 신사에게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나 : 성당 안에 무슨 일이 있나요?
남자 : 지금 제 친구의 장례식을 하고 있습니다.
나: 친구분의 일은 정말 안 됐네요.
남자 : 어릴 때부터 친구이고 정말 좋은 친구였어요.
나: 친구분의 나이가 올해..
남자 : 고향에서부터 친구인 67살의 여자입니다.
나: 많이 슬프시겠어요. 그래도 그 친구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남자 : 들어가서 사진 찍어도 돼요.
나: 장례식에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밖에서 찍어도 되나요?
남자 : 물론이죠.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장례식을 밖에서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식이 끝나갈 무렵, 사진을 찍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관이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관을 실었다. 이어서 직원이 리무진에 타자 리무진은 출발하였고 나머지 친구들과 장례식 참석자들은 서로 볼 키스를 하며 안부를 주고받더니 삼삼오오 자기 갈 길로 향했다. 아마도 그들의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 것처럼.
제 삼자인 내가 지켜보기에 그들의 장례식은 경건하게 치르되 장례식이 끝나면 다시 무심하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가끔 유럽을 여행하다 묘지를 보면 마을 귀퉁이에 묘비로 가득 찬 공동묘지가 있고 그 옆은 정원으로 꾸며 놓아서 음산한 묘지의 느낌보다는 정원 옆에서 지나간 옛사람을 추모할 수 있는 곳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 장례식 역시 식이 끝나자 간간이 안부를 묻는 낮은 웃음소리와 포옹과 볼 키스의 위로와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모습이 장례식이 일상과 분리된 것이 아닌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장례식을 보면서 느낀 생각은 우리네 삶이란 죽음과 분리된 것이 아닌 삶 옆에 죽음이 있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바라보며 오늘을 좀 더 멋지게, 알차게,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