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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웅 Dec 24. 2019

43살의 배꼽 찾기 프로젝트

아빠 배꼽이 없어졌다고 아들이 울었다.

"아빠! 배꼽이 없어. 배꼽 어디 갔어?"

무척이나 놀란 듯 소리를 지르고는 아빠 배꼽이 없어졌다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꼽 찾기 프로젝트(이하, '배프')가 시작되었다.



# 40, 불혹, 무시했다. 나이는 숫자일 뿐.

어느 날 아내가 다가와 내게 말했다.

"당신,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많이 불안하는 것처럼 보여."

맞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멀쩡하게 운전하다가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마흔은 나에게는 원치 않는 사고였다.

이제 아. 저. 씨.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나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다 할 수 없고.

다 하다가는 움켜쥐고 있는 것마저 스르르 빠져나갈 수 있는 나이니까 말이다.

아내의 한 마디는 억지로 잊었던 것을 꺼내 주었다.

나이 들어간다는 진리 말이다.



# 먹었다. 그러면 좀 잊혀지니까.

그래서였을까? 먹기 시작했다.

나와 친밀한 한의사님의 말씀처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길항적 관계 때문이었을까?

먹어서 도움이 된다면 그 순간의 감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먹었다. 기분이 좀 나아지니까.

문제는 계속 먹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나?

불안감은 계속 밀려오고, 답답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데 먹으면 어느 정도는 '마약'적인 효과를 낸다는 것을 몸이 알고 있었다.



# 입을 수 있는 옷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나는 '아저씨' 몸매로 급격히 진화하고 있었다.

옷방에 아주 오래전 신문 구독을 하고 받은 체중계가 있었지만, 마침 약도 다 닳았고 해서...

아직 살이 덜 찐 얼굴을 보며 안도했다.

게다가 살이 찌면 찔수록 귀여워지는 것이 젊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바보 같기도 하지... 말이다.



# 강의하러 간 날, 내 양복은 쫄쫄이가 되었다.

나는 교육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주 가끔 강의를 간다.

특별한 요청을 받아 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다. 지역에 있는 대학이라 양복을 급히 싸서 학교를 갔다.

3일짜리 강의였다.

학교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는데 들어가지를 않았다.

그러나, 내가 나이를 그냥 먹었겠나? 혹시 몰라 가져온 커다란 양복을 꺼냈다.

이럴 수가... 내 살들이 양복바지를 탈출하려고 실밥들을 있는 힘을 다해 밀어내고 있었다.

꽤 비싼 바지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오늘 강의를 할 때 쫄쫄이 양복바지 강사를 할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애석하게도...

강의는 시작되었다.

첫 날밤 커다란 양복바지를 사고 행복하게 강의를 마쳤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수현이가 울었다. 진지했다.

강의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을 씻겨줘야 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을 씻겨주려고 옷을 벗었는데...

우리 아들 수현이가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누가 때렸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한테 혼이 났는지 동생이랑 싸웠는지...

어찌할 바를 몰라 꼭 안아주었는데... 수현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ㅠㅠ"

"응, 그래 왜 왜?"

.

.

.

.

"아빠... 배꼽이 없어졌어. 엉엉"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눈물 폭포가 쏟아졌다. 서둘러 말해주었다.

"아빠 배꼽 여기 있잖아? 여기 배꼽? 울지 마~"

"아냐!! 엉엉"

"그건 배꼽이 아냐!!"

"왜? 수현아 이거 배꼽이야..."

"아냐!! 배꼽은 동그래야 해!"

"아빠... 아빠... 배꼽이 없어졌다... 엉엉..."


아무 말도 이을 수가 없었다.

살이 쪄서 한 일자로 길게 주름처럼 패인 내 배꼽은 아들 말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해야 되나 보다...

어쩔 줄 모르다가 아빠가 살이 쪄서 그렇다고 했다.

배꼽 찾아준다고 했다.

간신히 울음이 멎었다.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 배꼽 찾기의 규칙들

결국 마음에는 있었지만, 결코 실행하지 않았던.

혹은 '어줍잖게' 하고 왜 살이 안 빠졌냐고 이야기하던 필요 없는 연기가 아니라.

배꼽을 찾기 위해서 살을 빼기로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배꼽은 너무나 안 쪽에 있었다.

그 날 이후 3개월간 살을 빼기 위해 몇 가지를 지켜냈다.

1. 밥은 5분의 1로 줄여서 먹는다.

2. 계단을 사용한다.

3. 용감히 '몸무게'를 가끔 잰다.

그리고, 자주 수현이에게 배꼽이 보이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 그런데, 배꼽은 없었다.

어떻게 저 어려운 규칙을 지켜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렇든 저렇든... 나는 살을 뺐다.

계단으로 걸었다.

계속 확인받았다.

거의 15킬로가 빠졌다.

우리 딸 몸무게가 15킬로이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런데, 배꼽이 나오지 않았다.

아들 수현이와 한참을 생각했다.

"수현아, 나 살 많이 뺐지?"

"응"

"그런데... 내 배꼽은 왜 나오지 않을까?"

"그러게..."

거의 오기에 가깝게 몸무게를 뺐는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왜 내 배꼽이 보이지 않는지 깨달았다.

사실 나는 배꼽이 원래 없었다.

정확하게 설명해보자.

수현이는 타고나게 배꼽이 바깥으로 나와있지만, 내 배꼽은 원래 속으로 들어간 배꼽니다.

딱 그렇지는 않지만... 수현이는 일종의 수박 배꼽이라는 말이다.

거대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나는 지난 3개월간 무엇을 한 것인가?

수현이에게 배꼽을 보여주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되뇌었다.

"나는 수박 배꼽이 아니였다."



# 내가 찾은 것은

원래 배꼽도 없는데 살 뺀 것을 후회 할리는 없다.

누구도 그렇지 않으리라.

배꼽 프로젝트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아이들의 아빠를 향한 관심과 사랑

아이들을 향하다 발견한 나의 실행력

무엇보다

건강이 안 좋았다는 것을 찾아냈다.

살을 빼고 나니 몸이 덜 아프다.

정신도 맑다.

아내도 돕기 수월하고, 애들과도 더 즐거이 놀게 되었다.

40대가 아플 틈도 없어서...

새로운 활기도 얻었고.

다시 꿈도, 미래도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여는 힘의 동력은 나이가 아니라

방향과 실행, 건강과 몰입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운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라는 이어령 전 장관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늙어도 젊어도 같은 존재이며.

그 생명력에 대한 포용 없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배운다.

배꼽 덕택에 내 삶의 다음 단계를 찾은 것 같다.



# 찾아야지. 계속 찾아가야지.

더 많이 찾아야 산다.

찾아야 건강해진다.

배꼽도.

내가 살고 있는 생의 의미도.

내가 하고 있는 업의 가치도.

내 주위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법도.

배움도.

말이다.


# 마흔 셋. 나는 다시 찾으러 간다.

20대 동굴만 보면 금을 캐고 말겠다던 열정적 광부였던 나.

30대 딱 보면 어디서 금이 나올지 계산할 줄 알게 되며 어른 티를 내었고.

40대 함께 금을 찾아가는 법. 금이 꼭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워간다.

때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시작해야 할 것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배꼽만큼 가까이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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