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 읽은 책 리뷰] 소년이 온다/ 한강
이미 한 번 읽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마지못해 책을 펼쳤다. 여지없이 같은 부분마다 책을 덮는다. 다음 나올 내용이 뭔지도 뻔히 아는데 책장을 넘기기가 힘이 든다. 크게 한숨을 쉬고서야 다시 책을 집어든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 읽고 싶지 않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다. 518을 교과서로만 접한 세대로써 직면하기 괴로운 기록이다. 수업시간에 사진과 영상을 보며 처절한 순간들을 슬퍼한 시간들이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 아니 눈앞에 다가오는 총구의 피해자가 내가 아님에 안도하기도 했다. 동시에 매번 그런 생각이나 하는 나에게 비참해진다.
소설의 처음은 혼이 된 소년과 그 친구를 찾으며 죽음 근처에 맴도는 소년, 둘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나온다. 혼이 된 소년은 기억한다. 유일한 가족인 누나와 듣던 풀벌레 소리, 누나가 두 번 쓰다듬어준 얼굴, 이제는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누나가 사랑한 자신의 얼굴. 그리고 계속해서 떠올린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나를 죽였을까, 어떻게 누나를 죽였을까. 다른 한 소년은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없어진 친구를 찾는다.
친구를 찾으며 계엄군에 맞서는 동호는 살고 싶어서 두려워한다. 시체를 닦는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과 정말 총알이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 도청에 남은 야학생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아 군인들이 다가와도 멍하니 바라만 보던 이들 모두 내 또래다 아니, 이제는 나보다 어린 이들이다
각종 고문에 이유모를 피를 눈물처럼 흘려야 했던 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고문 이후 그보다 더 끔찍한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도 나온다. 기억의 몸 속에는 그 여름의 조사실과 검정색 모나미 볼펜,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다. 소름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나는 알지 못하는, 평생 알지 못할 고통이다. 그들도 아마 짧은 생 동안 상상해본 적 없었겠지.
망월동 묘지에 묻힌 이야기는 이보다 더 슬플 것이다. 5월 광주의 시공간에는 피비린내가 난다. 마지막으로 솔직해져보면 나는 너무나 적나라한, 작가의 상상인 듯 실제 증언인 듯 단어 마디마디 읽는 내내 원망스러웠다. 작가가 원망스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똑바로 바라봐야 할 진실이다. 아래의 사실이 오월이 돌아올 때마다, 책에서 영화에서 광주의 오월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이유다.
피지 못 한 아이의 유골에는 구멍이 두 개다.
‘총을 맞고도 살아 있다가 확인사살을 당한 모양이라고, 이장하면서 보니 이마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두개골 뒤쪽은 텅 비어있었다고 말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학생의 아버지가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오월의 광주는 그랬다. 그래서 힘들어도 책을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