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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Aug 16. 2021

입덧이라는 지옥을 건너, 널 만나러 갈게

세상에 어떤 행복도 그냥 주어지는 건 없으니까

굴아,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은 날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입덧이라는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야. 오빠 때도 만만치 않게 고생했지만, '내일이면 나아지겠지'라는 희망고문으로 몇 달을 버티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갇힌 것처럼 앞이 깜깜해. 아빠도 옛 기억을 더듬으며 '20주는 되어야 끝나겠지?' 하고 날짜를 새어보지만, 두 번째라고 더 쉬운 것은 아닌가봐. 이번에는 제발 병원에 가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엄마는 결국 또 병실에 누워있네. 엄마가 입원하게 되면 혼자 오빠를 돌보느라 고생할 아빠 생각에 어떻게든 버텨보고 싶었는데, 순간 몸도 못 움직일 정도로 기운이 다 빠져 나가는 걸 느끼자, 엄마 뱃속에 있는 너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더는 견딜 수가 없더라.


TV에 나오는 입덧은 음식 냄새를 맡고 '우억, 오웩' 소리 몇 번 내고 화장실로 달려가거나, '딸기가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 사줘'하며 맛있는 음식을 찾으며 한 두 장면으로 끝나던데, 엄마가 경험하고 보니 이 입덧이라는 녀석이 못 먹고 못 마시는 걸 넘어 엄마의 정신상태를 아주 몽롱하게 만들더라고. 물론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모든 임신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엄마의 경우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게 힘들 정도로 모든 게 역하고 몸 안에서 24시간 롤러코스터가 돌아다니는 기분이야. 문제는 예민한 엄마 때문에 아빠랑 오빠까지 덩달아 고생 중이라는 거야. 엄마가 거의 24시간 침대에만 누워있으니까, 집안일은 생각도 못 하고 밥도 같이 못 먹어. 오빠는 갑자기 엄마가 누워만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 아니면 그저 엄마의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 눈빛이 너무 슬퍼 보여. 그래도 말썽 안 피우고 아빠랑 잘 지내줘서 고마울 따름이야.


입덧은 유전이라는데, 밤낮없이 가게 일하며 쉴 틈도 없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도움도 없이 어찌 엄마를 낳았을까. 그때는 큰외삼촌도 아직 어렸으니 엄마 손이 많이 필요했을 텐데 말이야. 그 조그마한 몸에 엄마까지 품고 얼마나 고생하며 장사를 하셨을까. 예전에는 '아, 그랬구나, 엄마 힘들었겠네'하고 흘려들었던 할머니의 입덧 이야기가 가슴을 콕콕 쑤셔대는 가시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멀리 한국에 계신 할머니는 엄마가 입덧한다는 소리에 가까이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시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엄마의 이런 힘든 모습을 안 보셔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도 한국에 있었으면 순댓국도 먹고, 치킨도 시켜먹고, 할머니가 끓여주신 재첩국도 먹고... 아... 그렇게 엄마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었으면 이런 고생을 좀 덜 했으려나? 하하하. 갑자기 서글프네. 괜찮아, 지금은 링거로 들어오는 설탕물만으로도 살 것 같으니까.



굴아, 엄마가 처음 임신을 했을 때는 말이야, 세상에서 내가 가장 축복받은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 오빠를 가졌을 때도, 너를 가진 지금도 같은 기분이야. 그런데 입덧이라는 녀석이 엄마를 덮치자마자, 그런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어디로 휙 하고 도망가버리는 거 있지? 엄마 뱃속에 있는 너보다, 오늘 하루는 토하지 않고 지나가기를, 부디 물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기를 바라며 아주 사소한 것에 온 정신을 뺏기느라, 내 안에 너라는 작은 생명이 커가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살아. 그래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 너는 벌써 10센티는 넘게 크느라 고생하고 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엄마는 알지. 이 입덧이라는 지옥을 건너가기만 하면, 어느새 엄마 뱃속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너와 만날 그날만을 행복하게 기다리게 될 거라는 것을 말이야. 엄마도 너도 지금은 힘들지만, 이건 언젠가는 끝나는 고통이니까, 우리 조금만 참고 같이 열심히 견뎌보자! 입덧하는 동안 함께 고생한 아빠랑 오빠한테도 고마워하면서, 우리 건강하게 잘 이겨보자!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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