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그의 서사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 만에 나온 천명관의 장편 소설
이 기사를 보는 즉시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하루 만에 받아 본 그의 소설이 조금 얇은 게 아쉬웠을 뿐 역시나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많은 작품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기존의 소설 문법에 어긋난다는 평가를 받는 적지 않은 나이의 작가.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는 대중들은 그의 작품에 환호한다. (특히나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좋아한다.) 밑바닥 인생의 모습을 구질구질하거나 심각하게 그리지 않고 언제나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능력이랄까?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작가는 기존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들려주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어디서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져있다.
천명관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약 7년 전이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남들이 읽고 있던 자기계발서와 경제서적을 열심히 따라서 읽고 있던 시기다. 자기계발서가 지쳐갈 때쯤 선배가 추천해준 '고래'라는 소설을 정말로 하룻밤에 정신없이 읽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하루 만에 읽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후에는 정유정의 '7년의 밤'이었다.) 마치 영화의 장면들이 연속되는 듯한 그의 묘사와 이야기 흐름에 빠져 오랜만에 소설책 한 권을 해치웠다. 그때부터 천명관이라는 작가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나오는 소설마다 전부 찾아 읽었다. 많은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기도 하고 영화 작업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인지 그의 소설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에 비해 그의 소설은 하루 이틀 만에 먹어 치울 수 있기에 항상 굶주림을 가지고 다른 소설로 배를 채웠다.
2012년에 나온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역시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사건들, 뒷골목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항상 그의 작품을 보면 주인공들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부족하고 일반적이지 않다. 동정심을 유발하면서도 주인공에게는 항상 황당한 일들이 연속되어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작가의 글은 시종일관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결말은 대부분 우울하지 않고 해피엔딩에 가까워서 읽고 나서도 편안한 느낌이다.
"여기는 남자들의 세상, 남자들의 세상이지.
하지만 여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소용없어.
황무지에서 길을 잃고 쓰라림에 헤맬 뿐."
- 제임스 브라운 노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중에서 -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역시 강한 척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다양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여자가 없이는 그저 껍데기뿐인 남자들끼리 뒤엉키게 만들고 마지막에 해소시키는 그만의 독특한 서사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웃음이 나온다. 주인공인 울트라의 모습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와 많이 닮아 있다.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심성은 착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동정심을 느끼고 그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도 분명히 보았던 사람들일 텐데 그들을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고 묘사하는 능력은 천명관 작가의 특기인 것 같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오래 해서일까? 항상 그의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내 눈 앞에서 하나의 배우 이미지를 그리게 만들고, 책을 읽는 동안 영상과 글을 함께 보는 느낌이다. 지금도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를 시나리오로 만들어 영화 준비 중이라고 하니 천명관의 이야기 능력을 스크린에서 곧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어디서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설가의 능력이라면 천명관은 타고난 소설가이다. 기존의 소설 문법이 어떤 것인지 일반 대중은 알지 못한다.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평론가들이 판단할 몫이다. 천명관의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상관없이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그의 영화가 성공하길 바라지만 손익분기점에서 멈추었으면 한다. 영화에서 성공이 지속되어 그의 소설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면 안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