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엘비라여!
엘비라 제미냐니(Elvira Geminagni) -푸치니와 사랑했던 때, 그녀는 이미 딸둘을 둔 유부녀였다.
"엘비라! 난 결백하다구... 나를 그렇게 못 믿는거야?
도대체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해야 나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럼 당신이 좀전 도리아 방에서 나왔던 것은 무슨 일 때문이었냐구요?"
" 그야 내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 도리아(하녀)가 내 처방전 약을 가지고 있어서, 도리아 방에 들어가, 약봉지를 가지고 오던 참에. 당신이 그걸 목격한 것이었소
내가 당신에게 몇번을 더 설명해야 내말을 믿어 준단 말이오"
화가 나 있음에도,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그의 표정에는 '억울하다'는 표정과 아내의 억지주장에
말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개탄스러워,
오로지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푸치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엘비라는 푸치니의 간병을 돕기 위해
같은 마을 농부의 딸인 16세 소녀 도리아 만프레디를
하녀로 고용하였다. 사실은 푸치니를 간병하겠다고, 도리아가 자청해서 푸치니의 집에 들어왔다.
그녀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에 병세는 호전되었고,
덕분에 조금 더 일찍 푸치니는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 사고이후 1904년 수리한 차를 타고, 왼쪽부터 엘비라, 도리아 푸치니, 딸 포스카, 포스카의 딸과 함께
이후, 푸치니의 설득으로 하녀 도리아는 푸치니의 시중을 계속 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었을까?
엘비라는 도리아가 푸치니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거나,
무슨 일로 푸치니의 심부름을 하기만 하여도,
푸치니와 도리아가 밀회를 하거나 정사를 벌였다는 의심의 고리를 떨쳐 버리지 못했다.
엘비라의 행동은 전형적인 의부증의 증세였다.
엘비라는 이를 도리아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알리고,
가짜 소문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퍼뜨리거나,
악담을 퍼부어 그들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까지
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이제 매일 도리아를 더욱 못 살게 굴기 시작했고,
도리아에 대한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급기야 도리아에게 입에 담지 못할 험악한 말과 악담을 퍼 붓기 시작했으며,
"호수에 빠뜨려 죽이겠다."라는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
엘비라에게 시달리다 못한 도리아는 결국,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당국의 지시 하에 도리아의 부검이 이루어졌다.
검시 결과 도리아의 결백은 만천하에 밝혀졌고,
이에 도리아 가족은 엘비라를 손해배상청구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재판에 회부된 엘비라는
여전히 도리아와 푸치니를 의심하면서,
자신이 피고석에 앉게 된 것 조차도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아주 명료했다.
법원은 엘비라에게 700리라의 벌금과 5개월 5일의 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푸치니는 엘비라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감옥으로 직행하게 될 것을 걱정해 그녀를
구제하기 위해 도리아의 유족과 1만 2천리라로 합의하여 사건을 해결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푸치니는 한때 엘비라와 이혼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엘비라가 많이 뉘우치고 있었기에 그녀를 용서하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이 사건 이후로 푸치니의 청작력은 쇠퇴해져 갔고, 건강 또한 나빠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엘비라가 푸치니를 끔찍히 사랑한 죄는 세상이 유죄를 선포해도 푸치니가 생각하는
엘비라는 무죄였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26세 푸치니가 고향 루카에서 식료품가게를 운영하는 제미냐니(Geminagni)의 아내이자,
어린시절 같은 학교친구 사이였던 24세 엘비라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두 딸을 둔 유부녀였다.
당시 제미냐니는 아는 사람에게 음악을 배우라고 엘비라에게 권유하면서, 엘비라는 푸치니에게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되었고, 그들의 사랑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엘비라는 큰 딸인 포스카만을 데리고 나와 고향을 떠나 푸치니와 동거를 시작했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욕설을 다 들으면서도, 둘은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감내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녀의 푸치니에 대한 사랑의 용감무쌍함을 노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제 푸치니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사랑의 노예처럼 질투의 화신으로 분하였고,
푸치니 주변에 있는 여인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질투의 크기로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이슈를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그로 인한 푸치니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죽음의 이르는 병(후두암)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면, 너무도
극단의 표현이 될까?
그만큼 푸치니의 인생에서 엘비라의 질투는 커다란 짐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지아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낭만주의 오페라의 꽃을 피운 베르디를 이어서,
이탈리아 근대 오페라의 선봉이자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로도 유명한
지아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푸치니의 생가
그의 사생활은 낭만주의 로맨스의 화신을 넘어,
막장 드라마 스캔들 메이커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복잡 미묘했다.
원래 의심이 많고 다혈질인 아내의 성격을 더 부채질 했던 것은 다름 아닌, 푸치니의 잘 생긴 외모와 더불어 카사노바와 같은 화려한 여성편력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여인들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어 그것을 오선지에 그려낸 작곡가 푸치니!
"나는 정열적인 사냥꾼이다. 우선 거위를 쫓고, 최고의 오페라 대본을 쫓고, 매력적인 여성을 쫓는다." 라는 그의 말에서 그의 음악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오페라를 만날 수 있다.
오페라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과 미완으로 그쳤지만, 그의 제자 알파노에 의해 완성된 <투란도트> 는 오늘날 세상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들이자,
전세계 오페라단 흥행작으로 무대에 가장 많이 올려지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나 사랑에 대한 확신, 갈등, 의심 등을 음악에 절묘하게 접목시킬 수 있었 것은 현실에서 자신의 다양한 연애경험의 발로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현실성을 곁들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미를 소재로 다루는 '베리스모 오페라'를 발전시키는 주자가 되었다.
1926년 4월 초연당시 포스터
<투란도트>에 냉혈공주 투란도트는 칼라프 왕자의 이름을 알아 내기 위해 티무르 왕의 노예 류를 고문하는데, 칼라프왕자가 류에게 보였던 단 한번의 미소에 반한 류는 투란도트의 고문에 굴하지않고,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듯 '칼라프' 왕자를 위해 자결한다.
마치 과거 자신의 시중을 들었던 하녀 도리아가 푸치니와의 관계에 무죄임을 증명하기 위해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던 것 처럼, 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된 듯 하다.
아내 엘비라와 함께 한 푸치니
그의 오페라 속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의 사랑과 인생이 살아 숨쉬고 있는 진행형임을 알려주는 것 처럼 생생하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음악과 교수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마이클 프랫(Michael Pratt)은 흥미롭게도
엘비라의 질투심을 소재로 한 '마담 푸치니'라는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푸치니와 엘비라의 삶이 소재가 되어 프랫의 음악세계에 영감을 불어 넣기도 하였으니,
삶과 음악, 사랑과 음악의 경계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는 누구누구의 음악이 될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 엘비라와 아들 안토니와 함께 한 어느날
토스카 오리지널 포스터
오페라 <토스카>에서 여주인공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 아리아는 영원한 디바 마리아 칼라스가 토스카의 기구한 운명과 슬픈 현실을 처절하게 표현할 때, 칼라스 자신의 사랑이었던 선박왕 오나시스와 사랑을 깊이 생각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상에 노래했을지 모를 일이다.
"음악과 사랑의 경계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안개와 같다."
음악에 자신의 인생을 구겨넣은 푸치니를 기록하다. 2015. 5. 17. 佳媛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