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천재이고 싶어요

천재도 이루지 못한 사랑

by 김정현 작가

사랑에도 천재이고 싶어요~





"얘야! 못하는게 뭐니?
어쩜 네살 꼬마라고 믿겨지지 않는군~"


웅성거리는 사람들 앞에 있는 아이!


피아노와 의자 사이 높이를 맞춰 올린 쿠션에 앉아있는 아이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카미유 생상스(Camile Saint-Saens,1835~1921)



프랑스 근대 기악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파리 태생의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e Saint-Saens,1835~1921)


세살 아이는 숙모 샬럿 미숑을 통해서 피아노를 배웠다.

천재적인 끼를 타고난 생상스는 1839년 4살 때 바이올리니스트인 베세무스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피아노로 대중 앞에 첫 연주를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단한 아이군!"

"아버지 없이, 엄마 혼자서 아이를 이렇게 잘 키웠다니 대단할세"


옆에서 연주를 함께 보고 있었던 생상스의 모친 클레멘스는 생상스가 연주 중 실수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 가슴 졸이고 염려했던 좀전의 긴장되고 굳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연주가 끝나자마자 아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앞으로 서둘러 달려 나갔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다음에 오셔서 제 아들 연주를 들을 때에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연주할 것이라 믿습니다."


"브라보, 브라보~~"

연신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 4살 꼬마 신동이 세상에 나왔음을 알리는

생상스 첫 연주회는 작지만, 화려했고 성공적이었다.


엄격한 어머니 클레멘스와 숙모 샬럿미숑의 철저한 음악교육 덕분에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생상스는 태어난지 석달만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에게는 늘 어머니가 두명(친모와 숙모)인 것 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등살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을 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그는 병약했기에 어머니 클레멘스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할 수 있다.


아기때부터 허약한 건강 상태였음에도
그는 천재였다.

3세때 모든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으며, 7살에는 라틴어를 터득했다.

음악적으로는 절대 음감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미 13세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였으며,

이후 여러 곡을 작곡하고 있었다.


모짜르트에 비견될 만큼 천재적인 면모는 단지 음악에만 머물지 않았고.

시인, 화가, 천문학자, 철학자로 불릴만큼 다재다능하였다.

여기에 그는 즉흥 연주의 귀재이자 오르가니스트로써 대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피아노의 비루투오소인 프란츠 리스트는 생상스의 오르간 연주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자'라는 말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875년 2월 3일, 생상스는 40세 때,
제자의 여동생 마리 로르 에밀리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 이전의 여성관계에 대한 행보를 아는 이는 전무한 상태였다.

그만큼 그의 사생활이 어머니 클레멘스에게 통제를 받았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음악적인면에서도 어머니는 강한 위엄을 행사했고,

작품에 대한 심한 비평도 서슴치 않았다.


어머니가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통제하였던 일들이 자칫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권을 행사하는데 어머니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들의 결혼을 어머니가 진심으로 기뻐했는지도 의문이다.

결혼 후에도 어머니는 아들을 좌지우지하려 했으니, 생상스의 입장은 여전히 두 여자 사이에 놓여 갈팡질팡 할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가정 생활에서 사랑과 행복의 운은 지독히도 없었다.

1878년 5월 28일, 생상스의 장남 앙드레는 세살때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내밀었다가 떨어져 죽었고,

뒤이어 둘째도 같은해 7월 7일 7개월도 채 되지않았는데,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한 해에 자식 모두를 잃었으니, 슬픔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으리라.

어렵게 가정생활을 이어온 부부는1881년 7월 28일 온천지인 라 블루불 여행지에서 도착했으나,

다음날 아침 생상스가 아내곁을 조용히 떠나 종적을 감춤으로써,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상스가 자취를 감춘 것에 대해서는 변명할 수 없고,

설득력을 잃은 행동이었지만, 스스로 심리적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맞이했다고 단정지었던 것이다.


그의 긴 방랑은 1921년 12월 21일,

따뜻한 나라 북아프리카 알제리 알제에서 객사로 끝을 맺는다.


아마도 생상스 어머니는 요샛말로 알파맘,

헬리콥터맘이라 불릴만큼 극성스러운 어머니의 전형이 아니었을까?


그의 대표적인 곡 중 <교향곡 3번,오르간>은 어두운 기운을 뚫고 올라선 새싹이 어느날 밝고

기운차게 화려한 기운을 받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기상이 느껴져,

슬프지만 기쁘다는 그의 이중 감정이 엿보인다.

2015. 5. 21. 봄날이 한창입니다. 佳媛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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