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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또 Mar 02. 2017

잘 먹고 삽니다.

일상, 네덜란드 #7. 도대체 뭐 먹고살아?

이 곳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 자주 들으며 항상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뭐 먹고살아?"


한국에 있을 때도 이 질문이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 같은 한국인일 뿐이니 내가 무엇을 먹든, 자연스럽고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음식으로 유명한 것도 없고 심지어 서비스 비용이 비싸기로 유명한 유럽이다. 밖에서 외식이 잦지도 않을 것이고, 대체로 만들어 먹어야 할 텐데 결국은 '대체 무엇을 만들어 먹느냐'의 질문이었겠지.

신기한 점은, 이 질문이 이 곳 친구들에게도 되풀이되어 일어났다. 이 곳 친구들은 자신들도 알다시피 이 (음식이 척박한) 네덜란드에서 도대체 (아시아인인)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해했고, 참 많이들 물어봤다.

"평소에 뭐 먹고살아?"


잠시 벗어나 논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네덜란드의 식문화에 대해 이 글을 쓰려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음을 정리하고, 저 질문들에 대해 속시원히 대답하고 싶었다. 


빵과 치즈만으로도 잘 먹고 삽니다.


난 음식에 미련이 별로 없다. 물론 먹는 것은 매우 좋아하지만, 새롭고 절대적이며 최고의 맛을 가진 음식을 먹어보겠다! 하는 욕구는 그다지 없다. 브런치에서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음식 칼럼이나 사진들을 자주 보긴 하지만, 이는 별개일 뿐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과는 관련이 없을 뿐이었다. 다들 다이어트 땐 맛있는 음식 사진을 보면 먹고 싶어서 실패한다지만 나는 오히려 대리 만족을 느끼며 위로를 받고는 했고, 사진은 사진일 뿐 그 맛을 내가 직접 느끼는 것과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 다이어트가 성공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딱히 맛집을 찾아다니진 않았다. 추천받으면 가보는 정도였고, 웬만하면 예전에 가보았던 식당들 중에서 맛있던 곳으로 갔었다. 뭐, 내가 도전의식도 없고 안전주의라서 이미 먹는 것만 먹는다라는 정도로 이를 확대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굳이 새로운 음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충분히 내가 아는 음식도 먹기에 충분히 맛있었으니까.

누군가가 날 새로운 식당에 데려간다면 거부 할리도 없다. 새로운 것도 좋아하고, 이에 성공하면 기분 좋은 황홀감이 들기도 하지만, 굳이 내 노력과 의지를 비중 있게 쏟진 않았을 뿐이었다. 난 그저 새롭고 맛있는 음식에 대해선 주체적 손을 놓은 것이었다. 


요즘도 그렇다. 내 몸속에 위치한 빈 호리병을 채운다는 느낌으로, 이왕 배 채울 거 맛이 있으면 좋으므로 며칠 전에 무심코 먹었던, 맛있었던 샌드위치를 다시 구입한다. 맛있는 음식을 사랑한다. 하지만 먹는다는 행위 자체의 관심도를 고려해보았을 때, 현재로써도 충분히 만족할 뿐이다.

이왕 네덜란드에 온 거 다양하게 먹어보라는 가족, 친구들의 충고가 환청처럼 매일매일 들리지만, 따랐던 적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곳에서의 식사를 생각하면, 파스타를 만들어 먹거나 이곳에서 파는 레토르트 음식을 먹기도 하고, 나름 3대 영양소를 고려해 감자와 고기를 구워 샐러드와 같이 곁들여 먹었다. 한 번은 친구들과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샐러드가 기억에 남아, 한동안 외식을 할 땐 그곳에만 가 샐러드만 계속 먹기도 했다. 순간순간의 나를 행복하게 해줄 음식을 먹었고, 행복했다.


