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하이든
"에스테르하지 공작께서 당신부부를 소개해 줄 때,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소.
순간 나는 당신의 눈인사와 미소에 마음이 따뜻해졌지.
오늘도 당신의 봄꽃같은 미소가 떠올라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오.
내 인생에 있어 당신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자,
삶의 에너지를 새롭게 얻은 느낌이오.
한편으론, 내 영혼이 당신에게 무장해제 된 것 같소!"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악장이자, 고전주의 음악의 선두주자로 명성을 알렸던 오스트리아 태생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하이든이 한때 연정을 품었던 테레제는 그의 사랑을 외면한 채, 수도원으로 떠나 버렸고,
대신 그녀의 아버지는 1760년, 테레제의 언니인 서른 한살인 마리아 안나가 혼기가 꽉차자 하이든에게 결혼을 강권하듯 떠밀었고, 이에 하이든도 상황에 밀리어 충동적인 결혼을 하고 만다.
예상대로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사랑없는 결혼 생활에 후사도 없이 평생을 밋밋하고,
무덤덤하게 삶을 유지했다.
하이든의 아내 마리아 안나는 남편 하이든이 사랑하는 여인은 자신이 아니라,
동생 테레제라는 생각을 평생토록 떨치지 못하며 불행하게 살았다.
그녀의 이런 생각이 궁극적으로 결혼생활의 불행을 부르는 단초였고 거기에 궁정악단 소속의 여자가수들도 마리아 안나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 하이든과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부부는 평생 같이 하는 동안, 대화가 단절된 삶 속에서 서로가 쓸쓸하게 보냈다.
하이든의 단조로운 궁정음악단 악장의 삶 속에,
어느날 소용돌이치듯 파문을 일으키며 나타난 여인은 다름 아닌,
에스테르하지가의 악단에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입단한 루이지아 풀첼리였다.
1779년 19세였던 루이지아는 남편인 바이올리니스트 안토니오와 함께
에스테르하지가의 악단에 취직하게 되었다.
당시 47세였던 하이든에게 유부녀인 루이지아의 등장은 20여 년간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안겨준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로맨스는 악단 단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고,
1783년 루이지아가 아들 안톤을 낳았을 때는 하이든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만큼,
그들의 사랑은 결코 비밀스럽지 않았다.
실제 그 아이가 하이든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밝힐 길이 없지만,
하이든이 안톤을 아끼고 각별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가창력이 부족한 루이지아, 나이 많아 병약하고 연주기술도 서투른 안토니오까지 악단에 2년 계약 채용이후, 재계약 될 수 없는 형편없는 실력임에도 12년동안 에스테르하지가에 악단 가수로 머무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악장인 하이든의 전적인 배려 덕분이었다.
노래 실력이 부족한 루이지아를 2년 동안 가창지도를 하면서 가수로써의 실력을 키워주는 선생이자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사랑하는 한 남자로써 하이든은 오랫동안 그녀 앞에 머무르고 싶은
속내가 있었으리라.
1780년대 이후 하이든의 작품 활동은 갑자기 왕성해졌고, 활기 넘치는 창작활동의 시기였다.
그에게 결혼생활은 무의미했고, 악단생활 또한 매일 반복되는 밋밋함과 지루한 일상 속에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한 루이지아로 인하여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인지,
그의 작품활동에 충분한 영향을 주었다.
그들의 사랑이 제2의 인생으로 열리는 결혼으로 이어질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카톨릭 교회에서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현실적으로 하이든과 루이지아의 결혼은 실현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다.
그럼에도 하이든은 애인이자 미래의 아내로 맞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 했다.
1797년 마리아 안나의 심한 류마티스 통증으로 별거를 시작했고,
증세가 악화되자 마리아는 요양소에 들어가게 된다.
1800년 3월 20일에 아내 마리아 안나가 세상을 떠났고 그후 2개월쯤 후에,
하이든은 재혼을 한다면 루이지아 외에는 누구도 생각지 않음를 고지하는 내용의 유언장을 쓰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죽고 난 후,
루이지아를 위해 300플로린의 종신 연금을 준다는 내용도 함께 들어 있었다.
루이지아가 보는 앞에서 작성된 이 유언장은 후에 루이지아가 남편 안토니오의 사후 다른 남자와
재혼하게 되면서 무의미해졌다.
이해 타산적인 마음으로 다른 남자와 재혼을 선택한 루이지아였음에도
하이든은1809년 세상을 떠나기 6주일 전 쯤, 유언장을 다시 작성한다.
유언장 제33조에는 루이지아에 대한 언급을 했으며,
그녀에게 종신연금으로 연간 150플로린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적시했다.
죽음 직전에도 그녀를 위한 사랑의 유산은 각별함 그 이상이었다.
가창력도 카리스마도 없는 여가수를 그가 작곡한 오페라 <보상받은 정절,( 1780)> ,
<기사 롤랜드,(1782)>, <아르미다,(1783)> 등에 출연시킬 수 있었던 사실 속에는
하이든의 루이지아를 향한 사랑의 특혜가 아니었을까?
당시 연주자들의 세계에서 '파파하이든'이라고 불릴만큼 자애롭고 멋진 하이든!
루이지아를 향한 사랑 속에서 그녀를 위한 배려심과 이해심,
자애로움, 바다와 같은 사랑이 넘치는 파파같은 사랑을 펼치며 살았다.
그의 사랑도 파파였다.
뜨거운 여름에 사랑도 불타다.2015. 8. 2. 佳媛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