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돼지에게도 주고 싶은 권리
지금은 아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약 4년 정도 채식을 했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새로운 사람과 식사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듣게 된다. ‘왜 채식을 해요?’ 그때마다 구구절절 길게 이야기할 수 없어서 ‘그냥요’ 할 때가 많았다. 건강 때문에, 알레르기 때문에, 라고 하면 그나마 말이 좀 간단해지지만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말이에요…’로 매번 분위기를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결혼을 하면서 채식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아무튼 채식을 할 때가 내 인생에서 밥 먹기 가장 피곤한 시기였다. 수많은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기도 피곤하고 안 하기도 떨떠름했다.
내가 채식을 결심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소, 돼지는 먹으면서 왜 개는 먹으면 안 돼?’ 하는 종류의 논란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왜 안 될까?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소, 돼지도 안 먹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사실 이건 소나 돼지, 개의 종족을 중심으로 논할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은 채식인들이 ‘동물을 먹는 건 야만인’이라고 생각해서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여러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죄책감과 껄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나 역시 무조건 육식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닭의 수명이 얼마인지 아시는지. 닭의 수명은 10년이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죽거나, 살아 있는 동안에도 공장식 양계장에서 빽빽하게 앉아 달걀을 생산한다. 달걀을 많이 낳아야 하기 때문에 양계장에는 밤이 오지 않는다. 닭은 밤새 불이 켜진 양계장에서 정상적인 생태에서는 낳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알을 낳게 된다. 그 닭과 달걀은 건강할까? 우리는 비정상적으로 키워지고 비정상적으로 생산된 음식을 먹고 살아간다.
동물실험도 마찬가지다. 동물실험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마스카라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토끼들이 시력을 잃는다. 토끼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투여해도 자체적으로 씻어내지 못하고, 그래서 수없이 여러 번 마스카라를 바르는 동물실험에 활용된다고 한다. 물론 동물실험이 꼭 필요한 부분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다만, 동물은 결국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동물실험이 큰 의미가 없는 과정도 있다고 들었다. 또한 굳이 동물에게 실험하지 않아도 이제는 사람들의 기술만으로 안전 여부를 찾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동물실험이 단순히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채식을 해서 우유를 안 먹는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한다. 채식과 우유가 무슨 상관이야? 문제는 젖소를 학대하다시피 우유를 생산하는 데에 있다. 송아지에게 먹이기 위해 생산되는 젖을 정작 송아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하고 격리된다. 젖소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또다시 인공수정을 하여 새끼를 낳고 젖을 생산한다. 태어난 송아지는 엄마 젖을 대신할 수 있는 화학제품을 먹고 자라다가 이내 도살된다. 소의 수명도 20년이지만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을 고통스럽게 살다가 마감해야 한다. 소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는 일단 둘째로 치고, 그럼 그렇게 강제로 만들어진 우유는 건강할까?
전문적으로 고기와 우유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성분을 얼마나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완전한 식품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왜 소와 돼지는 먹고 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개고기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납득할 만한 타당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은 틀림없이 비인간적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그 동물들에게 적합한 환경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운동이 필요한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높은 곳을 좋아하는 반려묘를 위해 캣타워를 구입하는 것처럼.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자연적인 과정을 지향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지금의 생산량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고기의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하루쯤은 고기를 안 먹어도 좋겠고, 적어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 쓰는 화장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화장품들도 많다. 고기를 덜 먹고 동물실험 없는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은, 태어난 이유를 알 틈도 없이 강제로 동물을 키우고 죽이는 빽빽한 시스템에 대한 가장 소극적이고 확실한 저항이다.
내가 노력한다고, 또 내 주변 사람들이 같이 노력해준다고 세상이 금방 달라질 리 없다. 다만 내가 키우는 동물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납득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은 하고 싶다. 그리고 나 혼자 하면 됐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권하는 일은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하는 고찰부터 시작해) 참 귀찮지만, 그 정도 귀찮음은 감수하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나의 사소한 노력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