빵과 버터, 작은 샐러드, 고기 크로켓으로만 구성된 점심 메뉴


그런 의미에 선지, 가끔 '무엇을 먹고 사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멍해졌다. 관심이 없으니 기억도 잘 안나거니와, 특별할 것이 없었기에 대답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 친구들은 내게서 다양하고 새로운 외국 음식이 아닌 빵, 감자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워하며 날 위로해줬다. 날 신경 써주는 마음에 정말(정말 정말) 고맙기도 했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동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난 한국에서도 샌드위치만 먹었는걸. 내가 좋아하는 생과일 스무디로만 배를 채워도, 맛있게 구운 감자만 먹어도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으니까. 


그래서 그럴까, 네덜란드 식문화는 내게 참 잘 맞았다. 이런 말 이 곳 사람들이 들으면 화날 수도 있겠지만, 이 곳에선 음식에 그렇게 깊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빵 하나하나의 맛의 차이를 모른다고 비난받던, 한 식탁 위에 같은 조리법의 두 음식이 올라와 곤란해하던 프랑스와 다르다. 

보통은 맛있는 음식이 없는, 먹을 게 부족한 네덜란드로 알려져 있지만, 내겐 음식 하나하나 익숙한 듯 새로워 즐거웠다. 이렇게 다양한 감자 종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달디 단 다양한 감자요리도 좋고, 깊고 깊은 치즈와 버터도 좋았다. 검소한 생활 습관이 음식에도 반영된 듯, 간단하고 정갈했다. 


요리 자체로 넘어간다면 튀김요리가 대부분이라 굉장히 투박하고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간단한 수프에 빵과 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며 함께 먹는 친구와 대화하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복잡하지 않아 좋았다. 간소하고 검소하게, 하지만 먹는 순간을 즐기는 식문화가 참 좋았다. 

점심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을 점령할 필요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조합으로 빵과 치즈, 햄을  차곡차곡 도시락 통에 넣을 뿐이다. 가끔 맛있게 외식하고 싶을 때 먹을 만한 게 없다는 건 슬프긴 하지만, 그땐 프랑스 레스토랑을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으깬감자와 야채를 섞고, 위에 소세지를 올린 네덜란드 전통 음식 Stamppot.


그렇게 마냥 나 나름대로의 행복한 점심 샌드위치를 즐긴 지 세 달이 되었을 무렵, 그리고 한국에서의 질문도 드물어졌을 무렵, 이 곳 친구들이 내게 의외라며 새삼 말을 건넸다. 뭔가 아시안 음식을 싸올 줄 알았는데, 항상 샌드위치를 싸오는 점이 네덜란드 식단 같다면서. 퇴근 후, 주로 저녁에는, 평소에는 무엇을 먹느냐 내게 또 물어본다. 고기랑 감자를 구워 샐러드와 먹는다, 혹은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고 대답을 하면 또 이에 놀란다. 듣고 싶었던 대답이 있었던 사람들처럼.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한 적이 있는 친구 앞에서 점심 샌드위치를 꺼냈을 땐, 좀 더 상세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밥 어디 갔어? 비빔밥! 너 정말 네덜란드 사람처럼 먹는구나!"

한국에서의 "뭐 먹고살아?"의 해일을 넘기고 나니, 이젠 이 곳에서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항상 평범하게 먹는다며 말을 시작한 후, 어제 무엇을 먹었더라 굳이 떠올리며 대답을 하면 모두 일련의 동정과 신기함을 내보인다. 한쪽에선 익숙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른 쪽에선 예상치 못한 적응에 대해 신기함을 보인다. 

나는 이러한 질문과 반응들이 이 곳에서의 내 위치를 대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외에서 사는 한국인이 된 이상, 나를 대변하는 문화와 내가 존재하는 문화와의 상충이 나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다. 이 곳에서 짧게 사는 거 이왕 이방인으로써 철저히 살아주겠다 다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먹는 것 까지 사사롭게 매일매일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관심에 고맙고 성실히 대답을 해주곤 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그들이 정말 궁금했던 메시지도 따로 있을 것이다. 잘 먹고 삽니다. '전' 이 곳이 좋아요. '저'와 잘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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